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업시장에서 물건을 팝니다. 말 그대로 기업이 고객인 시장입니다. 앤듀유저인 기업과 직접 거래를 하면서 이윤을 발생시킵니다. 그런데 기업시장은 이런 형태의 거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B2B 시장으로 알고 있는 기업 간 전자상거래를 좀 더 특화시켜서 MRO (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 시장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기업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구매하는 구매대행시장입니다. 보통 대기업이나 규모가 큰 회사들은 시스템상 건건히 제품을 구매하고 정산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MRO업체와 계약한 후 사이트에 등록된 품목 중에 필요한 제품을 골라서 구매하고 일괄 정산합니다. MRO사이트는 '견적부터 구매, 발주, 납품, 정산'등의 모든 과정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져서 기업고객이 편리하게 구매하고 회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그런 MRO사이트에 협력업체로 등록해서 매일마다 올라오는 견적요청에 대해 단가를 작성하고 발주가 나면 배송을 합니다. 낙찰된 건에 대해선 재견적 없이 한 해 동안 낙찰된 금액으로 반복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낙찰 품목이 많으면 많을수록 발주량은 늘어납니다.
'기업 간 직거래'와 'MRO 시장'
어디로 갈까?
저 같은 경우는 기업 간 직거래와 MRO사이트에 공급업체로 등록해서 납품하는 일을 병행합니다. MRO 매출은 전체 매출의 20%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비율은 사실 조절하기 나름입니다. 직거래와 MRO가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업무효율을 고려해서 이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 간 직거래는 폐쇄몰에 가깝고
장점은 보통 마진이 높고 한 번에 구매량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와 기업고객과의 직거래기 때문에 업무가 비교적 단순합니다. 견적 <발주 <납품 <정산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동일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업무의 루틴이 생겨서 쉽게 일처리가 가능합니다. 단점은신규 고객을 계속해서 유입시키지 못하면 매출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기존 고객만으로도 일정 매출이 나오지만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신규 영업을 적절히 해야 합니다. 이를 게을리하면 매출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MRO 시장은 열려 있습니다
장점은 한번 낙찰받은 제품에 대해선 일 년 동안 꾸준히 발주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낙찰 품목이 많다 보면 특별히 영업활동을 하지 않아도 사이트를 통해 발주가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소위 견적만 잘 주면 고객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단점은 사이트 특성상 최저가 낙찰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없으면 거래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하는 일에 비해선 마진율이 낮고 손이 많이 갑니다. 견적부터 납품, 정산까지의 전 과정을 MRO업체의 시스템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확인할 일도 많고 반품이나 교환도 빈번하게 생깁니다.
왕년에 MRO 전문업체를 꿈꾸다
처음 기업 간 직거래 위주로 거래하다가 2004년 MRO 시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기업들이 그룹 내 발생하는 여러 가지 구매들을 통합하기 위해 구매대행 자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대기업들이 일감을 몰아주는 걸 금지하기 때문에 직접 MRO 운영을 못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LG의 서브원, 삼성의 아이마켓, 코오롱의 코리아이플랫폼, 신세계의 신세계아이앤씨 등에서 MRO 시장을 주도해 갔습니다. 현재는 소유자가 대기업이 아닌 인터파크나 광동제약 같은 기업들이 MRO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처음 코리아이플랫폼에 협력업체로 등록해서 견적을 주고 납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소한 품목들부터 시작해서 정말 '컴퓨터부터 이쑤시개'까지 못 파는 게 없을 정도로 취급품목이 늘어갔습니다. 당시에는 MRO업체들이 지금처럼 완성도가 높은 시스템이 아니라서 전화나 문자로도 문의가 오고 정산도 일일이 MRO 담당자와 맞춰가며 확인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때로는 판매 내역을 철저히 기록하지 않으면 정산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쓸 일이 많았습니다. 요즘 MRO시스템은 모든 과정이 스마트폰에 어플 하나만 가지고도 처리되기 때문에 업무보기가 예전보다 상당히 쉬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코리아이플랫폼으로 납품을 빈번하게 하고 있을 무렵 신세계아이앤씨에서 담당자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MRO 시장에서 저희 회사가 나름 일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협력업체로 등록해서 납품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초창기 스타벅스가 전국적으로 매장을 늘려갈 때 신규 지점마다 한동안 청소기나 카메라, 가전 등을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스타벅스에 커피 마시러 가면 한켠에 비치돼있는 가전제품이 내가 예전에 납품한 게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두 가지 MRO업체를 병행하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되었습니다. 견적 주고 납품하고 정산하는데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또다시 현대 계열 MRO에서 당시에 추진하던 금강산 관광사업에 들어가는 물품 견적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 일은 품목이 너무 방대해서 견적 주다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느 시장으로 갈 것인가?
