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틀리지 않았다. 그저 특별할 뿐.
우리는 만화책을 보는 모습에 따라 사람을 간단하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말풍선 안에 가득 채워진 글자에 집중하는 타입과 스토리도 보지만 한 컷 한 컷의 그림을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눈이 빠지게 쳐다보느라 한 권 읽는 데 몇 시간씩 걸리는 타입. 이 정도로 분류 해볼 수 있다. 확실하고도 반박할 수 없는 의미에서 전자에 속하는 인간인 나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도 그림을 보는 것이나 그리는 것 모두에 있어 썩 소질이 없는 인간임이 확실하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뭘까? 어떤 대상을 보고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일까? 도대체 어떨 때 손에 붓과 연필, 물감을 들고 신 들린 것처럼 떠오르는 영감으로 몸살을 앓게 되느냐는 어느 순간 내게 있어 미스테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 있는 세대에 속하는 인간이 비겁한 변명을 한 마디 하자면, 나는 평소 어떤 대상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변변한 셀카나 사진 작가들의 그것과도 같은 예쁜 풍경 사진 한 장 없다. 이런 내게 특정 대상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엄청난 의지의 개입이 아니고서야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써놓고 보니 감성이 제대로 메말라서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다름이 없다. 휴!
지금이야 그놈의 ‘먹고 살아야 한다’는 쿨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주제와 소재가 정해지면 보기 흉할 정도를 갓 벗어난 수준의 일러스트 정도는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특정 대상을 즐거이, 기꺼운 마음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20년 전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나는 전설의 학원 뺑뺑이 세대였다. 나의 초딩 시절 일대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확실한 뺑뺑이 세대 말이다. 만 5세 반부터 논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종이접기, 수영 등을 골고루 배워봤으며 영어와 수학 학습지를 비롯해 피아노, 태권도와 같이 남들 다 하는 예체능은 말할 것도 없이 기본으로 깔고 갔다. 이렇게 수많은 방과 후 수업과 학원 강의를 들어봤지만, 30년을 살아오면서 다른 건 다 기억나지 않아도 유독 미술, 그림과 관련된 것은 뇌리에 콕 박혀 있다. 아마도 칭찬과 비난 사이에서 널을 뛰던 나,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한 평가 때문일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무적의 초딩 2학년 때였다. 갓 신입생 티를 벗고 1학년 후배들의 언니가 된 2학년은 큰어머니의 권유에 힘입은 엄마의 결정으로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할 오후의 돌보미로 당첨된 것이 바로 미술학원이었던 것이다. 학원에 다니기 전에도 내가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소질이 있었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필라멘트가 훅 나가버린 전구가 달린 방처럼 아주 깜깜한 기억 뿐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학원에 다니는 동안 꽤나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학원에선 선생님께서 매일 주제를 정해주시면 그에 관련된 그림을 1장 이상 그리고 피드백 받는 것이 일과였다. 2장, 3장을 그려도 되지만 최소 1장은 꼭 그려야 했고, 욕심 많은 2학년은 늘 2장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께서 귀찮을 정도로 도화지를 요구하고 또 요구했으며 내 그림 좀 봐달라고 조르고 또 졸랐으니, 그 열정에 대해서만큼은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상상력이 더해진, 지금 보면 어떻게 저런 상상을 했지, 나 신동이었나 할 정도로 꽤나 신박한 그림을 정성 들여 꼼꼼하게 그리며 그 어렵다는 다작(多作)을 해대곤 했다.
그러던 중 소풍이라는 주제가 던져진 날이었다. 학교에서 견학 갔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비록 원근법은 몰랐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과 가까이에 있는 꽃들을 거리에 맞게 작고 크게 그리며 하늘엔 구름이 뭉게뭉게 떠있는 모습을 그렸다. 스케치에 이어 크레파스로 채색까지 모두 완료한 후 손을 번쩍 들어 선생님께 자신 있게 대작이 완성되었음을 외쳤다. 칭찬 세례가 쏟아질 것으로 기대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던 내게 원장 선생님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내리셨다.
