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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16. 2022

밤:에 대한

오롯이 나

꽃구경을 하러, 단풍 구경을 하러, 바람을 쐬러. 인근 지역으로 나들이를 가다 보면 국도 찻길 가에는 알록달록 천막들이 보인다. 계절에 따라 딸기, 사과, 복숭아, 무화과, 감 같은 과일부터 고구마, 호박, 옥수수 같은 작물까지 직접 재배했다는 먹거리들을 쌓아두고 파는 곳이 많다. 천막에서 이것들을 사고 난 후면 시장에서보다 비싸게 산 것 같다, 맛이 없다 투덜거리면서도 소여사는 늘 그 빨강 노랑 천막을 지나치지 못하고 차를 세운다. 이번 종목은 밤이었던 모양이다.


밤을 어금니로 콱 깨물어 두 동강 낸 후, 티스푼으로 노란 속살을 파먹는 이 과정을 나는 매우 귀찮게 생각해서 삶아놓은 밤에 손이 가질 않는다. 아무리 얌전하게 먹어도 먹고 난 후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를 치우는 일 또한 번잡하다.


남편이 과도로 밤 껍질을 벗겨 노란 밤의 형태를 온전히 보전한 밤을 입에 넣어주었다. 동그란 형태의 밤이 입 안을 가득 채우면 동그란 행복과 만족감이 느껴졌다. 티스푼으로 파먹었다면 느낄 수 없는, 바스라지고 말았을 속살이 온전하게 뭉쳐져서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동그란 밤을 맛보기 위해서는 밤이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 겉껍질을 벗겨 내고, 겉껍질을 벗겨낼 때보다 좀 더 조심조심 속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상대를 위해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사랑해'의 다른 표현 같다. 동그란 밤 맛을 알게 된 후로 남편은 매번 밤을 깎아 입에 넣어주었고, 남편의 그 행동에 만족감과 사랑을 느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밤이 많이 나는 고장이었다. 우리나라 밤 수확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었는데 어쩐지 최근에는 그 타이틀을 공주에 내어준 모양이다. 얼마 전 공주에 여행을 다녀왔더니 온통 밤으로 가득했다. 밤 짜장면, 밤 막걸리, 밤 백숙, 밤 비빔밥......공주에서는 모든 요리에 밤을 넣어 먹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유명하다는 곳에서 밤파이를 두 상자 사서 돌아왔다. 밤처럼 생긴 파이 겉은 페스츄리로 싸여 있는데 속에는 밤크림으로 가득하고 밤크림 안에는 동그란 알밤이 하나 들어 있었다. 진한 밤크림이 느끼하지 않고 고소해서 커피와 잘 어울렸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에 가을이 오면 밤 아가씨 선발대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길 곳곳에 걸리곤 했다. 밤과 아가씨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고추아가씨에 비하면 밤 아가씨가 귀엽게 느껴졌다. 건너 건너 친구의 언니가, 누구누구의 딸이 밤 아가씨에 뽑혔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밤의 고장 타이틀이 공주로 넘어간 탓인지, 내가 고향을 떠나온 탓인지 밤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동그랗게 깐 밤을 먹으며 동그란 행복을 느끼며 여러 딴 생각들이 동그랗게 뭉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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