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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May 11. 2020

내 귀에도 노이즈 캔슬링을

잡소리는 이제 그마안

내게는 내 돈 주고 선뜻 사기에는 부담스럽지만 누가 선물 해준다면 ‘얼씨구나, 옳다구나’하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넙죽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 것들에 관한 리스트가 있다. 크게 유행 타지 않는 디자인을 좋아하는 터라, 색상이며 모양새가 전반적으로 무난해서 잊고 살다 보면 5~6년은 거뜬히 쓰는 지갑이라던지 스마트폰이 있어 굳이 필요하진 않지만 스타일링을 위해 가끔 착용하는 손목 시계 혹은 욕실에 놓을 디퓨저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도 작년부터 리스트의 최상단에 위치한 것은 바로 에어팟 프로다.


한창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며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을의 중간 즈음에 발송될 예정인 무선 이어폰을 펀딩으로 구매했었다. 얼리버드로 구매했기에 정가보다 저렴한, 6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으로 득템 했다. 아니, 득템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렌치 코트를 쫙 빼입고 은행나무길 사이를 걸으며 분위기 있는 도시 여자 느낌을 내보고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에 흠뻑 젖어들려는 순간, ‘부아아앙’ 하는 배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애절하게 질러대는 발라드 가수의 고음이 저 멀리로 아득히 사라져 버렸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시중에서 판매 되고 있는 무선 이어폰과 비교했을 때도 유독 저렴했기 때문에 어디다 대고 감히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6만 원 주고 산 무선 이어폰이 페어링도 잘 안 될 뿐더러 중간 중간 잘 끊기고 음질은 마치 동굴 속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한 것과 같다는 점을 일일이 열거하면 분명 “야, 6만 원 짜리 이어폰에 뭘 더 바라. 소리라도 잘 나오는 게 어디야”라는 핀잔이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서비스 센터에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이미 ‘그래… 내가 욕심이 과한 거지. 30만 원짜리 에어팟도 아니고 1/5 가격의 이어폰에 너무 바라는 게 많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동굴에서 며칠 살다 보니 이제는 왼쪽 이어폰 음량이 오른쪽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고, 참다 못해 고객센터에 연락했더니 초기 불량 사유의 하나인 것 같다며 동일 모델의 새 제품으로 무상 교환할 것을 제안했다.




이로써 6만 원짜리 펀딩 무선 이어폰을 통해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6만 원이 그렇게 저렴한 가격도 아닌데 왜 다른 비싸고 성능 좋은 브랜드 이어폰들과 굳이 비교를 하면서 ‘에이, 6만 원 짜리에 뭘 그렇게 기대를 해’라고 생각했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은 어디에나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팔 땅도 없지만, 땅 파서 100원 찾기도 어려운 마당에 6만 원이라는 금액이 절대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쿨하게 ‘에이, 뽑기운이 없었네’ 정도로 치부했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택시비 기본 요금이 비싸다며 어지간한 거리는 무거운 짐을 들고도 걸어다니고, 인터넷 쇼핑을 할 때는 택배비 2,500원이 아까워서 무료 배송 기준에 맞추기 위해 쓸데없이 양말 몇 개를 끼워넣기도 하면서 왜 6만 원에는 어울리지 않게 부내 나는 모습을 보였던 걸까?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한 내 속에 감춰져 있던 쿨한 모습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선 이어폰을 귀에 이식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선 이어폰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된 나로서는 지금의 이 고물 이어폰이 다시 한 번 고장나기 전에 얼른 돈을 모아 에어팟을 장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도 에어팟 프로로 말이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 빵빵한!



에어팟 프로 말고도 시중에 괜찮은 브랜드의 무선 이어폰 제품들은 다양하게 출시되어 있다. 디자인이야 어떤 것이든 조금씩은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비웠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비슷한 구성과 디자인, 가격대라면 이어폰이라는 것의 기능적 측면에서 비교적 뛰어나다고 알려진 에어팟 프로를 사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포인트는 주변의 쓸데 없이 반복되는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준다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었다. 내 귀에도 장착하고 싶은 ‘그 기능’ 말이다.




살면서 쓸데 없는 말들을 참 많이도 들어왔다. 어릴 때는 나를 향한 간섭 어린 말들도 뒤이어 따라오는 “다 널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들에 묻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20살이 되어도, 나를 키워주신 분들에게서 정신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모두 독립한 후에도 나를 향한 일종의 ‘노이즈’들은 끊이질 않았다. 노트북 덮개를 덮고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팬 소리처럼, 한여름 장마철에 하루 종일 가열차게 돌아가는 제습기 소리처럼, 좁은 원룸에서 자려고 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가 잠이 들락 말락 할 때면 어김없이 ‘퉁! 부아아아아아’하고 시작되는 냉장고 소리처럼 ‘널 위해서’라는 변명 하에 나를 향한 걱정들이 온갖 곳에서부터 밀려들었다.


부모님, 친척과 사돈에 팔촌 어르신들부터 친구네 부모님 그리고 이제는 머리 컸다고 걱정하고 위해주는 척 하면서 상대방을 돌려 까고 돌려 주저 앉히는 몇몇 선배, 동기들과 이렇게 저렇게 아는 지인(지인이라 부르고 길 가는 행인 만도 못한 관계라고 쓰는)들까지, 오히려 나이를 먹으니 어렸을 때보다 더 주변에 나를 위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노이즈 발생 기지국이 늘어도 너무 늘었다. 정작 나 자신은 그런 노이즈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내 선에서 아무리 저 잘 하고 있어요, 알아서 밥벌이 하면서 지낸답니다 호호, 걱정은 고이 접어 다시 넣어주세요, 듣기 싫은 말은 제가 먼저 거절하겠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말해도 상대방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 막무가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들이 발생시키는 노이즈에 스스로의 귀가 멀어버려서 그런 것인가 싶을 때도 있다.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꽃 같이 말해도 개 같이 말해도 ‘간섭은 이제 그만!’이라는 일곱 글자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이제는 내 귀에 스스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장착하고 싶다. 그것도 아주 아주 강력하고 빵빵한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다가! 그래도 좋은 소리나 꼭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들은 듣고 살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가족 오락관>에서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솜뭉치 귀마개는 안 될 것 같다. 그냥 딱 에어팟 프로처럼 일상에서의 귀찮은 소리들,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와 간섭 어린 말들만 걸러내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 정도만 내 귀에 탑재하면 될 것 같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각출해가는 월정액이 아깝지 않도록 좋은 퀄리티의 음질을 사수할 수 있는 에어팟 프로를 구매하는 그 날을 위해 그리고 지긋지긋한 노이즈들에서 해방될 그 날을 위해 오늘도 꾸역꾸역 잡소리를 견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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