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마음을

-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마음만큼 쉽게 흔들리는 게 또 있을까.

마음만큼 쉽게 내어주는 게 또 있을까.

마음만큼 쉽게 상처 받는 건 어떻고.

마음, 마음, 그게 뭔데.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조차 자주 들키고 싶은 마음이라는 녀석 때문에 삶은 자주 아프고, 또 자주 기쁘다.


요즈음 내게 詩를 읽는 시간은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일이다.

온 마음을 힘없이 내어주는 일이고, 그만큼 몇 배로 위로받는 일이다.


오은 시인의 시들은 자주 그 마음과, 그 마음을 나누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보듬어 주는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생각

하지 않을 때
꾹꾹 숨겨왔던 내가 튀어나왔다

나는 놀랐고
왜 놀랐는지를 생각하다가
놀랄 만큼 부끄러워졌다

나인데 나로 돌아와야 했다
서서히 드러나는 나

낙서를 하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첫눈에 흔들리고 말았는데

또다시

내 안에서 내가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면서 나는 분명해졌다
분명해지면서 나는 나를 헤아렸다

눈을 감고 손을 흔들고
귀를 닫고 가슴을 열고
코를 막고 다리를 떨고
입을 다물고

입은 다물고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지붕이 없다
세계가 없다
나는 안에 있지 않다

빠져나간다
생각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
숨어 있던 나를 들켜버렸다
- <생각> 전문


'생각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 숨어 있던 나를 들켜버렸다'

는 마지막 문장이 꼭꼭 숨겨 왔던 자신을 들켜버린 부끄러움, 나답고 싶지만 그 길을 알 수 없는,

그럼에도 그러고 싶은 마음들을 생각하게 했다.


나의 마음과, 나의 의도대로 읽히는 시들, 아니 그렇게 읽어버리고 마는 내 생각이 어쩌면 틀릴지라도

시는 그게 틀린 건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좋다.


아리랑의 마음들

춥니?
네가 물었지만
대답하려고 입을 벌리니
너는 없었다

어디 가니?
내가 물었지만
대답을 들으려고 귀를 여니
너는 없었다

우리는 애쓰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음으로 마음을 밀어내려고
마음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려고

밀고 끌고
끌고 밀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린 마음

추워서 얼어붙었다가
녹아 흐르기 위해
홀연히 떠나간 마음

고개를 젓고
고개를 숙이고
고개에 들어서고

마침내
고개를 넘어

오는 마음
가는 마음
오가는 마음

한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 마음
아무리 빌어도 이루어지지 않는 마음

어제 거기의 마음
오늘 여기의 마음

고개고개의 마음
고개 사이의 마음

내일이 되면
연기처럼 사라지거나
화석처럼 굳어질 마음

따뜻하니?
네가 물었고
나는 가만히 손을 오므렸다

다시 오니?
내가 물었고
고개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아리랑의 마음들> 전문


'어제 거기의 마음, 오늘 여기의 마음'

그리고 다시 내일이 되면 연기처럼 사라지 마음,


우린 그 마음들을 알면서도, 그 마음들에 의지하며 산다.

나의 마음, 너의 마음,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마음까지 헤아리면서.


이제 그만,

놓아줄까? 그 이름 없는 마음들.

근데 그러면 나는? 그 마음으로 사는데 싶어 져 다시 마음을 다잡는 마음.



패러다임

왼손이 말을 걸어왔다
마음이 아파
가슴이 찢어져

오른손은 단박에 왼손을 움켜쥐었다
가능했다
한동안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어느 날,
왼손이 걸어왔다
왼발도 아니면서

오른손은 머리가 아팠다
왼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잡은 손에는
땀이 맺힐 대로 맺혀 있었다

오른손은 단숨에 왼손을 뿌리쳤다
능가했다

왼손은 마음이 아파
가슴이 찢어져
잠시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오른손은 당분간 땀만을 이해하기로 한다

- <패러다임> 전문


오랫동안 잡았던 손을 뿌리치는 마음,

오랫동안 잡혀 있던 손이 내쳐지는 마음,

두 마음 다, 알 것 같은 마음. 그래서 슬픈 마음. 이상한 詩들이다.


자꾸 좋은데, 자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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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은 마음이 아파>> / 저자 오은 / 출판 현대문학 / 발매 2018.08.31.



덧붙임


이 시를 적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어쩐지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어쩐지 이 시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아서.


표리부동

어젯밤 꿈에는 네가 나왔다. "잘 지내?"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잘 지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까봐.
누구보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
게나 나쁘다. 꿈속에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 <표리부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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