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위로는 사양하겠어요

- 하수연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건강에 대해 자신하거나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지.

우리라고 했지만 아마도 내 얘기.


나는 병치레가 잦은 아이였다.

심장수술 이후엔 학교 선생님들도 내가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바로 조퇴를 시켜 주셨다.

심장수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온통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으스대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병동을 뛰어다니며 노는 건 어쩐지 신나는 일이었고, 아픈 건 아주 잠깐 같았다.


엄마가 된 이후 그때의 나를 떠올릴 때면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어렸던 나의 부모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싶어 져서 한없이 미안해진다.

의사는 오랫동안 약을 먹어야 할 거라고 했지만, 수술 이후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언제 아팠냐 싶게 건강해지고, 살도 포동포동 올랐다.


그 이후 삼십 대 중반이 되기 전까지 건강에 대해 걱정하거나 불안해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나치게 건강 불안증이 생긴 건 아이들이 태어나고, 내가 엄마라는 걸 의식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아프면 이 아이들은 어쩌지, 내가 아프면 부모님은 어쩌지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의 아픔(질병)에 대해 읽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글을 읽을 때의 내 표정을 나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다.

안타까워하는 마음, 함께 슬퍼하는 마음과 그것으로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느낄 때면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어떤 말도 덧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백 프로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해서 위로도 때론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병이 힘든 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구토 때문도 아니고
손가락 까딱하면 몸이 조각날 듯한 근육통 때문도,
멈추지 않는 출혈 때문도 아니다.
확신 없는 하루, 이틀, 보름, 한 달, 세 달......
내가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나조차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제일 힘들다. 시간만 지나면 되겠지 하고
시작한 투병인데 사실 제일 무서운 건
시간이었음을 깨달을 때.
- <시곗바늘이 차례로 내 목을 칠 때> 중에서


열여덟의 나이에 쓰러져 '재생불량성 빈혈'을 선고받고 투병 생활, 골수이식, 오 년의 추적 관찰을 거쳐온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혼자 견뎌야 하는 아픔, 그 아픔을 모른 척 지켜봐야 하는 가족, 낯선 타인의 시선으로 아픈 사람을 바라볼 때의 마음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매일 밤 울면서 아파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죽는 것과 사는 것 둘 중 하나는 쉬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고, 별을 보면서 완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분명 다시 건강해질 거야라고 다짐하고, 통증과 싸우고, 견디고, 가라앉았다 괜찮았다를 반복하면서 저자가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이 어떤 크기였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슬픔보다는 다정한 위로를 더 많이 받았다.

무척이나 씩씩하다고 생각했다.

그 씩씩함 때문에 그래도 잘 버텨냈구나 싶어 졌다.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싸우고 헤어지고 끝까지 갔던 연인이 마지막 회에 가서 극적으로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끌어안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탁, 덮으면서 아- 이 스토리엔 미련을 남기지 않아도 좋겠어,라고도 생각했다. 이제 저자에게 남은 많은 삶의 시간들을 지금보다 혹은 그 이전보다 몇 배는 더 멋지게 살아갈 것만 같은 생각과 약간의 부러움마저 들었으니.

툭 쳐도 재수 없으면 죽을 수 있는 병.
이 병은 그런 병이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이는 질환이 아니다 보니 겉으론 멀쩡해 보여서 사람들이 "아프다더니 멀쩡하네?"라거나 "빈혈이면 수혈받으면 되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혈 몇 번 받아서 될 일이면 제가 삼보일배를 하고 다니겠습니다.
내 병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싫지만
불쌍하게 보는 사람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위로하는 게 아닐 정말 내 인생이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각 없이 하는 말들에
놀람을 금치 못하게 된다.
우와, 저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다니.
- <내 병은 희귀 난치병인데> 중에서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사람들 대부분은 악의 없이 순수한 마음에 걱정을 한답시고 내뱉은 말 일 거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돌아서면 잊어버릴 게 분명하다. 자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걸 정작 내뱉은 사람이 모른다는 게 나는 좀 무섭다


어쩌면 나 역시, 혹시 입을 열어서 말을 꺼내면 마음과는 다르게 아주 생각 없는 말이 튀어나올까 봐 조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아픔을 마주할 때 냉정해 보일 만큼 입을 다물고 있는 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 이런 경우에 쓰는 말 아닐까.


공감해주지 않아도 된다. 나는 위로를 바라는 것도,
같이 울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병과 고통을 업신여기지만 않기를,
차라리 관심이 없다 말해주길 바란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 '혹은 아팠던 사람'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아픔이 어떻게든 티가 난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니 어떻게 봐도 겉으로는 멀쩡한 나에게 아팠던 사람이 맞는지,
앓았던 게 가벼운 질병인지, 네가 이렇게 멀쩡하게 나타날 만큼 골수이식이
별것 아닌지 묻는 거겠지.

몸이 아픈 사람,
그리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병을 받아들이는 생각도
참 다양하지만 그 어떤 말에도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에게 가시를 쥐여준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잡지 말기를. 내가 받지 않으면 그 가시는
상대가 계속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작은 가시에 찔려 아파하지 말자.
우리는 더 큰 아픔과 싸우지 않았나.

- <내 병은 희귀 난치병인데> 중에서


아픔을 이겨낸 사람, 현재 진행형인 사람, 누구냐에게 공감을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글이었다.

혹은 아직은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도 '아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그랬듯이.


아픔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미리부터 하면서 겁낼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절대 그럴 리 없어, 라는 맹목적인 확신도 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럴 수 있을 일. 그러니까 섣부르게 위로하지도 말자.


새벽 거리는 미련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하고 궁금해하다가
몸이 다 나으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보곤 했다.

대단한 건 없었다.
연극과 뮤지컬 보기,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 입기,
여행 가기, 맛있는 거 실컷 먹기......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인 것들이 나에게는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내 꿈은 그렇게 소소한
것들로 시작해서 점차 커져갔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뭇가지처럼 뻗어가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뒤엉킬 즈음이면
나는 생각하기를 관뒀다.

결국 내가 바라는 건 그 일들 자체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태의 '나'였으므로
어찌 되었든 살아있자고, 건강하자고 다짐했다.

- <새벽의 수연> 중에서


나는 가끔 두려워질 때가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지 못하게 될까 봐, 혹시라도 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뚝, 하고 바닥으로 추락해버릴까 봐. 갑자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져 버릴까 봐, 혹은 내가 그럴까 봐.


왜 그런 무서운 생각을 부러 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살도록 긍정의 마음을 갖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삶,

그러면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적어도 오늘의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살아있자고, 건강하자고' 다짐했을, 어쩌면 지금도 다시 다짐하고 있을 새벽의 '수연'들에게 이 책 속의 글들이 가닿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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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 저자 하수연 / 출판 턴어라운드 / 발매 2019.06.04.


덧붙임.


1. 이건 사족이 분명한데,

이 책이 나는 참 사랑스럽다. 예쁘다. 그걸 말하고 싶어서 자꾸 근질거린다. 그러느라 책을 덮지 못하고 자꾸 들춰보고 있다. 이 글 역시.. 마침표가 쉽게 찍히지 않는다.


2. 저자의 바람이 적어도 내게는 통한 것 같다. 그러니 고맙고 어여쁠 수밖에.

『이 책을 덮고 나서 다시 일상을 마주했을 때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조금 더 선명해지기를, 그래서 이전보다 많은 색을 느끼고 감동받을 수 있기를, 지치고 힘들 때 다시 책장에서 꺼내어 당신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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