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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18. 2022

바람이 자고 일어나다

오롯이 나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미리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날씨에 맞춰 옷도 입고, 우산을 챙기기도 하고, 걸어갈지도 결정한다. 추위가 매서워지면 걸어 다닐 날이 줄 것 같아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오늘도 걸어서 출근하기로 했다. 분명 어제보다 기온이 올라 따뜻하다고 했는데 해가 기지개를 덜 편 탓인지 쌀쌀한 공기가 옷 속을 파고들었다. 같은 기온이라도 바람이 불면 더 춥게 느껴진다.


소여사는 우리 집으로 이른 아침 출근을 하신다. 현관을 들어오시며 그날의 날씨를 예보해 주신다. 대개는 "어제보다 날씨가~", "오늘은 기온이~", "빗방울이~", "오늘은 더 따뜻하게~" 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은 바람이 자네. 아까는 바람이 자더니 바람이 다시 일어났네.

처럼 바람과 관련된 말씀도 많이 하신다.


왠지 모르게 소여사가 말하는 바람에 대한 표현을 들으면 마음이 포근하다. 바람이 정말 피곤한 몸을 뉘어 잠을 자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형체 없이 쌀쌀하기만 할 것 같은 바람을 잠도 자고 일어나기도 하게 의인화를 시켜 보자니 커다란 덩치에 뭉게구름처럼 뚱뚱한 중년 아저씨가 떠오른다.


바람이 매섭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은 제주에서였다. 숙소 근처에는 커다란 선풍기 날개 같은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면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웅장했다. 어둠이 내린 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둠을 집어삼킨 바람이 거대한 괴물로 변해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제주의 바람은 시시때때로 바람의 습기를 머금고 불어와 머리를 헝클이고 모자를 날려 보냈다. 빨래집게로 야무지게 집어 널어놓은 빨래도 떨어져 있기 일쑤고 건조대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넘어져 있기도 했다. 반짝이던 제주 바다는 바람이 일어나면 잔잔했던 바다에도 너울이 일고, 검은 현무암 바위를 절써덕거리며 때렸다.


쌀쌀한 바람 덕에 제주 바람을 떠올리며 출근했는데, 정남향의 교실에 햇살이 자꾸만 깊숙하게 들어온다. 안데르센의 '해님과 바람'에 나오는 해와 바람처럼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그네가 해가 내리쬐자 외투를 벗었던 것처럼 우리도 해 편에 서기로 했다. 중간놀이 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간다는 얘기에 아이들 엉덩이가 들썩였다. 서로 어울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미끄럼도 타고 시소도 타며 깔깔거렸다. 수업 시간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운 뒤, 축구골대를 터치하고 되돌아오도록 했다. "준비, 땡!"

하는 소리에 아이들은 일제히 총알처럼 뛰쳐나갔고, 아이들이 급히 떠난 자리에 주인을 잃은 크록스 한 짝이 뒹굴었다. 아이들은 차가운 바람을 뚫고 달려와 양쪽으로 뻗은 내 손바닥을 소리 나게 때렸다.


나는 찬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옷깃을 여미고 있는데, 아이들은 바람을 이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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