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절린 밀러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를 읽는 밤
인에이블러(조장자), 즉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의존하게 함으로써 의존자가 자율적으로 삶의 과업을 수행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박탈하는 사람
- 김태경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길이 있다> 발췌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는 한때 인에이블러로 살았던 저자의 자기 고백서이다.
그리고 현재, 인에이블러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보통 엄마들을 위한 지침서다.
보통 엄마들이라고 표현했지만, 더 정확하게는 '나 같은 엄마'다. 그냥 '나'.
이 표현을 읽는 순간 뭔가 와장창,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건 좋은 징조다)
어린아이 둘을 양육하고 있는 나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엄마인 나의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어쩌면 지금도)
아이들을 돌본다는 말에는 '먹고, 입히고, 재우는' 기본적인 것들 말고도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
친구를 사귀게 해주고 싶은 마음,
어디를 가든 내 손을 잡고 내가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은 책임감
혼자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도 대신해주려고 애쓰던 시간들
그런 '나'와 그랬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게 했다.
스탠과 결혼하고 그의 불안증과 우울증 증세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저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쾌활하게 행동하고 잘 도와주고 협조하면, 그가 행복과 안정감을 느끼게 되리라 믿었다. 아니면 그가 행복해지도록 내가 상황을 바꿀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내 아버지가 주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끔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내가 겪는 상호 종속의 패턴은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가 겪는 패턴과 동일했다. 아버지가 폭음에 빠질 때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돌려놓으려고 허둥대며 다니셨다. 스탠이 우울증으로 발작할 때마다 나도 똑같았다. 전형적인 인에이블러-알코올 중독자의 관계 유형과 아주 비슷한 관계에 들어선 것이다.
마침내 조장하는 아내, 즉 '인에이블러'임을 인식하게 되자, 나의 조장 행위가 남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버릇은 다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스며들었고, 특히 내 아이들을 조장하고 있었다.
조장한다는 것은 내 예상보다 훨씬 흔한 일이고, 중독성 물질을 남용하는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중에서, p22
저자는 고백한다.
나는 그들의 삶에 포함된 거친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다. 왜 그랬을까?
인에이블러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거 엄마들이 그런 삶을 살지 않았나?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를 하는 삶.
요즘 엄마들은 다른가?
남편은 남편, 애들은 애들, 나는 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지키려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런 엄마들의 행동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엄마들은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엄마들은 자기 자신을 찾는 일도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아이들이 없을 때' '남편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기꺼이 맡아주었을 때' 가능하다.
엄마들에게 주어진 역할 중 '돌봄'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인에이블러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될까 싶어 지기도 했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는 아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의존'이란 우리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의 '의존'과는 다르다는 것.
인에이블러들에 의한 의존은,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기본적인 상호 교환과는 다르다(p43)'는 문장에 와서 이 책을 좀 더 집중해서 읽고 싶어 졌다.
개인이 어려운 시기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상호 의존적 사회는 동참하는 살마과 의존적인 사람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장애, 슬픔, 혹은 역경을 핑계 삼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회피하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의존적인데, 이런 감정적 의존은 경제적 의존보다도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감정적 의존자는 과거나 현재에 실제로 실망한 일이나 상상의 실망을 기회 삼아, 본인의 활동 부족이나 가짜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자신에 대해 음모를 꾸미는 것들만 없다면 세상에 나가 용을 죽일 수도 있다고 단언한다. 그들이 날리는 펀치는 마치 혼자 하는 권투처럼 허공을 가로지를 뿐이다. 어떤 사람의 삶은 온통 대응하기 힘들고 해결할 수 없는 외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하고 싶지도 않은 어떤 위기에 연루되어 있다. 이처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해결하도록 넘겨주고 또 그것을 기꺼이 떠맡으려는 사람까지 있다면, 조장과 의존 enabling-dependence 관계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 <'의존의 의미' > 중에서, p46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가며,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과
이 험난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감싸 안아주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늘 상충된다.
무엇이 나쁘다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갈팡질팡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가 '엄마'라는 존재가 아닐까.
