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깨끗한 존경>>을 읽는 밤
스스로에게 갇히는 날이 또 온다면 이 대화들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마음의 세수를 한다. 이 느낌을 나는 존경이라고 부르고 싶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존경의 순간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안다. 깨끗한 축하와 깨끗한 용서만큼이나 흔치 않다. 여전히 나는 그들의 아주 일부만을 알지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찬란함은 의심하지 않는다. - <서문> 중에서, p6
낯선 이들의 은밀한 속삭임을 몰래 듣는 것 같은 묘한 쾌감,
인터뷰집을 읽을 때면 종종 그런 마음이 들곤 한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지만, 작게 소곤거리지만
어쩐지 자꾸 그들의 이야기에, 목소리에 귀를 가져다 대고 싶은 충동.
결국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바짝 당겨 최대한 그들 가까이로 몸을 움직여
안 듣는 척하면서 듣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가 끝난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발걸음도 경쾌하게 자신들의 길을 떠나고
남겨진 나는, 이제부터 시작인 나의 이야기들을 만든다.
인터뷰집을 종종 찾아 읽는 건,
내가 모르는, 나를 모르는 이들의 속삭임을 듣는 그 기분이 여전히 좋기 때문인데
이슬아가 만난 네 명의 인터뷰를 담은 <<깨끗한 존경>>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는 엿들음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불쾌해질지 모르겠으나,
금세 너그럽게 웃어넘기고 말 것이다.
돌아서도 쉽게 잊히지 않은 그들의 속삭임 때문에,
결국 나는 이 인터뷰집을 덮은 뒤, 그들의 이야기가 직접 담긴 책 몇 권을 구입하고 말았다.
▶ 이슬아 × 정혜윤
이름을 많이 들어봤는데, 아직 읽어본 책이 없었고, 그녀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인터뷰를 읽는 내내 아직 그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다니.... 하는 아쉬움이 들 만큼 궁금해졌다.
「저는 '다시'라는 단어가 그렇게 부드러워요. 다시 하고 싶어 하는 마음.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용서받고 다시 힘을 얻고 다시 깨졌던 관계는 복원되고, 어쨌든 '다시'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 의미 있는, 새로 출발하는 능력요. p16」
「유족들이 입 밖에 절대로 내지 않는 말이 있어요. 아무리 입안에 맴돌아도 그 말은 안 해요. "너도 한 번 당해 봐"라는 말이에요. "시신 장사하냐"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도 한 번 겪어보세요'라는 말이 여기까지 올라오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 참아요. 자신의 윤리로는 할 수 없는 맒이라서요. 그 이유는 자기가 겪고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에요. 어지간히 고통스러워야 너도 한 번 겪어보라고 할 텐데, 인간으로서 그 말만은 차마 못 하겠는 거예요. 그분들은 '당신도 당해 봐라'가 아니라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요. 저는 이것보다 숭고한 인간의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요. 유족들은 말하죠. '재난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사람들이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세상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 뒤에 있는 세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사회뿐 아니라 우리의 차가워진 인간성도 변해요. p18」
「그냥 세상에 나보다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나보다 더 슬픈데,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지요. 용기를 말하는 거예요. 저 스스로한테 얘기해요. 저 사람들이 내는 용기를 봐라. 저 사람들이 내는 저 큰마음, 저 멀리 가는 마음을 봐라. 그러고서 생각해요. 저기로 같이 가자고. 저 방향이라고. p26」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게 나뿐이라면 곤란할 것 같아요. 내 속은 내가 알잖아요. 뻔히 아는 내가 있는데, 나의 별로인 모습을 내가 다 아는데 온 세계가 나 하나로 축소되면 안 되잖아요. 정말 슬픈 건 영혼 없이 서로를 대하는 거예요. 내가 유족한테 배운 것이 "너는 그런 일을 당하지 마라"하는 마음이잖아요. 내가 좀 더 슬퍼해서 이분들께 좋은 일이 생긴다면 굳이 피해야 할까요? 내가 슬프지 않은 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지는 않아요. 물론 가슴이 진짜 아프죠. 혼자서 울죠. 그래도 알아요. 내가 통과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요. p42」
▶ 이슬아 × 김한민
만화가이자, 글 쓰는 저자이자, 번역가이자, 페르난두 페소아 연구자이자, 잡지 1/n 편집장이자, 씨 셰퍼드 멤버이자, 비건이자, 활동가(p55).
이렇게 수많은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들 중 난 한 가지도 알지 못했으니, 그동안 전혀 연결될 게 없었던 완벽한 타인이 맞다.
그런데, 그와 이슬아의 인터뷰를 읽는 동안 굉장히 집중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그가 하는 모든 활동들이 어쩐지 어떻게든 돌고 돌아 나와 연결될 것만 같았다.
