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혼모노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성해나, 혼모노, p.153)
멘토라고 여기는 선배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뭘 조금 더 알게될수록, 그녀는 더 대단했고, 드문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과거형인 이유는 그녀가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은퇴를 하기 전에도, 후에도 나는 그녀를 멘토라 생각했지만, 무언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적은 없었다. 아주 가끔 만나서 서로의 근황을 묻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이런 나쁜일도 있었지만 잘 이겨내고 있어요. 하고나면, 나도 이런 일이 있었어. 하지만 이겨내는 중이다. 이런 대답을 들었다.
그녀의 삶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내게는 어떤 배움이 있었고, 어떤 지향점이라는 것은 도달 전이라 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몸을 돌려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다소간 나는 그녀와 닮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조금 위로가 되곤 했다.
아주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오래 알고지낸 사람들이 함께한 자리였고, 드물게 내가 막내인 모임이었다. 왁자한 삼겹살 집에서 소맥을 마시면서, 그 중 누구도 나에게 고기굽는 집게를 잡게하지 않았다. 물을 챙기거나 떨어진 밑반찬을 추가 주문하는 등의 소소한 일들도 신경쓰지 않는 편한 자리. 그냥 구워주는 고기를 받아먹고, 맛있게 많이 먹는 것만이 오로지 너의 일이라고 얘기해주는 선배들이 있는 자리였다.
못본사이, 그녀에게는 큰 일이 있었다. 남의 일 말하듯, 그 커다란 아픔을 담담히 얘기하며, 가끔 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 살면서, 내 꺼 아닌 것 같은 일에는 너무 애쓰지마라. 그럴 필요없단다.
너무나 애써온 사람이 애정을 담아 말한다.
애쓰지 마라.
존나 흉내만 내느라 보지 못했던 것이 비로소 보인다. 작두위에 서 있는 피묻은 발 같은 것들.
신들린 무당도, 거기에 깃든 신도 다 나자빠지게하는 진짜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