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 J. 핀켈 <<괜찮은 결혼>>을 읽는 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큰 아이가 다른 친구들은 체험학습 내고 어디 어디 많이 가는데 나도 가면 안 되냐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해서 급 이루어진 여행이었다. 아이는 월, 화 이틀의 체험학습을 신청했고 나와 신랑은 이틀의 휴가를 썼다.
내가 신랑과 성격이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 대부분 함께 여행을 할 때다.
덜렁거리고, 즉흥적인 나와 달리 신랑은 신중한고 계획적인데 그게 고스란히 나타나는 게 바로 여행이다.
뭐, 그냥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라는 나와 어떻게 할지 일정을 좀 짜 봐야지,라고 하는 게 신랑이다.
7년의 연애, 9년의 결혼 생활 동안에도 여행에서만큼은 서로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게 되고 그때마다 새롭게 상대방에 대해 느낀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결혼 생활이 길다고 해서 모든 게 그럭저럭 맞춰질 거라는 착각은 늘 여행지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간혹 그런 순간, 나는 우리는 괜찮은 사이일까? 하는 이상한 생각으로까지 번지기도 하고.
결론은 없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럭저럭 서로에게 만족해하면서 이해하면서 생활 속으로 바로 태세 전환이 되어 버리기도 하니까.
진작 읽은 『괜찮은 결혼』이라는 책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짐을 정리하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을 보니 무언가 쓸 수 있는 순간이 지금이구나 싶어 졌다.
'괜찮은 결혼'이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했는데,
괜찮은 결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괜찮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주는 등등 말이다.
이건 물론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읽고 한 생각이다.
미리 밝히지만, 이 책은 가벼운 에세이나 쉽게 읽히는 체험기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과정, 생활 등등에 관해 오래 연구하고 적은 한 편의 논문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 시작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읽는 속도가 더딜 수도 있다.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길고 진중한 고민과 연구의 결과물이랄까.
그렇지만 어려운 단어가 난무하거나, 지루한 느낌을 팍팍 풍기는 글을 아니다. 흥미와 진지, 어려움과 가벼움, 그 중간 지점에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비혼이든 아니든 어느 정도는 관심을 갖고 있으니까.
이 책은 결혼 생활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보수 진영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유연한 삶의 가치를 강조한다고 하여 진보 진영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내 바람은 사람들이 모두 정치 성향을 떠나 듯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정적이고 성취감을 주는 결혼 생활을 확대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과제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들께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 서문 <결혼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 책의 서문을 읽고 나면, 어쩌면 어떤 독자들은 이 책을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는다면, '결혼'이라는 주제에 국한하지 않은 폭넓게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 궁금증, 고민들을 같이 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너무 많고, 비슷비슷한 내용의 에세이에 조금 지쳤다면 마음먹고 읽어보길 권한다.
'현재 진행형 결혼' '결혼의 역사' '결혼의 양극화' '건강한 결혼의 길' 총 4부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분량도 그리 짧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의 역사' 부분은 쉬엄쉬엄 건너 뛰어가며 읽었다. 대신 '결혼의 양극화'와 '건강한 결혼의 길' 파트는 집중하면서 읽었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1부에서 4부까지 일고 싶은 부분을 먼저 찾아 읽어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행복과 의미의 차이를 보면 결혼을 통해 개인의 성취 추구와 부부 헌신 두 가지가 양립하기 힘들다는 견해가 어떠한지 분명해진다. 문제는 두 가지가 양립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기대 이하라는 점이다. 만약 개인적 성취를 행복, 즉 고통에 비해 즐거움이 높은 것으로 정의한다면 개인적 성취 추구와 부부 헌신 두 가지가 양립하기 힘들다는 견해는 대체로 옳다. 사실상 모든 결혼은 고통 대 즐거움의 비율이 낮은 수준이거나 다른 면에서 괜찮아 보이는 기나긴 시간을 거친다. 그렇기에 만약 영원한 행복을 기대한다면 결혼생활은 이혼 위기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 성취를 의미, 즉 무의미함에 비해 목표가 높은 것, 혹은 진정한 자아와 관련된 영역에서 탁월함을 열심히 추구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개인적 성취 추구와 부부 헌신이 양립하게 힘들다는 견해는 대체로 틀리다.
- 3부, 결혼의 양극화 <행복, 의미, 그리고 결혼> 중에서 / p175
나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가,
우선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과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 부분의 내용은 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결혼은 (오래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나의 행복과 상대의 행복의 적절한 균형일 테니까.
언제부턴가 나는 한쪽의 희생으로 가족의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는데,
내가 '나'의 행복과 안녕을 조금 더 우선시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부부가 아이를 낳아 함께 양육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엄마인 '나'가 아빠인 '신랑'보다 투자해야 할 물리적, 감정적인 영역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인 '나'가 용인할 수 있는 영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적어도 우리 가정, '나'와 '신랑'에게는) 그게 유지되어야만 부부의 관계도 '괜찮을 수' 있다고 믿는다.
