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밤의 기도

- 이 훤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너무 쉽게,
하나의 은유로 호명되는 곳에서
우리는 골몰하고 있습니까
다수의 직관이 소신이 되어야 하는 곳에서 맞서고 있습니까
그물을 버리고 있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두 번째 이름을 흉내 내지 않아도 우리는 이제 괜찮습니까
벗어나거나
외곽이 되는 일을 옹호하는 데 기분을 다 써도
그런 일로 책망당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재촉하지 않습니까

이 책 속의 글들에, 사진에 빠져 있을 때 먼 나라에서 들려온 슬픈 소식.

아- 하는 긴 한숨과 탄식.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기사를 클릭하기도 겁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미안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출근을 하고 아이들과 웃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누군가의 슬픔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일이 온전히 가능한 일인가.

나와 먼 일이라고 며칠 지나면 잊힐까 겁난다. 잊을까 무섭다


몇 년 전의 어떤 순간이 다시 떠오르고,

다시 기도한다.


나를 모르지만, 나 역시 그들을 모르지만

누구든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그들에게 닿기를, 하늘에 닿기를.

잠시라도 평온하기를.


그 순간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먼 나라에서 자주 외롭게 기록하고 있을 저자의 글들이, 사진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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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내막이 모일 때마다
기꺼이
합류하는 것이다
벼랑을 나누어 가진 사람의 고백이 모일 때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서 두 번째 기후가 돼주기로 하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있는 우산들도 마음이 되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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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오는 마음들은
비슷한 자리로 회귀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같은 표정을 짓지 못한다
그래도 살 수 있다
덜 괴로워하거나, 밀쳐내고 망각하거나, 최선으로 흉내를 내다
보면, 내다보면
스스로
궁핍해지는 자들이 앓는 병명
사실은 넉넉하지 못해 초대되는 문장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식으로
어떤 은유는 다시 써진다
한 시절이 갱신된다


때로는 잊는다는 게, 잊힌다는 게 미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시시때때로 잊고 사는 일들.

남은 자는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는 게, 그렇게들 살아간다는 게 문득 징그러워지는 순간도.

무엇이 최선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를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자주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또 넓게 마음을 열어 주어야 한다. 스스로를 용서하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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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야 대나무야 빈 품이 필요해
너의 몸에 비밀을 채운다 치부를 두고 온다 나는 과오가 많은
사람
숲이 필요해
마음이 두 개만 모자라도 숲을 이루었다 해결되지 못한 마음이
몸에서 자꾸 자라거든 너의 안부가 그래서 자릴 잃거든 이 약속을
버리렴 발설되렴 아무도 없는 곳에 얼굴을 버리렴 어떤 오해는 계
속 비대해지므로 일찌감치 자르렴
우리의 몸은 이전에도 했던 실수

대나무야 대나무야 너의 비밀은 누구에게 의탁되니
당부할 수 있는 날만 널 찾는
비목도
언젠가 누군가의 품이 될 수 있을까

사라지는 것들을 위해 독백은 존재하지 독백을 위해 사람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염치는 버릴 수 있는 열매가 아니지만 속내를
자꾸 버리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온전해질까

부탁받지 않은 감정들이
자란다 자라는 사람도 모르게
과오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과 비밀이 많은 사람이 동의어처럼
들리는 날

가지처럼 붙어 있지 않아도 어깨가 된다



누군가의 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니, 나는.

자주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안도하는 건, 오늘도 무사히 우리가 함께 했다는 것.

나의 무사가 다른 이들의 무사와는 다르다는 걸 자주 잊는다.

나만, 나의 무사만 생각하고 살지 말자고 오래 다짐한다.


말 한마디조차 미안한 날들.

나는 이 책을 통해 위로받았는데,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속내가 되지 말자
서로에게 어떠한 속내도 되지 말자
서로에게
서로가 아닌 무엇도 되지 말자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아닌
어떤 속내가 되지 말자
어떠한 속내도 되지 말자

서로에게
무엇도 되지 말자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속내가 되지 말자
서로에게 어떠한 속내도 되지 말자
서로에게
서로가 아닌 무엇도 되지 말자


시인의 찍은 사진들의 뒷모습이 궁금해졌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진작에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 외로움이 사진으로 보였을 때 괜히 목이 메었다.

우리는 어떤 시절을 살고 있나, 외롭지는 않은가, 외로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감히 우리는 그 모든 걸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게 사랑이라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지고 의연해져야 하지 않을까.


이 모든 말은 누군가가 아닌 내가 나에게 하는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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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 저자 이훤 / 출판 쌤앤파커스 / 발매 2019.05.02.


덧붙임

시인의 산문을 읽으니, 전에 읽었던 시인의 시들이 더 그립다.

다정하게 읽힌 시들이 시인의 삶 같아서 다시 시집을 들춰본다.

https://poohcey.blog.me/221433442939


https://poohcey.blog.me/221534649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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