“혜서야, 잘 그렸는데 구름은 다시 칠해야겠다. 지금 창문을 열어서 하늘을 봐봐. 하늘은 파란색이고 구름은 하얀색인데, 혜서는 구름을 파란색으로 칠하고 하늘은 하얀색으로 바꿔서 칠했잖아” 라고 하며 흰색 크레파스를 들고 파란색 구름 위를 흰색으로 벅벅 칠하는 게 아니겠는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OMG!
어린 마음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나름대로 강력하게 자기 변호에 나섰다.
“선생님, 저는 이렇게 색칠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눈에는 구름이 하늘색으로, 하늘은 흰색으로 보여요. 저는 그냥 이렇게 하고 싶어요.”
“아니야, 혜서야. 그림은 정확하게 그려야지. 자, 크레파스 들고 다시 칠해봐. 선생님이 옆에서 봐줄게.”
그녀는 그렇게 나의 그림을 그녀의 기준에서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것도 그림을 그린 아이의 손에 직접 크레파스를 쥐어주는 방식으로 아주 잔인하게!
이런 일이 인생에서 한 번 뿐이었다면 나는 행운아에 가까웠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꼬박 밤을 새워 채워간 셀로판지 모자이크 작품을 두고 “정말 네가 한 거 맞니? 엄마나 누가 해주신 거 아니고?”라는 의심을 받았고, 고등학교 때는 <명화 따라 그리기> 과제를 위해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그렸다가 “네 눈에는 이게 반 고흐의 해바라기로 보이니? 모양새는 그렇다 쳐도 색깔은 또 왜 이래? 네 점수는 C-야.”라며 수업 도중 교탁 앞으로 불려가 스스로를 색맹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직설적인 비난을 몸소 받아낸 적도 있었다.
물론 앞서 말한 ‘칭찬과 비난이 널을 뛰었다’는 표현처럼 극도의 칭찬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시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것이라던지 전국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것이라던지, 뭐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보단 비난의 횟수와 강도, 깊이가 더욱 크게 다가왔기에 그림과 미술은 내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매 교육과정에서 칭찬보단 꽂히는 비난을 접할 일이 많았던 나는 그 모든 것이 내게 비난을 던졌던 그들의 말처럼 ‘내가 유별나서’, ‘내 눈이 이상해서’, ‘잘 그리는 기준에 맞춰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서’ 등과 같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넘기면서 종교와 심리학을 공부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나에게 주어졌던 비난과 허물 그리고 트라우마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 모든 것이 나에게서부터 비롯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피카소, 반 고흐, 모네 같은 위대한 거장들처럼 특별해질 수 있었던 한 소녀를 눌러 앉혀 날개를 펴지 못하도록 한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색맹이 아니었고(이는 안과 검진에서도 입증된 부분이다), 그림을 진실로 좋아했으며,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사진이나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초상화가 아닌 이상 그 안에 상상력과 현실에의 변형과 왜곡은 자유롭게 허락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며 거장의 그림에서와 같은 색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름과 하늘을 눈에 보이는 색으로 사실적으로 색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쉽게 누군가의 신념을 꺾고 가치관을 바꾸려 했으며 종국에는 비난까지 퍼부었다.
화단에 쭉 뻗은 채 꽃잎을 활짝 벌리고 있는 저 해바라기는 노랗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현실의 그것과 흡사하다. 모양도 색도. 나의 해바라기는 현실의 그것과도,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도 다르다. 그럼에도 나의 해바라기도 해바라기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하늘색이라는 말에 걸맞게 푸르고 푸르다. 뭉게구름이든 실구름이든 구름은 하얗다. 누군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하늘은 하늘색으로, 구름은 흰색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하늘은 너무 파랗다 못해 강렬하게 해가 내리쬐어 온통 희게 보이는 착시에 빠진 것처럼 하얗게 보이는 하늘이다. 이런 나의 하늘도 하늘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상대방의 특별함을 인지하고 인정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유별난 것이 틀린 것,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이를 인정 받지 못한 어린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나라도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 싶다. 당신은 틀린 게 아니라고, 특별한 거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어른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