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글은 인사하는 기분으로 써야 할 것 같아 반듯하게 자리를 접고 앉았어요.
누군가 시간을 들여 제 글을 읽어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책을 쓰면서 알았네요. 읽는 사람이 없다면 글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무용지물이겠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분량을 늘려도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많이 고쳐도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책이 인쇄에 들어가고 나서야 바다에 동동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 편지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네요.
작년 이맘때쯤 브런치 북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기도 했지만 과연 책을 낼 수 있을까 걱정이 컸어요. 저는 어디 유명한 해외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떠나는 학생도 아니었고 그림을 정말 잘 그려서 인정받고 있던 사람도 아니었거든요.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었고 어느 대학으로 가든 포트폴리오가 필요했기 때문에 혼자 만들어가기로 결심한 게 시작이었어요. 막상 그 길을 걸어보니 좁고 막막했던 시간이 제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었기에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것처럼 모든 게 새로웠습니다.
첫 원고를 완성했을 때는 글 전체의 80% 정도가 포트폴리오 이야기였어요. 많은 예시를 넣었고 설명을 덧붙이고 저만의 과정까지 꽉꽉 채워 넣었더니 글이 쉽게 지치더군요. 제가 유학을 준비할 때는 미술 비전공자가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 참고할만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그런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잔뜩 얹어버렸어요. 삐걱대는 수레에 계속 더, 조금 더 짐을 올렸죠. 결국 떠나기 전날 밤 스스로 그 무게를 무너뜨리고 다시 쓰기로 결심했어요. 현미경처럼 좁은 시야에서 잠시 눈을 돌리기로 했어요. 대신 직접 살아보고 경험하고 부딪히며 경험할 때 나오는 이야기가 글로 숙성되길 기다렸어요. 전 그저 맛있게 익은 글을 예쁜 그릇에 담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깜찍한 상상을 하며 일상을 보냈어요.
처음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전 유명한 학교와 교수진, 잘 갖춰진 인프라보다 살고 싶은 환경을 선택하는 게 더 중요했어요. 무모한 결심일 수도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은 학생 신분으로 떠나서 취직을 하고 영주권을 받고 내 집을 하나 짓는 꿈이 처음부터 제 유학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답니다. 그리고 미술이라는 거대한 주제는 '난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로 압축시켰어요.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는 것, 더 많은 기술을 알게 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퇴사부터 여기에 오기까지 과정을 되짚으며 새로운 원고를 썼어요.
퇴사를 할까 말까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상담 선생님이 저에게 매번 하셨던 말씀이 있었어요.
'겉으로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을 떠난다는 건 진짜 어려운 게 맞아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앞으로 본인 모습 그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퇴사는 어려웠지만 주변의 목소리를 끄고 나니 오롯이 나만 남아있었어요. 나로 산다는 걸 정의하긴 힘들었지만 두 선택지 중엔 분명했어요. 나라면 그만두고 떠나는 게 맞겠다. 그 이후는 부딪히며 알아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세 번째 원고를 다듬을 땐 독자를 생각했어요. 한 번에 쭉 읽어 내려가도 부담 없는 가벼운 글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먹고 나면 편안한 음식처럼 책을 덮고 난 후 든든한 느낌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쓰는 내내 즐거웠어요. '회사 그만두고 유학을 갑니다.'라는 제목이 모두 들려주지 못한 제 목소리는 목차에 흠뻑 담았고 문장을 꾹꾹 눌러썼습니다. 포트폴리오 내용은 압축해서 뒤에 부록처럼 넣었고 절 가르쳐주시는 두 선생님의 인터뷰도 짧게 담았어요. 많지는 않겠지만 저처럼 혼자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요. 혹시 제 책을 다 읽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궁금한 점은 저에게 꼭 들려주세요. (raininglikeu@gmail.com 또는 인스타 youjin_halifax)
'나'로 살아가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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