「이슬아 : 한민 씨의 거의 모든 책이 한국 특유의 어떤 걸 간파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년기를 외국에서 보내서 가질 수 있는 시각일까 궁금했어요.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김한민 : 사실 얼마나 도망쳐 왔는지 몰라요. 차라리 한국을 전면적으로 증오하고 싫어했다면 진작 가른 나라에 정착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돌아오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요. 한국에서 사는 것은 매일이 도전이에요. 저는 다 떠나서 무례한 건 참을 수가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무례한 일들을 매일매일 마주해요. 남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어요. 사라들이 원래부터 그랬을 리는 없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을 저는 자본주의라고도 안 하고 천민자본주의라고 불러요.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는 '지금 좀 못 살아서 그렇지, 조금만 잘 살면 경제가 해결해주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경제가 도약해도 같이 도약하지 않는 태도들이 있죠. GDP가 올라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삶의 어떤 가치관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예요. 돈의 문제가 아니죠.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꼭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인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비건 이야기를 하면 이런 반응이 돌아와요. '그거는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지.' 그런데 제가 만난 비건들 중 여유 있는 사람 없어요. 자기 삶 사느라 빠듯한 와중에 비건까지 하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죠. 어떤 주제에 반박하기 위해 취약 계층을 끌어다가 인용하는 사람들이 싫어요. 제가 동물권을 얘기하면 이렇게 묻죠. "넌 아프리카 애들은 생각 안 해?" 되게 지치는 날도 있지만, 다음 날 일어나면 저는 이상하게 약간 명랑해져 있어요. p74」
「이슬아 : 다시 밖으로 나가실 건가요?
김한민 : 아직 대책은 없는데 가더라도 아시아에서 살 것 같아요. 아시아의 동물과 환경을 위해서 뭔가 일을 하려고 돌아왔기 때문에. 체 게바라도 아르헨티나를 위해서 일을 하지 않았거든요.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서 평생 뭔가를 했죠. 한국만 포커싱 하지 않고 아시아라는 단위로 생각하는 게 저는 중요해요.
이슬아 : 아시아인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김한민 : 아시아가 너무 큰 개념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한국은 이제 아시아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죠. 때로는 문화적인 면에서 일본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을 정도예요. 그게 걸맞은 '공'에 대한 생각을 해요. 공과 사 할 때 '공'이요. 공공적이 것에 대한 원료들은 아시아에 이미 충분히 있어요. 옛날 철학을 보면 생태적인 사고방식은 서구보다 아시아에서 더 발달했죠. 회화만 봐도 아시아의 동양화에서는 사람이 일부잖아요. 사람이 되게 작게 들어가요. 저는 그게 좋아요. 에고적인, 자아 중심적인 사고방식 말고 생태적인 사고방식이요. 어느 정도 잘 살게 된 나라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요. 아이사의 빈곤에 대해서도요. p91」
「이슬아 : <<카페 림보>>에서 '비공감주의'를 말하셨어요. 공감이라는 말이 엄청 남발되는 시대인데요, 최근에는 어떤 공감이 의심스러우셨나요?
김한민 : 제일 의심스러운 건 세월호를 둘러싼 말들이에요. 저는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 안 좋아해요. 너무 쉽거든요. 기억이라는 건, 안 하고 싶은 사람도 기억한단 말이에요. 세월호를 가장 삐딱하게 보는 극우파마저 기억은 하지요. 저는 그래서 '기억하겠다'라는 뭉뚱그린 말 정말 싫어해요. 세월호를 살아내야죠. 각계 각처에서 세월호들이 많은 것 같아요. 비유적인 의미의 세월호들. 무너지고 가라앉는데도 보지 않죠.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공감하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무게가 너무 얕다는 느낌이에요. 공감이라는 말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구나 싶어요.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어요. 그건 죽음에 대해 무례한 것이거든요. 기리고 기억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해야 하잖아요. 그게 가장 최근에 불편했던 공감이에요. p110」
▶ 이슬아 × 유진목
책 속에 이슬아 작가와 유진목 시인이 나란히 한 페이지씩 드러난 사진이 있다. 그냥 사진일 뿐인데,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난 뒤, 그들의 인터뷰를 그냥,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어떤 느낌(지극히 주관적 일지 몰라도)을 그 순간만큼은 백 프로 믿고 말았다.
「이슬아 : 선생님은 엄처 여러 책을 읽으면서 지내시잖아요.
유진목 : 아! 요즘에는 주디스 버틀러에 꽂혀 있고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이슬아 : 왜요?
유진목 : 이 사람이 하는 질문이 너무 좋아서요. 아까 작가님이 <디스 옥타비아>를 읽고 좋았다고 했던 것처럼, 저는 제가 평소에 쭉 생각했던 것을 주디스 버틀러가 되게 멋있는 말로 써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나보고 싶... 지는 않고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싶네요.
이슬아 : 인터뷰를 하고 싶지도 않고 강연을 듣고 싶지도 않고 그냥 보고 싶다는 거죠?
