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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Jan 11. 2021

어느새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렸다.

자의적인 교류의 결여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성 저하에 관한 소고

적지 않은 시간을 프리랜서로 보냈다. 2년 넘게 취업 준비를 하고 알만 한 기업의 최종면접까지 거침없이 뚫고 올라갔음에도 결국 <골인>은 다른 이의 차지였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오랜 시간을 좌절과 한탄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보다 못한 가까운 이가 동업을 제안했다. 더이상은 무엇을 하면서도 사실상 무엇도 하지 않는, 그러니까 취업 준비라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준비를 하면서 그 어떤 생산물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는 쳇바퀴 속에서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제안에 응낙했다.그렇게 우리들은 사업자등록증과 사업자등록번호 따위의 것들을 가지게 되었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필기시험을 응시하러 갈 때조차 돈이 든다. 교통비와 여러 가지 잡비들이 적지만 분명하게 소요된다. 면접이라도 가게 되면 치장비로 수 배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의미의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하고 발급받는 것에는 1원 한 푼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직접 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몇 분이면 간단하게 신청 가능하다. 그래서 사업자등록을 할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며칠 후 두 손에 쥐어진 사업자등록증을 보고 있자니 꽤나 책임이 무거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했던 감정의 동요는 이내 말끔하게 사그라들었다. 그 누구도 나라는 사람 한 명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상에서 2년 넘게 고군분투 하다보니 이렇게라도 나의 의지를 기꺼이 받아주는 국가에 고마워지기까지 했다.




뜻하지 않게 시작했지만 어쨌든 사업자등록을 하고 벌써 3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에 옷도 떼어다 팔아봤고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도 팔아봤으며 한창 유행하던 플리마켓에도 수차례 나갔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 사업자등록번호는 원고료와 관련해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거나 발급 받기 위해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사업자등록증과 사업자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누가 내게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어올 때면 선뜻 “사업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실제로 나는 개인사업자이고 국가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으며 사업자등록번호로 일에 필요한 여러 행위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게 맞다. 하지만 난 매번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라고 얼버무린다. 애플이나 삼성, 쿠팡 혹은 적어도 마켓 컬리 만큼 거창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세우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Photo by Taylor Leopold on Unsplash


그렇게 2년 전부터 시작된 자칭 <프리 인생>은 부족하지만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못나고 한참 역부족인 글솜씨임에도 믿고 지켜봐 주시는 주변의 많은 고마운 분들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기회들이 감사했고 스스로 더 많은 기회들을 창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으며, 일과 삶의 밸런스에 대한 만족감도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겪었던 충격적인 개인적 경험은 나의 만족스러웠던 프리 인생에 급작스러운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1천 명을 넘어서면서 식당에 가기도 무섭고 배달도 질리던 차라 손이 많이 가지만 집밥을 자주 해먹었다. 그러던 중 유독 춥던 어느 날, 마침 냉장고에 야채며 온갖 재료들이 다 동났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홈트를 하다가 무리했는지 며칠째 팔 부위의 근육통이 심해서 소염제도 살 겸 마트와 약국에 들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사건은 이때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일 관련 미팅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을 제외하고는 바깥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인데,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더욱 바깥출입을 자제하게 되었다. 중요한 미팅이나 세부 결정 사항에 관해서는 화상채팅이나 전화, 메일, 문자 등으로 업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누가 되었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전보다 더욱 드물어졌다. 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서른쯤 되고 보니 각자 꾸린 가정과 일터에서 가지게 된 위치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예전만큼 쉽게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삶 전반에 있어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오래 나누어 본 일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자취를 하면서 가족들과 따로 살고 있기 때문에 집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 전화 통화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저 어디에 부딪혔을 때 내지르는 외마디 비명이나 실수했을 때 터뜨리는 탄식조의 ‘아!’, 유튜브를 틀어놓고 요리하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혼잣말 정도가 내뱉는 말의 전부인 날이 잦았다. 


Photo by Марьян Блан | @marjanblan on Unsplash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성과 사회적응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나 보다. 마트에서 점원이 내게 말을 하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3번이나 되물었다. 그리고 점원이 묻는 말에 선뜻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고 머뭇거리는 스스로를 느꼈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고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점원은 그저 나의 의사를 묻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달려오는 차를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몸은 얼음 기둥이 된 것마냥 굳어버려 미처 차를 피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하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 역시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어, 어…”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필 주말이라 뒤에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점원은 다소 짜증이 배어있지만 친절이라는 미덕을 잃지 않은 채 천천히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아차!’ 싶었고 여전히 허둥댔지만 어쨌든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바로 다음 코스였던 약국에서도 발생했다. 약사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했다. 중년의 약사는 “내가 지금 물은 건 그게 아니라”라며 짜증 섞였지만 체념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물건을 사는 아주 간단한 일을 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동일한 일이 문제로 다가오니 문득 두려웠다. 


나,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었던 걸까?
그래서 사회성 떨어지는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린 걸까?

평소에 혼자서 밥도 잘 해먹고 좋아하는 영화도 알아서 잘 찾아서 보고 선호와 비선호, 즉 호불호가 명확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인과 섞여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사랑하며 또 그 안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일을 잘 해낼 수 있으며,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채널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가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일을 계속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혼자 살면서 이 정도 누리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오만했고 자만했다.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사회 안에서 받는 에너지와 경험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데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Photo by Sasha  Freemind on Unsplash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은 채 재택근무를 하고 화상수업을 듣는 미래를 그리는 작품은 더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들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쓸데없는 감정 소모와 시간 낭비가 없어질 미래를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그린다. 하지만 그런 미래가 과연 우리의 기대처럼 밝기만 할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물론 이런 미래가 도래하더라도 여가시간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로 타인과 대면하는 시간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해왔듯 일터와 배움터에서 사람과 사람으로서 마주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경험, 정서적 교류가 없는 사회에서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욱 커질 것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회피하거나 떠넘길 수 있는 미래 사회는 행복하기만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타인과의 교류가 제한된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단절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피로감, 고통,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만 보아도 사회적 교류의 단절이 불러일으킬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사회는 단순히 개인과 개인이 모여 이루는 집단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경험과 가치관, 감정의 공유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개인들이 모이는 곳이 사회다. 속이 텅 빈 개체들이 단순히 한 공간에 모여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것이다.


Photo by visuals on Unsplash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코로나 사태가 종결되면 어디든 나가서 끼어들고 스며들어 보자고. 억지로 학교에 다니고 즐겁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 안에서 부딪히며 실컷 웃고 싫은 것을 감내도 해보고 짜증도 냈었던 그때처럼 사람들 안으로 다시 들어가보자고. 감정을 분출하던지 묵히던지, 회피하던지 직면하던지, 묵인하던지 터뜨리던지, 어쨌든 사람들 그리고 사회 안에서 지내다 보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소모적이고 낭비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 알았기에, 나는 때가 되면 다시 사회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보려 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결정을 후회할 만큼 인간관계와 사회적 교류에 진저리가 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다시 발을 내딛어보려 한다.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차라리 도전하고 후회하는 게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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