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몸'을 이해하는 것

- <<릿터 18호 - #BOPO>>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첫째 아이를 임신한 걸 알았을 때 내 몸무게는 62킬로그램이었다.

10개월 동안 아기도 나도 무럭무럭 자라 만삭일 때 76킬로 그램이 되었고.

아기가 태어나면 한순간에 빠지겠지 했던 기대와 달리 체중은 7킬로그램 밖에 빠지지 않았고 그 후로 3년이 지날 때까지 나는 67킬로에서 69킬로그램 사이를 오갔다.


그때 나는 몸무게가 빠지지 않아서 속상하거나 다이어트를 결심하지 않았다.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귀찮았다. 처음 해보는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내 몸보다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았다.


체중은 엉뚱하게 줄었다. 큰 아이를 낳고 3년쯤 지났을 때 평가다 뭐다 해서 직장에서 업무량이 늘고,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다. 개인적으로도 육아 우울증을 동반한 신랑과의 감정 소모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살은 자연스럽게 빠졌다. 아무것도(다이어트 같은) 하지 않았음에도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 빠졌다.


그 이후 둘째를 갖고 둘째를 낳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아기를 낳고 한 달 사이에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왔다.

지금 내 체중은 52킬로그램에서 54킬로그램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오히려 체중이 더 나가던 예전보다 내 몸에 대해 조금 더 예민해졌다.

건강하게 빠진 살이 아니라 살이 빠지는 만큼 체력이 떨어졌고, 위장병이 생겼고, 피부가 푸석해졌다. 살은 늘어졌고, 어깨는 구부정해졌다.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오히려 체중이 많이 나갔을 때보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이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매일 피곤하다 아우성치는 몸을 내가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2019년 6/7월 릿터의 주제는 <<#BOPB >>다. 'Body positivity'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자기 몸을 긍정하자는 캠페인이다.

획일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자는 의미의 캠페인.


이번 호 역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흥미로운 주제였고, 그만큼 즐겁게 읽었다.


<Flash Fiction>에 실린 김유람 소설가의 「조리원 천국」이라는 짧은 소설은 나의 조리원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조리원에서 제일 인정받는 여자가 누군지 아니? 젖 잘 나오는 산모야. 거기 분위기가 원래 그래. 모유 수유 성공이 아기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것 같거든. 거기서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
- <조리원 천국> 중에서


나는 두 아이 모두 초유만 간신히 먹였다. 그나마 첫 애는 3개월가량 억지로 수유를 했지만, 둘째를 낳고 나서는 한 달 만에 포기했다.


젖몸살이 돌기 시작하자 우울함이 극에 달했다. '아, 출산의 고통을 겪었는데, 모유 수유를 하면서 또 고통을 겪으라고? 이렇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유 수유만 안 하면 살 것 같았다. 신랑은 내심 조금 더 해보지,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단호하게 젖을 말렸다. 그러고 나 자 정말이지 살 것 같았다. 모성이 없는 거 아냐?라고 누군가 그때 내게 말했다면 분노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도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한 가지는, 모유 수유 유무로 엄마의 모성을 들먹이며 이야기는 사람들이다.


조금 더 솔직히 고백하면, 아주 잠시 죄책감이 뒤따랐다(그게 더 화가 났다). 아이가 감기에 걸릴 때 '아, 내가 모유 수유를 안 해서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어리석었다).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그 폭력을 가장 많이 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지금도 나는 내가 모유 수유 중단을 빨리 선언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을 옥죄는 지긋지긋한 미적 억압은 탈코르셋 운동과 더불어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의 물결을 거세게 일으켰다. 탈코르셋 운동이 일체의 여성적 아름다움의 규준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자기 몸 긍정주의는 '나는 나이므로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라는 자아 존중감 고양의 메시지다. 뚱뚱해도 아름답다, 키가 작아도 아름답다, 모공이 커도 아름답다, 가슴이 작아도 아름답다 등등.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의 기준은 다양하다는 것. 도달 불가능한 획일적 미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간 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정이 너무 손쉽고 게으르게 이뤄져 왔다. 미의 원본을 정해 두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몸들을 엄격하게 오답 처리해 온 폭력적 세태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을 때도 됐다.
하지만 조금 솔직해지자. 허벅지의 넘실거리는 셀룰라이트를 보며 '내 몸은 아름다워.'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남의 몸 긍정은 쉽다. "예뻐, 예뻐. 걱정 마. 하나도 안 뚱뚱해." 자본은 더 쉽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아름다워요. 우리 물건만 팔아 주신다면!" 자기 몸 긍정주의의 정의도 때때로 헷갈린다. 탈코르셋 운동처럼 '아름다움 따위 필요 없다.'라는 것인지 '모든 육체가 다 아름답다.'라는 것인지 의미가 묘연하다. 전자도 후자도 논리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명제다. 아름다움이 필요 없을 리 없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울 수도 없다.
- 박선영, <미인의 정신을 함양하기> 중에서, p24