'엄마'들은, 엄마 이전에 여성들은 희생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고, 때때로 생계를 떠맡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학습받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달라져서 지금 이만큼이라는 게 슬프지만,
어쩌면 여성들은 엄마 되기 이전부터 사회가 바라는 대로 학습되면서 인에이블러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랐다.
내 자존감은 거기에 달려 있었다. (p78)
저자의 고백이 낯설게,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서 두려워진다.
내가 사랑이라고, 보살핌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의 행동이 아이가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걸 방해하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조정자'라는 꼬리표를 내 이름 앞에 달고 싶지는 않다는 것.
아이들이 자라면서 실패하더라도, 좌절하더라도 그들이 선택한 실패를, 좌절을 경험할 수 있게,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떳떳하게 누릴 수 있게 한 발짝 벗어나서 바라볼 수 있길.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진정으로 도움과 보살핌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때도 물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도움과 의존성을 키우는 도움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적절한 보살핌과 조장은 다르다.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남편들은 격려를 원하고, 부인들은 지원을 받고자 하고, 친구들은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원한다. 누구에게나 때로 도움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어주는 일은 중요하다.
인에이블러는 건강한 상호 의존과 파괴적인 조장-의존 사이의 경계선을 찾아내고, 그런 다음에 적절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만 도와주어야 한다. 어떤 상황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 전에 상황을 먼저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인에이블러가 의존성을 막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진정으로 필요할 때는 도와주어야 하지만 도움을 줄 때 상대방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꼴이라면 서둘러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움이 아니다.
- <상호 의존적 사랑> 중에서, p168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분명히 당장은 힘들겠지만) 몸의 일부처럼 눌어붙은 '엄마'라는 역할을 규정지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책 속에서>
- 나는 아이들에게 여러 면에서 방해가 되는 존재였다.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잘 분배해 주었지만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에는 서툴렀다. 아이가 "나중에 할게요"라고 말하고는 나중에 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했다. 아이들이 맡은 일이 불편하거나 힘들거나 혹은 다른 계획에 지장을 주면 나는 그 일을 취소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친절하고, 너그럽고, 훨씬 수월해 보였다. 아이들은 바쁘게 생활했고, 나는 집안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결국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분주한 생활에도 변함없는 책임감과 노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 - <책임은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중에서, p97
- 사람들은 무심하고 느긋하게 인생 경로를 걸어가는 동안에는 인에이블러가 되지 않는다. 나약하고 의존적인 사람들에게 걸려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인에이블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짐을 기꺼이 떠맡게 만드는 요인이 대체 무엇일까?
어린이를 협조적인 성인이 되도록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남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고 명령을 따를 때 보상을 받는다. 어린이들이 아동기의 위험과 강요에 대처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는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굴복함으로써 보상과 안정감을 지속해서 보장받는다면, 이런 반응 방식이 강화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조장하는 습관으로 유지될 수 있다. 보통 착한 아이들로 간주되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르면 늘 인정을 받지는 못해도 처벌을 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운 아이들이다. - <조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p103
- 사람은 자신의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방해받지 않아야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더욱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누군가를 놓아주려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눈을 정직하게 바라보면서 "나와 함께 하든 그렇지 않든,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최상의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로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사랑은 진정한 것이다. - <조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p115
- 육아 파트너로서 남편을 지지하고 싶은 아내는 남편에게 아기 우유 먹이는 방법과 기저귀 가는 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기가 알아낸 아기를 달래는 사소한 방법을 모두 남편에게 가르쳐주고, 아이와 아버지가 단둘이 있는 특별한 시간을 장려한다.
남편과 아이의 의존성을 키우고 싶은 아내는, 남편이 아기와 단둘이 있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남편과 아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도록,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밝히지는 않는다. 아이와 남편 사이에 끼어들어서 두 사람이 자신을 중재자로 원하도록 만든다. - <두려움을 마주하다> 중에서, p142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 앤절린 밀러 / 윌북 / 2020.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