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릿터 17호>>를 읽는 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말의 의미를 아이를 통해 요즘 다시 배우고 있다.
"엄마, 왜, 엄마는 매일 책을 읽고 아빠는 매일 공부를 해?"
"음, 근데 엄마는 매일 책 읽고, 아빠는 매일 공부하는데 왜 윤이는 매일 공부도 안 하고 책도 안 읽어?"
"엄마! 사람은 다 다른 거야. 예를 면 우리 반에 우유를 좋아하는 애가 있고 아닌 애가 있거든, 그런 것처럼 말이야."
"아... "
애초에 내 질문이 잘못됐다는 것 역시 아이를 통해 깨달았다.
2019년 4/5월 호 릿터를 앞에 두고 아이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릿터 17호 커버스토리는 <비거니즘>
릿터 Littor 2019.4/5 / 저자 편집부 / 출판 민음사 / 발매 2019.04.09.
애초에 나는 <비건>에 대한 개념이 무지할 뿐 아니라, 관심도 별로 없는 1인이었다.
릿터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은 뒤에 내가 온전히 비건에 대해 이해한 것도 갑자기 지식이 늘어난 것도 아니지만 나의 무지에 대한 약간의 반성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자주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하는 덜 성숙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덟 살 아이조차 틀림이 아닌 '다름'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나치게 육식에 의존한 삶을 살고 있는지라 '채식'이라는 단어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어떻게 채식만...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지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반감이라기보다는 역시 무지에서 비롯된 무관심이었다.
이 책 속에 실린 글들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나의 식성을, 마음을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바꾸고 싶다는 간절함 역시 없으나 다양함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여기서 방점은 '자연스럽게'에 있다) 중요한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아니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랄까).
주변에서 '나는 채식주의자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으므로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도 내 앞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면 단번에 물었을 것 같다.
"정말? 육식은 전혀? 생선도? 계란도? 육수 같은 것도 전혀?"
이런 의미 없으면서도 무례한 질문을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말이다.
이 번호 릿터는 한 사람의 무지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한 사람의 편견을 깨트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하다.
주은은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비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이 싫어졌기 때문에 비건을 하는 것이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 동생도 환(環) 공포증이 있어."
주은을 이해한다는 의미로 선배는 말했다. 주은은 이런 상황에 자주 처해 왔다.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사람일 거라고 추측하거나 알레르기 환자 취급을 하거나. 식물을 먹는 것은 잔인하지 않다고 생각하느냐는 반문을 듣거나.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질문을 할 자격이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그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은은 늘 답답해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많은 고기를 먹고 사느냐고 주은이 질문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큰 고민 없이 타인을 이상하게 보면서 질문을 던지는 무심함은 정상이라고 착각되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만연된 무지함이며, 그 특권을 지속하기 위한 방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 번번이 사용된다는 것을 주은은 이 초대받은 자리에서 한 번 더 확인하고 있었을 것이다.
- 임솔아, <광반사재채기증후군> 중에서
짧은 이야기에 실린 임솔아 작가의 소설은 그런 나의 무지함에 잠시 얼굴이 붉어지게 했다. 소설이었으나 정곡을 찔렀다. '무심함은 정상이라고 착각되는' 그 문장이 내게 정확히 와 꽂힌 듯하다.
주변에서 고기를 안 먹은 이후 변화된 삶이 무엇이냐고 자주 묻는다. 나는 탄수화물에 집착하게 되면서 살도 찌고 면역력도 많이 떨어졌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 발생한 문제는 아니다. 식단 체크 없이 무작정 고기를 끊고 그 외의 것은 무엇이든 먹으며 건강관리를 소홀하게 한 탓이며 균형 잡힌 일상생활을 못 하고 일에 치여 스트레스 가득한 삶을 살아온 온전한 내 잘못이다. 지금은 탄수화물을 조금 자제하면서 과식이나 폭식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중략)
고기를 안 먹고부터 나의 삶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삶이 아닌 맞서 실천하는 삶으로 변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의 생각을 좀 더 존중하게 되었고 어려움에 처한 소수자, 그리고 동물의 심정에 내 감정을 이입해 깊게 공감하는 습관도 생겼다. 이러한 삶이 꼭 편리하다고 말할 수 없다. 불편하고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식이 무뎌지는 것보다는 이러한 작은 불편함을 겪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삶이라고 믿는다.
- 지은경, <채식인으로 살기> 중에서
고기를 안 먹은 이후 꼭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할까? 우리가 고기를 먹는다고 특별한 삶을 사는 게 아니 듯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그냥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 텐데 나부터도 그런 질문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그리고 그에 대한 저자의 답을 듣고 나니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앞으로는 이런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함께.
릿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너인 인터뷰.
이번 호 역시 좋았다. <<힘 빼기의 기술>>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된 김하나 작가와 <<가만한 나날>>의 작가 김세희.
김세희 작가의 최근 관심사는 "어떻게 나의 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조화롭게 해 나가느냐'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나의 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조화롭게 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예요. 아직 아기가 어리거든요. 처음이라 모든 게 너무 어렵기도 하고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돌발 상황도 많이 생기고요. 요즘 생각하는 것은, 글쓰기가 제 전부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져요. 달리 표현하자면, 나의 생활과 글쓰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좋겠어요.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서로의 일부가 되고요. 아기를 돌보는 일, 이 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가 모두 글쓰기의 일부가 되길 원해요. "
작가는 아직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이자 작가. 워킹맘.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한 마디로 어쩐지 다 이해되어 버렸다. 4월부터 창비를 통해 장편을 연재하고 있다는데 바로 찾아 읽고 싶어 졌다.
이름이 낯선 시인을 만나는 것도 내가 릿터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번 호 역시 낯설지만 좋은(어쩐지) 시인을 알게 되었다.
반과거
모든 아침은
가장 오래된 아침이야
과거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마
절정의 목력 앞에선
늦었다는 느낌이 들어
다른 봄이
코앞이야
내가 멈춘 게 아닐
길이 멈춘 거야
그 길을 걷는 일은
멈출 수 없어
- 장승리, <반과거> 전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커버스토리에 대해 생각한다.
이 글의 마지막은 김복희 시인의 글의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해야겠다.
어쩐지 마지막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운 좋게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말해도 된다면 차라리 그렇게 말하고 싶다. 더 이르게 비건이 되려고 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고 다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꿈속을 사는 것 같은 안일함도 인생에서 어떤 구원이 아닐까. 치밀하게 생각하고 계산해서 내린 결단과 용기만큼이나 아무 생각 없이 흘러왔더라도 지금 이게 좋다면 혹은 옳다고 생각한다면 지속해 나가는 결단과 용기도 중요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완벽한 비건이 되지 못할 것이고, 다만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당혹스러운 위기, 실수, 피로, 유혹과 만날 것이다. 어쩌겠는가. 사랑의 두려움을 감내하는 용기로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않으면서 가는 수밖에. 냉소나 허무에 빠지지 않고......
빠지더라도 다시 헤어날 수 있게 밥 잘 먹고 애를 좀 써보려고 한다. 내 꿈은 정말이지 언제나 식사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설명하고 싶지 않고, 배려받고 싶지 않다. 지워져 있다가 천덕꾸러기처럼 다뤄지기 싫다. 배려조차 필요 없는 상태, 비건이 자연스러운 옵션인 상태로 살고 싶다. 특별한 기적은 필요 없다. 계속 꿈속에 살겠다.
- 김복희, <특별한 기적보다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