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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살아가는 중

by 어효선 Mar 19. 2025

2022.12.10


여전히 나는 어떤 글과 음악과 영화에서 영감을 받으며, 하루, 하루, 새로운 앎과 지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은 정말 좋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지금은 다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면 술, 담배 안 하기, 어리석은 만남 안 하기, 범죄 저지르지 않기 등… 나에게 해줘야 할 것을 해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최근에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위해 좋은 일들을 그다지 해주고 있지 않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그런 일들은 너무 버겁다.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내가 ‘사랑받지 못할까 봐’가 아니라 ‘사랑을 하지 못할까 봐’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영영 사랑하지 못할까 봐. 자의식이 아직도 너무 강하다.

자부하건대 나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나에 대해 알아가려고 고군분투한 세월 동안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다. 검사 결과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통해 내가 좋은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한다. 스스로가 비참하고 수치스럽고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인간 같을 때 누군가를 진심으로 마음을 써서 도와주면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뭐든 지나치면 독이라고 하는데 이타주의도 그렇다. 지금은 병적인 정도는 아닌 거 같고, 상담사라는 직업만 봤을 때 이런 성향은 직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당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었다.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게 하고 싶었다. 그건 어쩌면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고(苦)다. 산다는 건 고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편안해지는지 모르겠다. 다 같이 괴롭다고 생각하면 뭔가 살아갈 힘이 생긴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모두 괴롭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괴로움은 나에게 디폴트 값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한 것이다.

예전엔 너무 많은 것에 마음 아파했다. 매일, 매 순간 울고 싶었다. 그게 나 때문인지(현재의 나인지, 과거의 나인지도 몰랐다), 다른 누구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거대한 슬픔의 바다를 항해했다. 그 바다는 너무 크고 깊었다. 내 고통을 들여다보고 마주하기보다 온 세상의 슬픈 일들에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내가 타인의 고통에 슬퍼하고 공감할수록 나의 슬픔은 공감받지 못했다. 나는 나의 슬픔을 외면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당연히,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더 깊고 진해졌다. 평생을 그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살 수도 있었다. 순전히 이건 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가끔 그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긴 하지만 언제든지 뭍으로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모든 감정들을 공평하게 대하려고 한다. 한 가지 감정에게 너무 많은 먹이를 주지 말자. 사로잡히지 않는 것. 감정에 잡아 먹히지 않는 것. 알아차림이 답이다.

성찰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괴로움을 느낀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타인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겉모습 안에 있는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진짜 내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따뜻한 자비와 연민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누구에게나 틈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 틈을 공격의 기회로 삼는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자신의 틈을 일부러 보여줬다면 그것은 당신을 무척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실수로, 어쩔 수 없이 보이게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나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수도 있지만.

역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다. 살면 살수록 이 명제는 진리인 것 같다. 그것에 순응하면 삶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괴롭지 않으려고 힘을 주는 순간부터 힘들어진다. 꼿꼿한 막대기가 힘을 주면 더 잘 부러지는 것처럼. 나는 유연한 고무줄 같은 사람이 되어 어떤 힘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수 있다. 대항하지 않으면 싸움 자체도 없다.

그렇다고 행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냐? 그건 아니다. 고라는 게 너무 강렬해서 그렇지 사실 기쁨과 즐거움도 찰나지만 존재한다. 최대한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서 느끼면 그 힘으로 좀 더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순간을 너무도 쉽게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인생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힘들다. 누군가는 인생이 힘들수록 긍정적으로 살라하고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힘들다. 힘드니까 힘들다고 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이런 말을 하면 할수록 덜 힘들어진다. 나에게,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힘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누군가 ‘넌 멋져, 대단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난 멋지고 대단해질 필요가 없다. 한낱 인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나로 태어난 이유를 알아가고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순응하게 되면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존재와 모든 인간의 소중함을 깊게 느끼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존재의 이유를 갖고 태어났고 고군분투하며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신의 존재(그게 꼭 인간의 형태가 아니더라도)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런 큰 힘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예전에는 순응이라는 말이 싫었다. 어떻게든 그 힘에 맞서 싸우고 대항하고 싶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을 믿고 기대어 사는 게 비현실적이고 허황 돼 보였다. 이런 내가 에크하르트톨레 책을 통해 영성을 접하고, 단단하고 좁은 사고가 깨지며 한층 유연하고 넓은 사고를 갖게 되었다.(어쩌면 보이지도 않는 것과 싸우려 한 게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순된 존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난 그게 싫지가 않다. 모순이란 얼마나 인간적인지. 내가 뭐 신처럼 완벽한 존재도 아니고, 일부러 나와의 약속을 어긴 것도 아니고, 이런 마음이 들었다가, 저런 마음도 드는 걸 어쩌란 말인가. 예전엔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다르게 말할 수도 있고, 예전엔 저 사람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는 거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변덕쟁이는 아니다. 단지 변화하는 존재일 뿐. 그런 경직성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점점 더 편안해지겠지.

물론 모순된 글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이것도 모순이다. 모순덩어리. 가끔은 이런 나를 혐오하면서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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