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소회

다가올 30대가 두렵지 않아졌다.

더이상 싱그럽지 않을 외모와 뻔할 수 있는 인생을 받아들이는 일

by 푸들

눈썹 문신, 새치 염색, 쌍꺼풀 수술, 필러, 보톡스...

이 모든 것은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나에게 권해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모두 단칼에 거절했다.



내가 외모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생긴대로 살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라서 혹은 본판이 원래 예뻐서 외모에 손을 댈 필요가 없어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만큼 외모 혹은 ‘보여지는 것’으로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남들의 시선과 나의 외형에 굉장한 신경을 쓰고 살았다. 그래서 20대 초, 중반에는 밥은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떼울지언정 계절마다 괜찮은 외투, 바지, 치마 등을 골고루 몇 벌씩 갖추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내가 두 사람을 만나고 달라졌다. 한 사람은 5년 만난 남자친구이고, 다른 한 사람은 30만 가까이 되는 구독자를 보유한 한 유튜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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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 없이 작으면서 또 10시 10분을 향해 살짝 올라가 있는 눈을 가진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게 소원이었다. 특히 여고 다닐 때는, 방학만 지나면 미용실 가서 반나절 만에 휙 머리 색 바꾸듯이, 손쉽게 쌍꺼풀 수술을 하고 살짝 부은 눈을 한 채 학교에 나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개학날에는 부은 눈 때문에 다들 “야 너 이러다가 붓기 평생 안 빠지면 어떻게 해!”라고 걱정하던 반 친구들도, 학기가 지날 수록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인상에 “나도 다음 방학 때는 꼭 쌍수를!”을 외쳐댔다. 물론 나도 다짐을 외치는 무리 중 한 명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엄마에게 쌍수 타령을 해댔고, 듣다 못한 엄마 아빠는 목표로 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선물로 해주시겠다는 전형적인 딜을 해오셨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목표로 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그렇게 나의 쌍수는 훨훨 멀리 날아가는 듯 했다.


목표로 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다니다 보니 만족하게 된’ 학교에 진학해서 캠퍼스를 누비는 나에게는 이성보다도 예쁜 여자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대학교에는 나이에 상관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존재하다 보니 귀여운 이미지의 신입생부터 세련된 이미지의 대학원생까지 여러 타입의 예쁜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외모, 외형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알게 된 주변 언니, 또래, 동생들은 대부분 외모에 신경 많이 썼다. 물론 누구나 외모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몇 번쯤은 거울을 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이고 평범한 가꿈 혹은 관리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필러나 보톡스를 맞고, 눈썹 문신과 속눈썹 연장, 지방 흡입, PT와 플라잉 요가 등 몸에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하는 정도의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들은 비용이 많이 들며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들을 ‘자기 관리’라는 명목 하에 귀찮음과 아픔을 견뎌가면서 해나갔다. 그리고 나에게도 “요즘 얼굴에 한 군데도 손 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데… 광대가 컴플렉스라며~ 광대 보톡스라도 맞아보는 건 어때? 그 정도는 요새 흠도 아니야, 다 해~”라며 시술을 적극 권장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머리 앞쪽에 살짝 삐져나온 새치 한 가닥을 뽑아주며 “나이에 비해 새치가 빨리 올라오는 스타일인가보다. 아직 젊고 또 앞쪽은 보이면 뽑기라도 하지, 안 보이는 곳은 뽑지도 못하니까 그냥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는 건 어때?”라는 말도 건넸다.




그때도, 지금도 그들이 나에게 악의가 있어서 혹은 나를 소위 ‘꼽 주려고’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이건 내가 지금까지도 그들과 간혹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증명되는 부분이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그런 식으로 많은 투자를 하면서 외형상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나에게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 또한 앞서 말했듯이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몇 번 깊은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당시 만나던 전남자친구로부터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다.”는 말, 나이 많은 여사친은 소개팅 시켜주기도 상대방 남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꽤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한때 외모 집착과 나이 들어감에 대한 불안이 급격하게 심해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5년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그의 모습 때문에 외모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20대 초반에 만났고, 5년을 만나는 사이 어느새 둘 다 20대 후반이 되어 말 그대로 내일 모레 서른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볼 때마다 “너는 사람들이 말하는 정석으로 예쁜 외모는 아니지만 정말 매력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라던가 “처음에 너를 좋아하게 된 건 외모 때문이 아니라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습 때문이었어. 그리고 여전히 그런 점이 좋고.”라며, 외적인 것이 아닌 나의 내면, 가치관, 행동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점차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나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제는 외적인 것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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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 들어감의 길 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시술과 온갖 것을 해서 젊은 외모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길 위를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출 뿐, 결승 지점은 사라지지도 않고 여전히 저 앞에 놓여있다. 나의 30대가 두려웠던 것은 주름살이 생기고 살이 찌면서 외모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보통 사람들처럼 연애하다가 나이가 되면 결혼하고, 애를 2명 정도 낳은 후 직장과 육아 및 집안일이라는 두 가지 난제 사이에서 평생 힘겹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을 ‘뻔한’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기에, 뻔한 그림이 그려지는 30대의 허들을 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얼마 전, 30대 후반의 한 여성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녀는 3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세련되고 힙한 스타일링을 소화해내고, 혼자 식사할 때도 예쁘고 멋스럽게 플레이팅을 해놓고 누구보다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나이가 적지는 않지만 연애와 결혼은 하고 싶을 때 할 것이라고 말하며, “누군가는 내 나이에 도전은 무슨 도전이냐고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눅 들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는 순간,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나의 30대도 마인드와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30대가 되면 40대가, 40대가 되면 50대가 두려워질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한 나이 들어감 때문에 30대, 40대, 50대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우리가 겪어야 할 수많은 과정들, 새롭게 감내해야 할 고통과 어려움들이 행복을 건네줄 다른 일들보다 더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다음 허들을 생각하면서 잠시 불안하고 힘든 것일 뿐이다. 하지만 기억하는가? 우리가 10대에서 20대로 넘어올 때는 두려움은 커녕 다가올 20대가 정말 짜릿하고 두근거리고 기다려졌다는 사실을! 우리의 남은 나날들, 다가올 시간들도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무한정 긍정적으로도, 무한정 부정적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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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된 후 지난 7~8년간 나는 외모 걱정, 연애와 결혼 생활 걱정 등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30대를 걱정하며 살았다. 비록 30대를 코앞에 두고 뒤늦게 마음가짐을 새로이 했지만, 나의 삶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컨버스에 청바지 입고 다니는 60, 70대 외국 할머니들처럼 생각과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싱그럽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이상 나의 30대가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거울을 볼 때마다 이마 부근에 보이는 몇 가닥의 흰머리는 여전히 족집게로 뽑아낼 것이며, 외출할 때 화장도 할 것이고 계절마다 몇 벌의 좋은 옷도 살 것이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해서 외모를 전혀,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지 않을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불안해하고 나이 들어감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극도로 싫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게 되니, 이제는 다가올 30대에 내가 얼마나 더 여유로운 모습의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지 궁금해졌다. 걱정 많고 힘들고 우울했던 20대가 가면, 또 얼마나 짜릿한 30대가 다가올까? 얼마 남지 않은 30대,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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