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거움
우울할 때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을 하라고 하기에 나에겐 그게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20대 때는 단연 술이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전에 술맛을 처음 본 것은 중3 때였다. 친구랑 호기심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사다가 바닷가 앞에서 한입 먹고 맛없어서 다 버렸다. 그 아까운 술을 다 버리다니…
두 번째로 술을 마신 날은 고3 수능 100일 전이었다.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 중인 친구네 연습실에서 백일주로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고는 엄청 취했다. 그때 내 주사가 처음 나왔는데 그냥 잠드는 것이면 좋았을 걸, 새벽까지 울고불고하며 친구들에게 ‘너희를 진짜 친구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충격 고백을 하며 몹쓸 주정을 부렸다. 다음날 엄청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고 그 말은 진심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사과해야 했다.
세 번째로 술을 마신 날은 대학교 신입생환영회였다. 선배, 동기들과 어색하게 인사하며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고 캄캄한 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땅이 양 옆으로 흔들리고 아래위로 솟아나는 경험을 했다. 전봇대에 부딪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스무 살 후로 내 인생 키워드에 술이 빠진 적이 없었다. 술은 내 친구이자 즐거움이었다. 나는 불안이 높고 긴장을 자주 하는 기질 탓에 안정제가 필요했다. 술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불안과 우울함은 한순간에 없어졌다. 술 마시고 한 실수들은 대부분 용서가 됐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퇴근해서 술 마실 생각에 기분이 들뜨곤 했다. 중독에 취약한 나는 술을 거의 매일 마시게 되었고 기분 좋은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마시는 양도 점점 많아졌다. 술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었다. 술 문제로 2년 정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직장생활에도 어려움이 생기자 심각성을 느꼈다.
금주를 시도한 적이 없던 건 아니다. 전남자친구 때문에 3개월 정도 술을 끊은 적이 있었는데 비 오는 날 막걸리에 무너져 내렸고 또 6개월 간 끊었는데 이번엔 여름날 치맥에 무너졌다. 누구는 조절을 하면 된다는데 나는 그게 안 됐다.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하면 금방 전처럼 돌아갔다.
술을 끊기 위해 상담도 받고 최면치료까지 했다. 그때 치료사 선생님이 술은 독약이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마셨다. 나는 무교인데 그 당시 내가 살던 자취방 창밖으로 보이는 십자가에 무릎 꿇고 제발 술을 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후로도 계속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술을 끊었다. 날짜를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2019년 11월 9일. 어느덧 5년이 넘어간다. 술을 끊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음에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30대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사실 사는 게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 지금은 소소하게 책 읽고 글 쓰고 운동하는 게 좋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데 한 존재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 연애도 비슷한 이유로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