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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12. 2022

생일이 아니어도 미역국을 끓인다

소고기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날이 쌀쌀해지니 소여사가 국을 더 자주 끓인다. 추운 날 따뜻한 것이 뱃속에 들어가야 힘이 난단다. 첫째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더 자주 먹게 되었다. 사실 나는 소고기 미역국보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멸치육수로 깔끔하게 끓여낸 미역국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소여사는 이제 딸 입맛보다 손주들 입맛이 더 중요해졌다.


첫째는 2.8kg으로 조금 작게 태어났다. 두 아이 모두 4kg 넘은 우량아를 출산한 소여사 눈에는 미숙아로 보일만큼 작고 여렸다. 너무도 작아 보이는 첫 손자를 키우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아이를 위해 고기를 곱게 갈아 주먹밥에 넣어 주거나 숟가락에 보이지 않게 얹어 먹이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또래보다 큰 편으로 잘 크고 있고, 지금은 고기반찬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소여사의 미역국이 깊은 맛이 나는 건 직접 담근 집간장이 비법이다. 시중에 파는 양조간장을 넣어서는 절대 이 맛이 안 난다. 소여사의 미역국은 묵직하고 깊고 품위 있는 맛이다. 피를 맑게 해 준다는 미역이 내 몸속에서 제대로 그 역할을 해낼 것 같다.


소여사는 가족의 생일 때마다, 내가 두 아이를 출산하고 난 이후에도 커다란 냄비 가득 미역국을 끓였다. 가족들 중에 누군가 체력이 떨어지거나 감기에 걸릴 때도 미역국을 끓여 주신다. 불지 않은 꼬들꼬들한 완도 미역은 식감도 좋다. 소고기, 집간장, 미역에서 우러난 국물을 한 수저 후루룩 먹으면 뱃속이 뜨끈해져 온다.


첫째는 미역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 작년 김장 때 담아둔 배추김치를 올려 후루룩 맛있게도 먹는다. 밥을 국에 말아서 먹지 않는 나는 밥 한 번, 국 한 번을 입에 넣고 잘 읽은 깍두기를 베어 문다. 잘 익은 김치 국물이 새콤하고 단단한 가을무가 오독오독 씹힌다. 남편은 첫째처럼 미역국에 밥을 말더니 파김치를 얹어 한 입 크게 먹고는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입이 짧은 둘째는 국 속에 담긴 소고기를 먼저 쏙쏙 골라 먹고 후루룩 국물을 떠먹는다.


올 가을 소여사의 환갑날에는 내가 전복 미역국을 끓여드렸다. 소여사의 환갑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고민했다. 소여사가 내 생일이며, 출산 후에 끓여준 미역국을 내가 맛있게 끓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여사는 먹는 내내 몇 번을 "맛있다!"라고 하셨다. 딸의 마음, 정성 때문에 맛있게 느껴졌겠지만 맛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간 내가 소여사에게 몇 번이나 미역국을 끓여드렸을까...... 자식은 늘 받는 존재라지만 내가 받는 것도 모자라 손주들까지 키우게 하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소여사에게 미역국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이다. 딸이 손주를 낳았을 때, 손주가 생일을 맞았을 때, 손주가 "소고기 미역국 먹고 싶어요!" 외칠 때, 손주가 감기에 걸려 입맛이 없을 때 소여사는 폭폭 끓여 낸 소고기 미역국을 식탁에 올린다. 정성이 듬뿍 담긴 그 음식을 먹고 아이들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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