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페미니즘의 도전
누가 나더러 여성주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착한 여자는 천당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라는 말을 소개한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p.77)
쏘맥을 물처럼 마시던 시기를 지나면 소주만 먹는때가 온다.
- 난 소주만 먹을게.
말아주는(?) 잔을 거절하면, "이열~~역쉬 안죽었어" 하는 감탄사가 들려온다.
술을 너무나 잘마셔서 소주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나는 맥주를 못마시게 됐다. 너무 차가운 것을 벌컥벌컥 먹으면 위가 실시간으로 아파온다.
아직 안죽은건 맞지만, 죽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여하튼 그런 몸이므로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갔다.
- 오늘 저녁에 한 잔 할까?
- 아, 나 선약있어(내 자신과 내 방에서)
- 그래 그럼, 다음주 금요일은 어때?
- 그날은 가족행사가 있네(밤에 가족끼리 고스돕 칠 예정)
그러나 거절하지 않는 술자리가 있다. 어린 여자 후배들이 부르는 술자리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어린사람과 여자사람은 사회에서 여전히 약자다. 나는 한때 어린 여자였다가 이제는 늙은 여자가 됐다. 그 시절을 통과한 자만이 그 시절을 겪고 있는 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자만이 동정 아닌 위로를 건넬 수 있으므로, 나는 그녀들의 술자리에 기꺼운 마음으로 참석한다.
커피심부름과 재떨이비우기가 사라졌다고 해서, 어린여자의 사회 생활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다.
십수년 전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들이 그 능력이나 노력을 불문하고 모두 승진하는 동안, 뛰어난 능력과 몇배의 노력과 몇십배의 수모를 견딘 여자 동기들 중 한 둘이 겨우 승진하였다. 승진한 여자들은 모두 미혼이었다.
20대까지만해도 나는 변태콜렉터 같았다. 선생도 교수도 변태, 선배도 변태, 직장상사도 변태,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도 변태였다.
그러나 나는 평등,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들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변태를 마주치는 순간들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그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다보면 알게되었다. 변태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내가 타겟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그런 자리가 아니었던들, 나는 계속해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며 마음편히 살았을 것이다. 아는 것은 괴로웠으나, 모르는 자일 때의 나는 그녀들의 타자였을 것이므로, 나는 기꺼이 아는 것을 선택했다.
- 나는 여전히 힘이 없어. 하지만 그들은 나를 조금 불편해해. 너희 옆에 서있을게. 그들이 불편하도록.
늙은 여자는 그 정도의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어린 여자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곤했다.
내가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순간이라니. 그것은 존재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고, 우리는 순식간에 동료에서 동지가 됐다.
한편으로는 그자리에 서있는 것, 아주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쉽게 공격과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찬사와 미움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눈덩이처럼 커질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었음을 느꼈다. 나의 한발자국이 그녀들에게 그토록 힘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불편함을 준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법륜 스님은 천당보다는 구할 사람이 많은 지옥에 가겠다고 하셨다. 모두가 피하려고하는 지옥에 기꺼이 가겠다는 그 분의 의지도 존경스럽지만, 더 좋은 것은, 내가 할 일이 있는 곳에 가겠다는 그의 마음이다.
누워만 있는 천국에 가지 않겠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