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공방의 우아한 노동 체험기
흔히 부르는 가죽공방의 '공방'를 적당한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사전을 검색해보았다. 'workshop', 그대로 읽으면 워크숍인데 한국어로 참 싫어하는 단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쭉 스크롤을 내리다가 불어로 'atelier d'artisan'을 발견했다. 장인의 아뜰리에라, 거창하지만 괜찮은 어감이다. 돋보기를 쓴 할아버지가 노을을 등지고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공방에서 가죽 가방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왜'라고 묻는다. 처음 공방을 방문해서 가죽으로 무엇이든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어르신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통가죽을 사용하고 (누군지 모르는)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하고 영어 이니셜을 잘 보이는 곳에 박을 수 있는 '아재'느낌의 가죽 소품을 찾아다녔다. 부드러운 천에 포장해서 어르신 손에 안착시키면 그분은 마치 성수에 세수를 하듯이 코를 파묻고 '이게 진정한 가죽 향이지.'를 반복했다. 반면 가죽 소품의 다른 한 편에는 여성들의 로망과 꿈이 엉겨있는 명품백이 있다. 나는 연봉을 훌쩍 넘는 가격의 명품백이 신기하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경험하며 대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것조차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볼드모트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내 모든 호기심의 출발점은 동일하다. 이 상품은 무엇으로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 걸까? 내가 직접 만든다면 나는 어떻게 만들고 싶을까? 그렇게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이유로 공방을 찾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많은 수강생들이 명품백을 직접 손으로 만들기 위해 이 과정을 배운다고 한다. 그것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나는 사실 이 비대칭적 시장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생산자가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은 소비자가 모르는 정보가 너무 많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더 뻥튀기되어 실제로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을 들인 상품보다 몇몇 브랜드가 유행을 주도하며 진정한 생산자에게 합당한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평소에 액세서리나 가방에 큰 관심이 없어서 처음에 가죽 색상을 고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점심메뉴와 옷은 머뭇거린 적이 없었는데 첫날 팔찌를 만들 때 쓸 가죽을 결국 공방 선생님에게 골라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노동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소품 하나 만드는데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처음에는 엣지 페인트를 세 번 덧바르는 것, 칼을 일자로 쥐고 반듯하게 자르는 것, 양손 바느질을 위해 실에 두 개 바늘을 잘 꿰는 것 등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다. 공방의 한 타임이 3시간이었는데 매번 허덕이다 동전 지갑 만드는 데에 3타임 이상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공방에 있는 가죽이 아닌 신설동 가죽 시장에 직접 가죽을 사러 나가기 시작했다. 남들이 다 가는 에쩨르 레더, 레더 에펠, 에베레스트 레더 등을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가죽을 보고 가격을 문의했다. 처음엔 긴장해서 가죽 상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왜 주인들은 항상 기분이 안 좋은지 혹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가죽을 직접 산다는 것은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질 좋은 상품의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의 가죽 시장은 매우 작은 편이라 A급 이상의 수입 가죽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국산 가죽과 수입 가죽의 가격 차이가 두 배 이상 나며 물론 국산 가죽도 잘 뒤지면 괜찮은 품질의 좋은 가죽을 구할 수 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컬러와 자연스러운 무늬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왕 내가 쓸 소품을 만든다면 눈을 질끈 감고 맘에 드는 수입 가죽으로 손이 가게 된다. 시장을 몇 번 휘젓고 다니다 보니 조금 뻔뻔해져서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그 후에는 고트 가죽의 선명한 색깔에 반해 뭘 만들지 정하지도 않고 사게 되기도 하고 한정판으로 소량 입고된 가죽에 관심이 가기도 하면서 내가 갖고 싶은 색이 무엇인지, 어떤 감촉이 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방에 드나들기 시작할 즈음에 연말을 맞아 회사 내에서 작은 일일 클래스를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작은 선물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시간으로 조금 욕심을 내서 명함지갑을 선택했다. 다행히 반응은 아주 좋았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행위는 짧은 시간이나마 사람을 집중하게 만들고 결과물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조금 귀찮았지만 참가자 모두에게 가죽의 컬러와 이니셜 컬러, 글씨체 등을 선택하게 했다. 내가 직접 만들었을 때 중요하게 생각한 점을 남들도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회사에서 상시 판매용으로 가죽 소품을 제작해야 할 때 직접 만들어보고 불편했던 점을 반영해서 단순하면서도 쓰기 편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원하는 색감이 잘 나올 수 있는 가죽 종류를 선택하고 원산지 표시처럼 가죽 종류를 적어두어 궁금해하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 얘기를 언급하니 마치 홍보글처럼 되었지만 이제 나는 이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으니 딱히 마케팅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저 내 호기심이 회사에 맞닿아 이런 식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내 개인적인 작업물에 반영되기도 하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배우는 과정 중에는 내가 직접 모든 디자인을 하긴 어렵고 난이도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가방이 정해져 있다. 그 가방 디자인에 내가 넣고 싶은 추가적인 기능이나 빼고 싶은 디자인 등을 선택하여 최종 결과물을 만든다. 사실 평소에 쓰는 가방은 한정되어 있고 많은 가방이 갖고 싶진 않았지만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렇게 모두 손으로만 만든 가방은 절대 버릴 수 없다. 좋은 가죽을 사용했다는 건 스스로 알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에이징은 물론이고 흠집이 나거나 때가 묻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인다.
가방을 만들기 위해 가죽을 사다 보면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가죽은 장당으로만 살 수 있는데 가방 하나를 만들면 너무 많은 가죽이 남는다. 이때 발동되는 게 오지랖이다. (이전 글 참조) 친구들에게 다가가 가죽 비용만 내면 무료로 괜찮은 가방을 만들어주겠다고 속삭였다. 아니면 그냥 (엄청 생색내면서) 선물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가방은 너무 힘이 들고 오래 걸리니 가장 간단한 책갈피부터 팔찌까지 남은 가죽의 활용성은 대단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선물은 평소 에코백을 즐겨 매던 친구에게 가죽으로도 쉽게 맬 수 있는 가방을 선물해주고자 시작했던 작업이었다. 호보백을 만들고 남은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그다지 많은 바느질과 공정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처음 생각한 대로 가방의 모양이 잡히지 않아 여러 번 수정을 거쳤다.
가장 최근에는 여행용 보스턴백을 만들었다. 나름 제주도 여행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는데 한 달이 좀 넘게 걸렸다. 파이핑 작업뿐 아니라 지금까지 익힌 거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가방에 들어갔다. 무심히 바느질을 하는 중간중간 내가 처음 시작했던 고민을 다시 되짚어보게 되었다. 난 공방을 차리기 위함이나 사업을 위해 배운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의문을 풀기 위해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는 상품이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는 누구의 판단이 아니라 내가 정의할 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가방뿐 아니라 옷, 신발, 액세서리 등 나를 표현해주는 수많은 상품에 나 자신이 점령당해서는 안 된다. 내 손이 닿는 모든 것은 나의 정체성의 연장선 상에 있어야 한다. 쉽게 구한 것은 쉽게 버려진다. 그리고 환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얼마나 가방을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죽을 만지고 사용해보고 특성을 이해하고 또 동물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내 삶의 틈은 조금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