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
밤마다 도둑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주님께 지혜를 갈구하는 천사소녀 네티처럼 기도했다. 말실수하지 않게 해주세요. 부주의하게 판단하지 않게 해주세요. 빈말을 줄이게 해주세요. 안 웃긴데 일부러 웃지 않게 도와주세요. 안 좋은데 좋다고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제 어리석음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세요.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p.15)
내일이면 승진자발표가 있다. 과거 승진자 명단에 내가 없었을때의 어떤 분노와 무기력함이 무색하게, 승진을 앞둔 지금은 조금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승진을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화가나기도 해서, 내 어딘가가 고장난건가, 원래도 완전 정상은 아니지만 이제 아주 멀리갔군, 하던참에 이슬아의 수필집을 읽었다.
이슬아씨가 아니라 이슬아, 라고 칭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슬아, 너는 어쩜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이렇게도 페이지마다 가득 적어두었니.
박완서님의 신작을 읽으며, 그분이 나이가 들어 아프거나 돌아가시면,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누가 표현할수없는 이 복잡하고 엉킨 마음들을 속시원하게 글로 적어주지, 하면서 불안해했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도록 글을 써주셨고, 그분의 글은 나이들지 않아서 늘 신기했다.
그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고, 그사이 나는 소설책 대신 육아서를 읽으며 애를 키웠다. 아이는 자라고, 나는 내 마음을 명징하게 표현해주는 문장에 목말랐다. 가끔은 내 스스로 그런 문장을 길어올리기도 하였으나, 타인의 글에서만 느낄수있는 적확함에 대한 탄복과 통했다는 동질감이 그리웠다. 그런 글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심지어 그녀는 나보다 열살쯤 어리기까지하니, 나는 죽을때까지 이슬아의 글을 읽을수있다.
빈말을 많이하고, 안웃긴데 자주 웃었으며(썩소였을지언정), 안 좋은데 좋다고 하는 세월이 길었다. 그 대가가 승진이었다.
하여, 승진을 앞두고 많이 초라했고, 화가 치밀었다. 나는 나에게 얼마나 진실했는가, 풀리지도 않는 화두를 붙잡고 내내 우울했다.
먹고사니즘을 알리바이로 삼는 일은 얼마나 간단하면서 비겁한가.
설명할 수 없으니 위로받을 수도 없는 이 마음에,
기형도의 시가 그럴수있다고 말해주고, 두보가 한잔하라고 얘기해줬으며, 슬아는 마음에 쏙드는 기도문을 공유했다.
나도 이제 천사소녀 네티처럼 기도해보자.
천사도 아니고 소녀도 아니고 무교지만 아무튼 그냥 해보자.
제 어리석음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세요.
슬아가 오래오래 살아서 오래오래 쓰게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