행복을 추구하든 의미를 추구하든 궁극적으로는 모두의 안녕을 위한 게 목표라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절대로 한쪽의 희생으로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
부부 관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덜 투자하면서 모든 고차원적 욕구가 충족되기를 기대하면 산소 공급이 부족해진다. 지금의 결혼 생활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한 상태다. 앞서 보았듯이 이런 상태는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부에게 심각하다. 사회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프란체크사 칸시안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대부분의 부부들은 결혼 생활과 양육 부담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나 부부 관계 발전에 집중할 에너지가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둔 여성 중 결혼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는 비율은 38퍼센트에 불과하고(아이가 없는 경우 68퍼센트였다), 양육과 결혼 생활의 불만족 간의 연결고리가 최근에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이나 호주처럼 전형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민주주의 국가 22개를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되면서 나타나는 '행복 페널티'가 미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이유로 가족 친화적인 고용정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3부, 결혼의 양극화 <숨 막히는 결혼과 부부의 딜레마> 중에서 / p212
멀리 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역시 비슷하지 않은지.
가족 친화적인 고용정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부의 결혼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미 그렇기도 하고.
이 책은 여러 연구결과와 사례들을 들어 지금의 사회가 '결혼'이라는 제도 '부부의 행복' '관계' 등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옳다 그르다는 결론이 아닌 그럼에도 '괜찮은 결혼'으로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의 연구, 미국에서 결혼이라는 게 어떻게 변호되어 왔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역사'를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서 중간중간 쉬어야 했지만, 그것들을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어느 사회이든 개인적은 것 말고, 국가의 역할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결혼을 통해 성장을 기대하려면 부부 관계에 시간과 관심을 충분히 쏟아야 한다. 삶이란 마감 시간에 쫓기고, 가사를 책임지고, 자식들을 늘 걱정하고, 때로는 부모가 건강이 좋지 않은 등 비명 지를 일로 가득 찬다. 그리고 결혼 생활 대부분이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상당수 사람들은 결국 배우자와 함께 귀중한 시간을 보내기 힘들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인생에서 할 일을 다 끝날 때나 즐길 수 있는 사치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을 바꾸거나, 적어도 완화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다른 모든 것을 우선시하고 남은 시간에 어렵사리 결혼 생활을 즐기려 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여야 한다. 성공적인 결혼 생활에서 기대되는 심리적, 육체적 소득을 생각한다면 부부 관계에 귀중한 시간을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직업을 가지거나, 집에 먼지 더미가 쌓이도록 내버려 두거나, 아이들의 과외활동을 줄이더라도 말이다.
- 4부, 건강한 결혼의 길 <시간 내기> 중에서 / 300
어쩌면,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부부 관계를 괜찮게 유지하기 위해서 부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걸.
그렇지만 아이 때문에,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순위가 된다는 것도.
그걸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늘 마지막에 가서 남는 건 늘 부부다.
나는 그게 늘 풀기 힘든 과제처럼 느껴진다.
부부에게 주어진 책임은 너무 많은데 도움의 손길은 늘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도 해결도 다 알아서 하라고 하니, 별 수없이 차순위보다는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게 된다.
그러고 나니 아, 우리는 뭐지 하는 허탈함이 남는다.
이건, 내가 지난 몇 년간 결혼 생활을 통해 느낀 점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웃는 걸 보느라 시간을 실컷 투자했는데, 나와 신랑 둘이 남았을 땐 대화도 웃음도 없던 불편한 시간들 말이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무엇이 우리를 건강한 관계로 만들어 줄 것인지를 선택하는 건 부부의 몫일지언정
그것들을 뒷받침해 줄, 응원해줄 제도와 사회 환경이 조금이라도 가족친화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아주 조금은 불행한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까.
개인적 노력과 사회적 노력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이 책은,
추천의 글에서도 서문에서도 '당신의 결혼이 괜찮을 수 있다고 ' 얘기해주고 있다고 적었지만
나는 굳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런 결혼도 있다고, 그런 관계도 있다고 인정하면 될 것 같다고.
그 뒤에 나의 결혼에 대해서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고.
꼭 다 좋아야 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결국 우리는 아마도 계속 좋았으면 하고 바라는 삶을 살게 될 테니까.
다만, 꼭 한 번쯤은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의 성향에 대해, 상대의 성향에 대해.
우리의 관계가 그 성향들을 인정하고 받아 들 일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괜찮은 결혼>> / 저자 엘리 J. 핀켈 / 출판 지식여행 발매 2019.06.03.
덧붙임.
아-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결국 어땠는지 적어야겠다.
하루에 한 번씩 마음이 상했고, 하루에 한 번씩 마음을 풀었다.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고, 그냥 넘어간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다시 괜찮은 관계로 돌아왔다.
결국, 우리의 결혼 생활을 그렇다. 아마 계속 그럴 것이다.
괜찮은 상태와 그럭저럭 한 상태의 중간쯤. 그리고 가끔은 별로인 상태로도 유지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