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먼저 지키는 일

- 장새롬 <<결혼해도, 나답게 살겠습니다>>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신랑과의 연애 기간은 7년이었다.

스물네 살 가을에 시작해 서른한 살 봄 결혼을 했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두 사람은 연애 기간 동안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만나다 보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결혼은 신랑이 미리 구입해서 전세를 주었던 아파트 전세 만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프러포즈 다운 프러포즈도 없었고, 결혼해줘~ 같은 달콤한 멘트도 없었다.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시기에 맞춰 결혼 날짜를 잡았다.


결혼에 대한 구체적 생각도, 고민도 없이 후다닥 진행된 결혼인지라 결혼한 뒤에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나는 어떻게 변하게 될지, 우리의 관계는 어떨지, 우리의 미래 계획이 뭔지 생각하지 않았다(못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올해로 9년.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결혼 뒤의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애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혼인 신고도 아이가 태어난 뒤 했다. 서로의 시간과 공간, 사적인 영역을 최대한 보장해주면서 지내온 관계인지라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내가 결혼을 한 건지, 아닌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지인들에게 '결혼하지 마. 그냥 연애나 하면서 살아'라는 말을 한다.

이런 아이러니는 뭐지. 가끔 생각한다.

아무리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제도로 묶인 관계가 된 이후 결혼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밤늦도록 친구를 만나는 일도, 진짜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할 때도 상대에게 동의를 구해야 할 것 같았고, 우리 집(친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어쩐지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았고, 상대의 부모님을 챙겨야 할 것 같은 책임감 같은 게 생겼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강요받는 것 같은 느낌은 종종 간절히 아,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달라졌다.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강요받지 않은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것. 누구도 구속하지 않은 구속을 당하게 되는 것.


육아 중요해. 일 중요해. 살림 중요해.
하지만 사람으로서 내 휴식과 복지도 중요하다. 난 여행을 하면 힘을 얻는다. 자주도 아니고 365일 중에 7일이다. 358일을 끈끈하게 함께했고, 엄마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있으면 아이들은 잘 기다릴 거다. 100% 서로에게 올인하는 부부가 건강하지 못하듯이 일주일의 휴가도 용납 안 되는 부모 자녀 관계도 건강하지 못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여행을 떠난다.
- <아이 엄마 혼자 떠다는 여행의 합리화> 중에서


'결혼해도 나답게' 살겠다는 건, '나'를 가장 우선에 두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고, '나' 사랑하는 시간을 많이 갖겠다는 것이고, '나'를 잊지 않겠다는 것이 아닐까.

결혼이라는 제도는 너무도 쉽게 그것들을 한순간에 잊게 하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게 하니까.

그래서 이 책을 쓴 저자의 실행력에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놀라고 말았다.


이 책을 쓸 때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뱃속에 셋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 남편의 직업상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쪽 바다에서는 책방을 내고, 이사와 함께 책방을 그만둔 이후에는 집에서 '비밀 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틈틈이 혼자 여행을 다녔고, 그 사이 셋째를 낳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들과, 유치원생 둘째 아들의 육아를 담당했다(게다가 아이들이 다섯 살이 넘도록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돌봤다).

매일 집 밥 일기를 블로그에 올렸고,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이쯤 되면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의 저자는 너무 담담하다. 그게 그냥 삶이고, 자신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상이다.

그럴 수 있는 힘은,

'자기 자신을 믿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당당함에서 나온 게 아닐까.


사실, 아무리 남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공허할 뿐.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실패감을 느끼며 살기에는 아까운 귀한 사람이니까.
- <우울한 날> 중에서

자신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 상대방의 사랑에 기대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

어쩌면 '엄마'인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한 가지 더.

함께 살아갈 배우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꼭! 잘 살펴봐야 할 일.

이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지 않도고 사랑하지 않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


한쪽만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삐걱거릴 수밖에 없을 테니, 결혼을 앞둔 이들이라면 오래도록 결혼 이후의 개인의 삶에 대해,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길 권한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 부부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잔소리하지 않기', '개인적인 시간을 인정하기' , '서로의 집안 사정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기', '서로 비밀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 같은 것들에 동의했다.

시행착오도 겪고, 때때로 불편한 기운이 감지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러려니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결혼 한 이후의 '나'를 만드는 건 '나'혼자 할 수 있는 아니라는 건 결혼생활 9년 동안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이다.

아이와 양쪽 어른들, 부부관계, 경제적 상황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온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게 결혼이었다.

그러니 '결혼해도 나답게 살겠다'라는 저자의 한 마디는 꽤 울림이 크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결혼 이후 자주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 졌다.

이 책도 그렇지만, 저자의 블로그에 들러 집 밥 일기도 읽고, 저자가 한 달에 한 번 하는 비밀 책 프로젝트도 기웃거려 보기를.

아마, 누군가는 '뭐지. 무지 자신감 넘치네'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아아 내가 그랬다). 그런데 묘하게 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따라 해보고 싶어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멀찍이 남을 들여다보면서 결국에 가서는 자신은, 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고, 그래서 지금 '내'가 지금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주는 힘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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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나답게 살겠습니다>> / 저자 장새롬 / 출판 진서원 / 발매 2018.11.16.



덧붙임.


저자가 지닌 마음 중, 아이들의 육아에 대한 마음이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는 듯하다.

육아를 하는 동안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꽤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다.

아이에게 올인하지 않기, 아이와 나를 분리시키는 노력.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저자의 그런 마음을 담은 <여기까지가 나의 모성이다>라는 글의 전문을 옮긴다.

어쩐지 그러고 싶어 졌다.


"엄마=모성애 충만"이 아님을 첫애 낳고 알았다. 아이가 성장하듯 나 또한 성장하는 것임을 알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날 보고 따라 하니까 행동 조심하느라 운전하다가 화도 참아야 했고, 말도 조심한다. 이것이 나의 모성이다.
말로 잔소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본이 되기 위해서 나 자신을 다스려야 하는 것. 아이 생각 안 한다면, 어쩌면 나 편하자고 막살고 막 행동하는 삶을 이어갔겠지만 아이가 보고 있으니 말조심하고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나의 모성이다.
아이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훈육하려고 30년 굳은 성격을, 버릇을 돌아본다. 나에겐 어쩌면 이게 정말 힘든 일이다. 돈 버는 일보다, 몸 바쳐 뒷바라지하는 일보다 나의 고집과 성격을 바꾸는 것이 배로 힘들다. 성격 더럽고 이기적인 내가 다듬어져 가는 이 과정이 나에겐 모성 덕분이다. 이것만 해도 난 엄마 역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까지가 나의 모성이다.
- <여기까지가 나의 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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