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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상담사

다시 글

by 어효선 Mar 20. 2025

직장을 그만두니까 글을 쓸 수가 있게 되었다. 집에서 책 읽거나 카페 가서 글 쓰고 이틀에 한 번은 달리기 하고 단조로운 일상이다. 상담하는 일이 안 맞는 건 아닌데 주 12명 이상의 청소년을 상담해야 하는 일이 버거웠던 것 같다.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님을 만나야 할 때도 있고 심리검사 해석상담과 호소문제로는 자살사고, 자해, 타살사고, 우울, 불안, 조현 등 여러 가지 정신과적 질병, 중독, 범죄, 고립, 은둔, 가족관계와 대인관계의 어려움, 지능의 문제 등 다양했다. 1년에 한두 번은 자살 사건으로 학교에 투입된 적도 있다. 초심상담자로서 교육도 많이 받으러 다니고 사례회의도 여러 번 했지만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굉장히 부담되었다. 그래서 소진이 오고 배터리가 방전되듯이 번아웃이 와버렸다.

나는 상담 기술이 좋은 편인지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내담자에게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내담자가 편안하고 일관적이고 지지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진심이 통했는지 상담받는 동안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는 아이, 상담 후에 힘을 얻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긍정적 자원이 높아진 아이도 있었다. 그에 반해 어려움이 반복되거나 더 심해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단기간에 좋아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과적 질병이 심하면 정신과 병원에 연계해 치료를 받도록 했고 미술에 소질이 있는 초등학생 아이는 미술상담치료에 연계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는 센터 및 도내 장학금 추천서를 작성해서 50만 원씩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찾아가는 상담사(청소년동반자)였기 때문에 이 지역 아파트란 아파트는 다 가본 것 같다. 지역아동센터, 초, 중, 고등학교, 보호관찰소, 쉼터까지. 초반 1년은 버스, 택시를 타거나 30분 거리는 걸어 다녔는데 여름, 겨울에 특히 힘들어서 2년 차 때 차가 없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하루에 버스, 택시를 3번 이상 탄 적도 있었다. 버스를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했기에 다음 상담을 가려면 택시를 타야 했다. 이 직업 덕분에 차도 사고 오랜 장롱면허를 꺼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공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이런 내가 어떻게 상담사가 되어 상대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까. 그냥 이건 천성인 거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 돕는 것을 좋아했고 민감하고 예민한 기질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심적 고통이 너무 잘 느껴져서 괴로운 적도 있었다.

마음을 치유한다는 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치유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마음의 병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도 않고 자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챙겨줘야 한다.

쉬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정말 좋지만 내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상담사로서 또 어딘 가에 쓰임 받을 일이 있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게 상담사로서의 의무고 내가 상담사가 되고자 할 때 다짐했던 것이니까.

어쨌든 지금은 이 여유를 즐기자.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좋다. 책도 맘 편히 읽고. 아직 무기력한 게 남아있긴 하지만 우울은 조금 나아졌다. 글 쓰는 것만으로 먹고살 수 있다면 사실 글만 쓰면 제일 좋겠는데… 대학 시절에 백일장 나가서 가작으로 문화상품권 탄 거 말고는 수익을 낸 적이 없다. 그래도 꾸준히 쓸 것이다. 쓰는 게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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