이를 계기로 기업 간 직거래만 할 것인가? 아니면 집중적으로 MRO 시장에서 성장할 것인가? 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론 당시에는 MRO시스템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서 앤드유저 시장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같은 시간, 같은 노동력이 투입된다면 앤드유저 시장이 가성비가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변해서 직원도 생기고 MRO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관리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기업시장을 뛰어들고자 하는 예비 창업자들은 어느 시장으로 갈지 본인의 상황과 성향을 고려해서 움직이면 됩니다. 아니면 저처럼 동시에 병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재작년에 아이마켓 측에서 납품이 가능하냐고 문의가 들어와서 협력업체 등록은 했으나 앤드유저에 집중하기 위해 아직은 한 군데 MRO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MRO 시장에선 무엇을 팔 것인가
MRO사이트에 협력업체로 등록하면 사이트에서 견적요청이 올라옵니다. 그럼 견적단가를 제출하고 낙찰이 되면 물건을 팔면 됩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자 그럼 무엇을 팔 것인가요?
이 시장에서의 판매전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특정 제품을 선정해서 그 제품류만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물티슈만으로도 한해 50억의 매출을 올리는 업체의 이야기를 MRO담당자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집중하니 원가가 낮아져서 가격경쟁력이 생기게 됩니다. 수많은 아이템 중에 한 가지 카테고리를 정해서 단일 상품을 팔게 되면 관리하기도 편한 장점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MRO에서 필요한 수많은 종류의 제품을 다 취급하는 경우입니다.
사이트에는 수만 가지 종류의 제품 문의가 올라오고 MRO담당자는 빠르게 응대해주는 협력업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카테고리만 취급하는 업체는 이럴 경우 응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 MRO업체는 어떤 제품이라도 견적을 주고 납품할 수 있는 업체가 필요하게 됩니다. 만물상 같은 경우입니다. 저는 이런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내 물건은 없지만 사고파는 일은 똑같습니다. 싸게 매입해서 마진 붙여 파는 원리는 매한가지입니다. 오랫동안 구매를 해왔기 때문에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팔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효자노릇을 하는 상품이 꼭 생깁니다. 서버도 팔았고 소화기도 팔았고 장갑도 팔아봤습니다.
그래서 어느 방식이 좋은가요?
저는 직거래와 MRO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후자의 형태로 일하지만, 만약 MRO만 한다면 한 가지 아이템을 정해서 여러 가지 MRO 사이트에서 복수로 판매하는 전략이 가장 유효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 방식은 다른 일과 병행할 때 알맞은 형태인 것 같습니다.
MRO사이트에 협력업체로 들어가려면
일단 사업자가 있어야 합니다. B2B 시장이니 당연한 얘기겠죠.
MRO사이트에 들어가면 등록절차를 자세히 안내해 놓았습니다. 보통은 등록 매뉴얼이 있으니 그대로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그리고 MRO 담당자들에게 본인의 회사를 적극 알리고 여러 담당들에게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요청을 해두는 게 좋습니다. 협력업체에 등록되면 견적요청이 들어옵니다. 처음에 하나씩 견적을 주다 보면 어느 정도에서 낙찰이 되는지 감이 생기게 됩니다. 실전이 최고의 가이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