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인간이 구원되었다, 행복하다, 라고 말할 때는, 많은 경우, 대상으로부터 자신의 거리를 유지할 때라기보다는, 기꺼이 스스로 목매고 싶은, 스스로 그것 때문에 부자유스러워지고 싶은 어떤 대상을 찾은 경우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p.286)
승진 발표가 있었고, 나는 자타가 말하는 '될 줄 알았는데' 안 된 케이스였다. 한동안 모두가 나에게 술을 사주겠다고 하는 매우 드물고도 기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대방어 아니면 먹지않겠다, 라는 나의 결연함에도 모두들 망설임없이 오케이를 외쳤다.
승진은 실로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진다.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애가 1등 하듯이 사회에서 젤로 일잘하는 애가 1등으로 승진하는 것이 아님은 인턴도 알 수 있다.
그 수많은 요소들을 내가 다 통제할 수 없음은 이미 십수년전에 깨달았으므로, 나는 승진하지 못할것을 어느 정도 예측했고, 예측은 잘 맞았다. 그러나 나를 슬프게하는 것은 이런 말들이었다.
- 그러게,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어.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선배의 말이었다.
인턴도 아는 진실을, 그녀가 모를리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일에 열심인 것을, 이 구질구질하고도 비루하지만 그래도 이 판에 진심인 것을 그녀가 모를리 없었다.
그런 그녀가 내게 열심을 말했다.
회사에는 승진과는 하등 상관없는 다면평가라는 제도도 있다. 동료들이 서로를 익명으로 평가하고 메시지를 남기는데, 이번에 받은 메시지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었다.
- 선배님을 보면 떠오르는 가사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물음표에 잠시 슬프다가 균형을 잡는다. 눈 한 번 감지않고 태양에게 걸어가네." 외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결국은 선배님만의 균형을 잡아내는 그런 모습 본받고 싶습니다.
과분하다고 여겨지는 찬사였다.
나는 그런 멋진사람은 아닌데.
열심과 균형 면에서 나는 모두 오해받고 있었다. 그 오해들 속에서 어떤 날은 분노하고 다른 날은 기뻐했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아니었으므로, 그 말들은 나를 부자유스럽게 했으나, 바로 그 지점에서 나를 구원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걷고있는데, 도착의 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품고있는 태생적인 고뇌일 것인데, 살아있다는 생생한 감각만이 그 사실을 잊게 한다. 그리고 어떤 통증들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한 감각이다. 먹고사니즘의 현장은 그래서 나를 아프게 하는 동시에 숨쉬게 한다.
그래서 말인데,
출근할때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