유진목 : 네. 멋있게 생겼더라고요. 그리고 또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우리 엄마? 왜 그랬냐고 묻고 싶어요. 나한테 왜 그랬어? 그때 왜 그랬어? 묻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엄마를 좀 알고 싶어요.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 번쯤 묻고 싶은데, 우리 엄만 아마 묵인할 테니까 묻지 못하겠지요. 그런 게 되게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처음 셔터를 내린 사람은 엄마인 것 같아요. 아빠는 고민할 대상이 아니었어요. 어디 갔는지 알 수도 없고요. 엄마에 대해서는 제가 계속해서 마음을 쓰다가 '와, 셔터를 내리지 않으면 내가 살 수가 없겠다' 싶어서 그만둔 거예요.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글로도 썼어요. p175」
「엄마는 저에게, 사랑하면서 사는 법을 반대로 알려준 사람이고 사랑을 깨우치게 해 준 일등 공신이기도 해요. 엄마는 같이 있으면 너무 불편한 사람이었어요. 끊임없이 죄책감을 심어줬고요. 제가 집을 뛰쳐나올 정도로. 그래서 원칙이 생겼어요. 내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된다면 함께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하자. 손문상은 저랑 같이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처음에는 어색했대요. 제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전하거나 요구하지 않아서요. 뭘 해도 크게 관심을 안 두니까 눈치 볼 필요 없고 집에 들어갔을 때 별 문제가 없으니까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대요. 그때 내가 해냈구나, 싶었어요. 이 인간성을 스스로 만들어냈구나, 하는 성취감도 들고요. p182」
「자기 스스로 신이 되는 일에 대해 나는 자꾸 생각했다. 우리 각자에게는 아주 작은 전지전능함이 있다. 겨우 그것만 있거나, 무려 그것이 있다. 선생님이 소심한 전지전능이라고도 말했던 그것.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남의 좋음을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 혼자서도 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는 것. 그러다 혼자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부르는 것. 노브라로 무대에 서는 것. 미래의 내 눈으로 지금의 나를 보는 것. 닮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따라 밥을 먹는 것. 사랑 속에서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낮과 밤을 보내는 것. 기쁨과 슬픔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셔터를 내리는 것. 떠나는 것. 불행한 시간에 대해 굴복하지 않는 것. 때로는 삶에 대해 입을 다물려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 울다가 웃는 것.
이런 성취들을 나는 '작은 전지전능'이라고 부르고 싶다. 유진목 선생님의 힘을 빌려 나도 나를 위한 신이 되어간다. p184」
▶ 이슬아 × 김원영
한 여름 오후, 이슬아 작가와 김원영 작가가 만나는 장면을 잠깐 상상했다.
바퀴를 부드럽게 밀며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김원영 작가와, 그런 작가를 무심한 듯 따뜻하게 맞이했을 이슬아 작가의 여름 어느 순간에 대해.
그들이 나눈 춤과 몸과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니 좋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날의 햇볕만큼이나 뜨거웠을지도.
김원영 : 법의 역할만으로는 언제나 불충분했어요. 물론 어떻게 보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당장 법제도를 통해서 도움을 받지 않으면 외출하거나 생존하기 어려운 장애인들도 있으니까요. 그분들이 보시기에 저는 일도 하고 운전도 하니까 상대적으로 훨씬 낫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게 불충분했어요.
인권 활동가뿐만 아니라 공익 변호사들이 많이 계세요. 장애인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분들이시고 제가 존경하는 분들도 있죠. 같이 권리를 위해 싸우고 차별 행위에 맞서죠. 하지만 삶이 되게 달라요. 권리를 옹호받는 집단과 옹호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다른 거예요. 한쪽은 대체로 가족이 있고 삶의 요소를 대부분 갖춘 채로 도와주고 계신 거죠. 반면 다른 한쪽은 대부분 여전히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고 배제되어 있죠. 그분들 잘못이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활동이 가치가 없다는 뜻도 아니고요. 공적인 제도를 갖추어갈수록 장애들의 자유의 범위는 넓어지니까요. 그럼 사적인 관계도 자유로워지겠죠. 다만 그냥 이런 괴리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요. 공적인 자리에서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고 같이 싸우자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쇼가 끝나고 집에 가면 전혀 다른 거죠. 조심스러운 이야기예요. 공적인 자리에서 토론하고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늘 느꼈어요. 그 지점이 뭘까 생각해보면, 저의 경우는 그거였던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인가. 차별적인 존재인가. p206」
이슬아 작가는 2019년 봄, 여름에 진행한 인터뷰를 가을에 정리했다고 적었다.
에필로그에서 그들의 근황을 짧게 소개해 주었는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니 어쩌면 모두 또 다른 일을, 치열하게 즐겁게, 하고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 보면서 그들의 책을,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은 구입해 읽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자꾸만 하고 싶은, 하고 싶게 만드는 이들이어서 다음에, 그다음에 나는 이들의 책을 읽고 무언가 적고 있는 나를 떠올린다.
그게 마음에 드는 글이면 좋겠다고 미리 바라면서.
<<깨끗한 존경>> / 이슬아 / 헤엄 / 2019.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