나는 탈코르셋을 지지하는 것도, 지지하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름다움 따위 필요 없다'라는 말엔 쉬이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아름다움이란'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 보기에 아름답다고 생각되면 꾸미면 되고,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고(충분하다고) 생각된다면 굳이 남들이 생각하는 꾸밈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지. 물론 잘 꾸미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꾸미지 않는 사람도 아닌 역시 애매모호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이 글에 조금 더 공감했던 것 같다. '아름다움이 필요 없을 리 없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울 수도 없다'라는 말에.


아름다움을 단순히 '몸'에 국한해 생각할 때 이 모순은 영원히 풀리기 어려울 것이다.

위의 저자가 적은 다른 문장에서 '내가 나의 셀룰라이트를 용서할 수 있는 순간은 그래도 내가 이만하면 괜찮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자의식이 가동할 때, 내 몸이 수행한 다양한 기능과 성취들에 만족할 때뿐이다(p25)'라는 부분에 또 역시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나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 졌다.


릿터를 처음부터 읽다 보면, 첫 도입부에 이런저런 생각을 가득하게 한 다음, 소설과 인터뷰, 시, 리뷰로 이어지면서 마음의 긴장을 확 풀어준다.


특히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매력에 빠져서 가끔 앞에 생각했던 것들은 잊어버리고 말기도 한다. 물론 다시 마지막에선 앞부분의 생각들을 떠올리게 되긴 하지만.


이번 인터뷰 중 배우 봉태규의 말 중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질문은 이랬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서 작품 이외에의 면모를 더 알아보기도 하나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

「한강 작가는 인터뷰를 다 찾아서 읽었는데 천재시더라고요. 너무 궁금했거든요. 하시시 박 작가가 임신했을 때였는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으로 성장하는 거지? 싶어서 찾아봤어요. 한강 작가님의 부모는 작가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찾아봤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아예 결이 다르더라고요. 여러 가지가 겹쳐지고 겹쳐져서 하나의 명확한 점이 생겨야 하는 건데 이 점만을 바라보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서 접었습니다 p90」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사람들의 육아법에 종종 귀가 얇아지는 순간이 온다. 유혹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실행으로)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육아니까. 좋다고 해서 따라 하지 않고, 우리에게(나와 신랑, 아이들)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 흔들리지 않고 믿는 것. 실행하는 것. 언제나 필요한 다짐이다.


이번 호에 실린 시들 중에서는 서윤후 시인의 <소요한 생활>이라는 시가 참 좋았다.


부엌에서 밥을 짓다 손등에 맞춘 쌀뜨물에 처음 보는 얼굴이 출렁
인다
언제까지 씻어야 해? 얼마나 더 씻어야 해? 이렇게 울게 되고
눈대중으로 10월과 11월의 차이를 알게 된다
고무나무는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랗게 질린 잎을 바닥에 떨
어뜨린다
나는 아직도 쟁반을 보며 내리치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지루하고 난폭한 와중에도
생활은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 동물원의 악어처럼
- 서윤후 <소용하는 생활> 부분


'지루하고 난폭한 와중에도 생활은.... '이라고 자꾸 읽혔다.

왠지 모르게 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덮기 전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BOPO에 대해 한 번 더 기억하기 위해.


앞에서 차마 적지 못한 한 문장을 결국 적고 만다.


다른 몸을 향한 차별은 누군가의 존재가 비정상이라고, 불필요하다고, 쓸모없다고 여기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 강진경 <불화하는 몸> 중에서


이 문장은 <불화하는 몸>이라는 강진경의 글 중 한 문장이다. 이 글은 #BOPO 캠페인에서 장애여성의 몸을 대할 때 드러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 한계, 바뀌어야 할 시선과 제도, 저자의 바람이 드러나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어쩌면 Body positivity가 가져야 할(품어야 할) 어떤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는 이야기 같아서 오래 담아두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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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 Littor 2019.6/7>> / 저자 편집부 / 출판 민음사 / 발매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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