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들 Apr 21. 2020

표리부동형 인간

거, 앞 뒤 조금 다른 것 정돈 애교로 봐줍시다.

먼저 연락을 하지 않고 오는 연락에도 느즈막히 반응하는 집순이가 있다. 그녀는 먼저 연락하면 혹시라도 만남 약속을 잡게 될까 봐 누군가에게 섣불리 연락하지 않는다. 이번 주는 다이어트를 해야 해서, 다음 주에는 왠지 조금 피곤할 것 같아서, 이번 달 운세를 찾아보니 전체적으로 많은 날들에서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높으니 웬만하면 사람 만나는 일을 줄이라는 조언이 있어서 등의 이유로 방구석 지박령이 된 자신을 합리화 한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요즘 어떻게 지내?, 얼굴 까먹겠다, 한 번 보자와 같은 상투적인 말들이 후두둑 쏟아져 들어온다. 언제까지 답장을 미루는 게 메세지 온 걸 미처 알지 못 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고민한다. 그렇다고 답장을 미루는 시간 동안 마음이 편한 건 절대 아니다. 답장 후에 이어질 약속 잡기의 현실적인 과정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면서 어떻게 하면 약속을 최대한 다음으로 미룰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물론 가장 베스트는 정말 ‘안부만 묻고 마무리 하는 것’이다.


이틀 같은 두 시간이 흐르고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답장을 한다. 예상대로 동창은 ‘밥 한 번 먹자’와 같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 “많이 안 바쁘면 한 번 보자”를 직구로 던진다.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더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벼랑 끝이다. 어쩔 수 없이 “그래. 나는 다음 주부터 시간 될 것 같아. 너는?”이라는 말과 함께 약속 잡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를 취한다.



약속 당일, 만렙 집순이는 제발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약속이 깨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만큼은 장염을 세게 앓아도 좋으니 어떤 변명거리가 스리슬쩍 나를 관통 해주길 기도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이 화창하고 바람이 선선하며 바깥 나들이 하기엔 최적이다. 컨디션도 12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나 맞이한 일요일 아침보다 더 좋다. 어쩔 수 없다. 늘어진 몸뚱아리를 흐느적대며 욕실로 향한다.


오랜만에 공들여 준비하고 산뜻하게 차려입고 나서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어디선가 향긋한 꽃내음이 날아와 나를 감싸는 듯 하다. 불과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약속이 미뤄지길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도했던 집순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살면서 한 번도 이렇게 흥겨운 기분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인 것처럼 종말을 맞이한 사람의 탈을 쓰고 세상 제일 신난 사람이 된다.



그렇다. 이 집순이는 표리부동형 인간이다. 아니, 표리부동의 끝판왕이다. 이건 마치 동생이 라면 끓일 때 “언니도 먹을 거야?”라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놓고 동생이 라면과 김치, 수저 젓가락을 풀세트로 갖춰놓고 의자에 앉으면 쪼르르 달려와 “한 입만!”을 외친 후 반 이상을 제가 먹어치우고 남은 국물에 밥까지 시원하게 말아먹는 모습과 같다. 다이어트 한다더니 샐러드를 한 사발 먹고 늦은 시간에 룸메이트가 시킨 피자를 룸메이트보다 더 많이 먹고는 천연덕스럽게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외치는 모습과 같다. 그러니까 이런 표리부동형 인간은 새로이 나타난 종족이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과거부터 대대손손 길이길이 역사와 함께 장수해온 전형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생각해보라. 조선시대라고 해서 안 먹겠다고 해놓고 친구가 먹고 있는 약과 하나만 달라고 하다가 기어이 약과 봉지를 들고 남은 부스러기를 입에 탈탈 털어넣기까지 하는 사람이 없었겠는가? 어느 시대건 표리부동형 인간은 꿋꿋하게 살아남아 왔다.


표리부동형 인간은 우리의 모습 그 자체다. 덜어낼 것도, 덧붙일 것도 없이 딱 인간이라는 것 그 자체의 모습 말이다. 마음 먹은 것과 다르게 행동하고 때론 의지 박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고 이것이 발현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인간미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넌 표리부동한 사람이야!”라는 말로 비난을 하려 한다면, 이는 곧 네 정체성을 버리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너무나도 끔찍하지 아니한가.


앞과 뒤가 완전히 다르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며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상황에 따라 이 얼굴, 저 얼굴 다르게 내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바가지로 욕을 해줘도 모자라지 않다. 하지만 꿈쩍하지 않고 집에만 있길 바라는 집순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도 막상 밖에 나가서는 세상 신나게 노는 모습이나 백날 천날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지만 마찬가지로 군것질을 달고 사는 모습, 데이트 할 때는 잘 보이고 싶어 입 주변을 조심 조심 닦아가며 새 모이 만큼 먹고 집에 와서 양푼에 나물과 고추장 팍팍 넣고 비빔밥 만들어 푹푹 떠먹는 모습처럼 소소한 표리부동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를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모든 인간들의 소소한 표리부동을 응원하는 바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옹이 주는 백 마디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