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개는 대야에 반죽해야 제 맛

호박 부침개

새색시 시절 매달 한 건 이상의 제사를 치러낸 소여사님은 덩치는 작으나 손은 크다. 음식 부족하게 하면 인색하다 하시면서 늘 음식은 먹고 남을 정도로 넉넉하게 하신다. 오늘도 소여사가 애용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가 싱크대에 위에 당당히 올라왔다. 나는 절대 쓸 일이 없는 도구.......

오늘 저녁 메뉴는 호박 부침개.

애호박이 아니라 초록색이고 제법 큰 조선호박이다. 얇게 썰어 채 썬 뒤 스테인리스 대야에 넣는다. 초록색을 더해줄 시금치, 주황색을 위한 당근, 달달한 맛을 위한 양파도 얇게 썰어 넣어준다. 계란 네 개를 깨서 넣고, 밀가루는 야채들끼리 엉겨 붙을 정도로만, 소금은 소여사 눈짐작으로 넣는다. 물을 알맞게 넣고 맨손으로 휘휘 저어주면 반죽이 완성된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반죽은 손으로 넓게 펴준다. 소여사는 부침개는 무조건 얇게 부쳐야 맛있다고 한다. 부침개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완성된 부침개는 알록달록 색깔도 보기 좋다. 간이 맞는지 보라며 처음 부친 전을 접시에 내어주셨다. 호박의 부드러운 식감과 밀가루의 고소함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첫째는 서둘러 먹다가 입이 데기까지 하고, 둘째는 얼른 전을 찢어달라 보챘다. 늘 할머니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외치는 첫째는 오늘도 할머니께 기분 좋은 엄지 척을 날려드렸다.

김치, 시금치, 부추, 호박, 쑥 등등. 사시사철 제철 야채를 넣고 부쳐내는 소여사표 부침개는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 오징어나 새우, 바지락 같은 해산물을 다져서 넣으면 감칠맛이 배가 된다. 야채를 즐겨 먹지 않는 아이들도 전 한 두장은 거뜬히 먹는다. 야채를 넣어 건강한 소여사표 전은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내가 어릴 적, 소여사는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징어를 넣은 부추 부침개를, 겨울방학 때는 김치전을 간식으로 해주셨다. 지금도 눈 내리는 날이면 뜨거워 후후 불며 먹었던 김치부침개가 떠올라 갑자기 해 먹곤 한다.

다 먹지 못한 반죽이 커다란 대야에 남아 있지만 밀폐용기에 담아 다음날 부쳐서 먹으면 된다. 내일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슬그머니 젓가락을 놓았다. 집 안은 온통 고소한 기름냄새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