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부끄럽다 말하는 게 부끄러웠어

-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내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몇 가지의 잊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다.

나는 늘 딱 거기까지만 썼다.

그 장면들을 애써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았고, 잊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장면들이 아니라 그걸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의 나약한 마음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나는 어렸고, 약했으므로 당연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른들은 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싸웠고, 화해했다. 때론 사라졌다.

어른이 된 뒤에 어렴풋이 그때의 어른들의 행동을,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나는 그 장면들을 꺼내 놓는 것이 두렵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p23



누군가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는 일이 두렵다고 했다.

작가가 고백하는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자꾸 자신이 숨기고 싶은, 숨겨야 하는 어떤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고.


그것은 1952년 6월 15일의 일이다. 내 유년 시절의 정확하고 분명한 첫 번째 날.
그전에는 칠판과 노트에 적힌 날짜와 하루하루의 흐름이 있었을 뿐이었다.
- <부끄러움> 중에서, p25


그날의 사건은 '나'의 유년시절을, 유년시절을 비롯한 '나'의 삶 자체를 다르게 바라보고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그런 '나'와 상관없니 '나'의 부모는, 그날의 일은 대수롭지 않게 평소와 같은 날들을 살아갔다. 아무렇지 않게. 어쩌면 '나'에게는 부모의 그 '아무렇지 않음'이 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미소를 짓거나 공범자 같은 폭소 또는 농담으로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할 때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사건은 그저 '나쁜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그런 애정 표현은 오로지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에만 의미가 있을 뿐 미리에 대해선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 <부끄러움> 중에서, p29



나는 그 사실을 결혼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와 묶인 뒤 알게 된 것 중 어쩌면 가장 팩트에 가까운.

우리는 아침에 웃으며 볼에 뽀뽀를 하고 헤어졌다가 밤이 되면 어떤 사소한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고, 등을 돌리기도 했다.

'나'가 유년시절에 보았던 부모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나의 아이가 보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오싹해졌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사건이 '나'에게 남긴 건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다.

물론 그 하나의 사건으로만 '부끄러움'이 남은 건 아니었다. 그 사건은 조금 더 큰, 조금 더 확실한 형태였을 뿐.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던 사건이 일어난 해 '나'는 중산층 이상만 다니는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그전까지 '나'를 구성했던 '우리'라는 개념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 계급이 나누어지고, 지금껏 '우리'라고 생각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나'는 부끄러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에 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 <부끄러움> 중에서, p117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나'는 학교에서 친구가 아무도 없다고 했지만), 선생님들을 통해 '나'는 그동안 '나'가 살아온 환경이 아무것도 아님을, 그들과 전혀 다르며, 그들에 비해 형편없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런 자각은 누구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신만의 '부끄러움'이 되어 돌아왔다.


남들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환경이 부끄러워지고, 아무렇게나 옷을 걸쳐 입는 엄마가 부끄러워지고, 교양 있어 보이는 다른 아이들의 가족에 비해 '나'의 가족은 형편없는 것처럼 느껴져 부끄러워졌다.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했다.
마당의 오줌통, 함께 자는 방(공간 부족으로 인해 우리 계층이 대개 그렇듯 나는 부모와 같은 방에서 잤다). 어머니의 손찌검과 거친 욕설, 술에 취한 손님들과 외상으로 물건을 사는 친척들. 술에 취한 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고 월말이면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우리 삶에 대한 정확한 인식. 오직 이 인식만으로도 내가 사립학교의 무시와 경멸의 대상에 속한 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 <부끄러움> 중에서, p137



작가는 자신이 건너온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읽는 '나'는 내가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었다고 착각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 시절의 공포를, 두려움을 다시 꺼내보게 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어떤 기억에 대해 고백할 용기가 없다. 그 고백으로 나의 그 상처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어쩌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언젠가 그 고백을 담담하게 하는 날이 오기를 늘 기대하고 있다.


최근 어떤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본 아이는 손들어 보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반 28명의 아이 중 손은 든 아이는 3명이었단다. 그 기사를 읽고 처음엔 화가 났고, 그다음엔 나의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 역시 아직 해외여행을 가 보지 않았다. 길게 휴가를 쓸 수 없는 맞벌이 부부라는 이유도 있고, 지금은 둘째가 너무 어린다는 이유도 생겼고, 이런저런 연유로 아이는 아직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다. 혹여라도 아이가 다니는 반에서 그런 조사를 했다면 나의 아이 역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부끄러움으로 인해 움츠러들지는 않았을까. 그 부끄러운 기억이 오래 남아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오래전, 친구들 앞에서 '우리 집에서 피아노 있거든?'하고 거짓말을 하고 심장이 벌렁거려 부리나케 집으로 도망쳤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풍족하지 않았던 우리 집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인식을 했던 게 아니었는데도 그런 거짓말이 나왔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누군가의 부족함과 나의 여유 있음을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비교하고, 재단하면서 살아가도록 교육되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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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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