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올드걸의 시집
어딜 가나 치유와 긍정의 말들을 사나운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얼굴에 들이대어 삶에 눈멀게 할 때, 시는 은은히 촛불 밝혀 삶의 누추한 자리 비춰 주니까. 배신과 치욕과 절망과 설움이라는 분명히 존재하는 삶의 절반을,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덮어 두는 그 구질구질한 기억의 밑자리를 시는 끝내 밝힌다.
(은유, 올드걸의 시집, p.18)
아무말 다쏟아내도 덜부끄러운 그런 사람들과 간만에 만나, 돌이켜 곱씹으면 부끄러워질 얘기를 나눈다.
상처받은 얘기, 화가났던 일, 그래서 화를 낸 일, 화를 내야 마땅한 순간에 서럽게 참은 일,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일, 그 가운데 자기애와 자기연민.
인생에 기쁨과 슬픔의 밸런스가 있다면, 기쁨도 제로, 슬픔도 제로인 삶보다는 기쁨도 100, 슬픔도 100 인 삶을 선택하겠노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나는 안다. 어떤 커다란 기쁨도 덮을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고, 사람들은 구질구질해질까봐 그걸 숨기는 편이니,
나는 모두에게 좀 더 다정해져야겠다고 자주 마음먹는데,
나의 다정은 시와 닮아서,
다 괜찮아질거라며 웃어주는 대신, 무뚝뚝한 말투로 나도 당신처럼 아프고 나도 당신처럼 절망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주 부끄럽고, 구질구질하다.
누추한 마음을 시에 기대어 장황하게 변명한다.
나는 다소 어두운 불빛이고, 자주 꺼지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