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요청한다는 것
나는 도움을 요청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 피가 나도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던 아이. 아무도 없으면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눈치 보며 조용히 흐르는 눈물만 연신 닦아냈다.
부모님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드리기 싫었다. 그때는 ‘싫었다’보다는 ‘두려웠다’가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부모님의 인생은 이미 힘들었기에 나로 인해 그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해지면 미움받을 것 같았다. 괜찮은 척하는 게 일상이 되고 안 괜찮은 마음들이 위장에 쌓여 가슴이 꾹 눌리고 얹힌 것 같은 상태가 너무 오래되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첫 직장 생활을 하게 됐다. 도움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는 사무적이었다. 뭐가 어렵냐고, 뭐 도와줄까 물어봐도 한사코 괜찮다고 거절했다. 도움을 받는 게 상대에게 더 나을 뻔한 적이 많았는데도.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거리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해결했다. 타인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을 남몰래 자랑스러워하곤 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주었다. 도움을 잘 주고받는 사람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고 그러면서 문제가 생겼다. 마감 기한을 못 지키는 날이 많아지고 모르는 것을 묻지 않고 하다가 민폐를 끼치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불평불만이 쏟아졌다. 왜 도와달라고 안 하냐고. 혼자 하기 힘들면 말을 하지 그랬냐고. 물어보면 금방 해결될 일을 왜 그렇게 쌓아두고 혼자 끙끙거리고 있냐고.
나는 단지 서툴렀다. 누군가의 선의가 선의로 끝나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건 나에게 언젠가는 갚아야 할 일, 미움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직장은 1년이 되는 해에 상사와 대화 끝에 서로 그만하는 게 좋겠다고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 다른 직장에서도 그런 일이 되풀이되고 점차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선의가 정말 선의로 끝나는 사람들. 물론 첫 직장 분들도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아직 어렸던 거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던 거다.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정이 쌓이는 게 느껴졌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또한 타인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 나도 필요한 도움을 줄 때 뿌듯하듯이 타인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서툰 것 투성이인 내 삶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가 볼까 한다. 글쓰기는 과거의 나와하는 화해 작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