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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12. 2022

팥죽할머니와 소여사

팥죽과 팥칼국수


2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팥죽할머니과 호랑이' 이야기 대본이 나온다. 아이들은 알밤, 송곳, 멍석, 지게가 팥죽 할머니의 팥죽을 얻어먹고 호랑이를 물리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할머니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도 좋아하고, 할머니를 도와준 여러 도구들(?)도 좋아하는 팥죽을 누군가는 동짓날에만 먹는 음식일 테지만 소여사는 날이 추워지면 자주 팥죽을 끓인다.


소여사는 팥죽할머니처럼 직접 팥죽을 만든다. 시골 팥을 압력밥솥에 푹 삶아 채에 거른 뒤 팥물을 뭉근하게 끓인다. 둥글게 빚은 새알을 넣기도 하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로 썬 면을 넣기도 한다. 아이들은 쫀득한 밀가루 면이 들어 있는 팥칼국수를 더 좋아한다. 


동짓날이면 모여 앉아 익반죽 한 찹쌀 반죽으로 새알을 빚는다. 첫째는 양손 사이로 반죽을 넣어 동글동글 예쁘게도 만든다. 중간에 손을 털고 일어날 법하건만 끝까지 앉아 새알을 빚어낸 손주가 기특해 소여사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새햐얗고 동그란 알갱이가 가득한 쟁반은 흡사 눈 내리는 풍경처럼 예쁘다.

새알팥죽과 팥칼국수

팥칼국수를 만들 때면 아이들은 할머니의 반죽을 기다린다. 밀가루 반죽을 떼어주면 조물 거리며 놀다가 여러 가지 모양도 만들어보고 빵칼로 썰면서 논다. 그렇게 놀다 보면 냄비에서는 폭폭 하고 용암이 솟구치듯 팥 국물이 끓어오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팥죽이 다 끓으면 소여사는 손주들 입이라도 델까 싶어 찬물을 받은 대야에 팥죽 그릇을 띄워 식힌다. 아이들은 한 김 식힌 팥죽을 후후 불어가며 호로록 잘도 먹는다. 


소여사의 팥죽은 팥을 아낌없이 넣은 탓에 국물이 진하고 되다. 국물이 진짜배기라는 소여사 말씀을 듣고는 숟가락으로 팥 국물을 떠서 먹는다. 팥죽을 먹다 입 안이 뜨거워지면 시원한 동치미 국물로 열을 식힌다. 팥죽을 먹는 아이들 입 주변에는 짜장면을 먹을 때처럼 팥 국물이 묻어있다. 소여사는 그런 손주들의 모습도 예쁘기만 하단다.


어려서는 팥죽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주 먹어서인지, 식성이 변한 탓인지 찬바람이 불면 생각이 날만큼 팥죽을 좋아하게 되었다. 팥죽 한 그릇에 설탕을 넉넉하게 넣어 달달하게 만든 다음 후후 불어가며 먹다 보면 뱃속이 뜨끈뜨끈해진다. 고깃국을 먹은 것 마냥 불끈 힘이 솟아난다.


팥죽은 팥을 삶고 체에 거르고, 팥물을 끓여 새알심이나 칼국수 면을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 길고 손이 많이 간다. 그럼에도 소여사는 겨울이면 자주 팥죽을 끓인다. 새알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새알 넣은 팥죽, 딸과 손주들이 좋아하는 칼국수 면을 넣은 팥칼국수 두 가지 버전으로. 


소여사의 손주 사랑이 팥죽처럼 진하고 되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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