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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Feb 23. 2023

어디서든 다정함은 존재한다

작은 인연과 따뜻한 하루

도통 집중할 수가 없다.

한 십 분 정도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이 무슨 일인가. 나이가 들어서 집중력이 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요즘 유튜브 같은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고루한 활자에는 집중력을 도통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일까.

나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오늘 오전엔 비가 내렸다. 미세먼지도 안좋았다.

점심을 먹고 급식실을 나오니 복도 창가에서 환한 빛줄기가 보였다. 하늘이 개이고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 메신저 쪽지를 보내셨다.

“잠깐 들어오세요.”

똑똑. 문을 두드리고 교장실로 들어가니 교장선생님께서 책을 한 권 내미셨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이었다.

얼마 전 교장선생님께서 이 책이 좋다며 한 권 선물해 주마 하셨는데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교장선생님은 정말 나에게 선물을 해주신 것이다.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챙겨준 것이 얼마만일까.

나를 생각해 주시고 책을 주문하시고 선물을 내미시기까지 그 과정에 나를 어여삐 여기시며 준비하셨을 시간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서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마음을 담은 쪽지를 교장선생님께 보냈다.  


**


교장선생님,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많을 텐데, 어여삐 봐주셔서 저도 마음 편히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의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달리 드릴 것도 없고 해서, 예전에 제가 한참 심적으로 힘들 때 썼던 글귀 하나 보내드려요.

시라고 해도 좋고, 그냥 짧은 소품이라 해도 좋은 글입니다.

그냥 한번 읽어주세요. ^^  

 

**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저 새는 알까?

차가운 입김을 거두고 햇살이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저 잎새는 알까?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사라짐을,

또 한순간의 괴롬도 끝이 있음을,

오지 않을 듯하던 봄도, 너도, 또 그 어떤 바람도

내게 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세계는 흐르고,

그 어떤 행복도 끝이 없지 않은 것처럼

그 어떤 시림도 영원하지 않고

너도, 나도, 또 흐를 것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처럼.

또 사그라질 이 화려한 봄날처럼.  

 

2013.3.19.


**

 

그러자 또 꿈보다 해몽이 좋은 교장선생님의 답장이 왔다.  

 

실장님,

메시지를 늦게 보았네.

 

고마워서.

마음이 따뜻해서.

소소한 것인데 감사히 여기니 좋으네요.

 

어려웠을 때 썼을 시를 복사해서 좀 크게 키워서

프린트해서 보니

마음이 더 다가오네.

 

인생을 살면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밀려올 때

평상심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태도로

인생을 관조한 게 훌륭해 보여요.

 

세상 모든 건 영원한 건 없다는 것.

슬픔도 기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이 고난도 끝이 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네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짠' 하네요.

하지만 그걸 시로써 승화시키고

결국 이겨냈다는 게

더욱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아서

가슴이 따듯해졌어요.

 

"멋진 인생 살아요 “

 

**


찾아보면 삭막하기만 한 직장생활 속에서도 숨 쉴 만한 작은 틈은 존재한다.

어디든, 사람 살아가는 곳이니까.

감사하고 따뜻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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