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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희 Mar 03. 2024

6년의 시간과 아주 천천히 이별했습니다

이별하는 시간들

시간 안에는 무엇이 포함될 수 있을까.

‘6년’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수의 이름과 얼굴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더 많은 다수들이 있었지- 라는 짐작.

그중 소수와 나눈 농도 짙은 행위들 —요가 이외의 취미나 사생활에 대한 수다, 최근 읽은 책에 대한 감상평과 그에 대한 공감, 추운 날 따뜻한 커피와 함께한 동네산책, 서로의 집을 오며 가며 해주던 요리, 서로 결이 맞다는 걸 서서히 알아갈수록 과감히 내비친 신념과 생각들—에 대한 기억들.

 

한 요가원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장기적이거나 일시적인 이별을 많이 했다.

이사, 이민, 이직, 건강 상태 등 상대의 이유는 다양했고, 내 쪽에서의 유일한 이유는 수업이 줄어서였다. 때론 자의로, 때론 타의로.  

그때마다 혼자만의 또는 함께하는 이별을 크고 작게 해 왔다.

머그컵 같은 선물과 편지를 나누기도 했고, 카페에서 두세 시간 머물며 서로의 인생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길었던 이별의 시간과도 이별했다.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수업을 줄여가며 패스츄리 빵처럼 이별을 켜켜이 쌓아와서인지, 마지막 수업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니면 슬픔과 아쉬움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치로 이끌어낼 만큼 감정적 교감을 나눈 회원이 그 공간에 적어서였는지도.

아니면 공적인 수업 시간에 전하는 마무리의 말보다 친밀했던 개인들과 약속된 이별의 시간을 진짜 끝으로 생각해서였는지도.

아무튼 그런 모든 것들도 이제는 정말 끝이 났다.


그리고 남은 것들.


굿바이에 대해 직접 쓴 글을 읽어주며 부담스럽지 않게 진심을 전하고자 했던 마지막 수업, 그리고 그 모습이 담긴 사진들.

책 얘기가 유난히 잘 통했던 회원님과 그분의 작업실에서 그려온 민화들.

외국에서 직접 쓴 손 편지를 보내 내 마지막을 조금 덜 외롭게 해 준 회원님에 대한 감사함,..

원장님과의 마지막 식사 그리고 편지.


갑작스럽지 않아서 다행이다.

긴 이야기의 끝을 충분히 아쉬워하고, 기념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덜 슬프고 더 따뜻한 기억을 많이 보관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긴 시간을 두고 공들여 차근차근 이별하는 것, 그 끝이 조금은 미지근하고 격정적이지 않아서 서운할지라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좋은 것 같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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