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

- 신혜원, 이은홍 <<평등은 개뿔>>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결혼 전 프러포즈 같은 건 없었으나, 농담처럼 신랑이 말했다(그때는 예비 신랑)

"손에 물 안 묻히게 한다는 말은 못 해"

우린 아마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냥 웃었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을 때니까.

무슨 말을 했더라도 웃을 수 있는 시절이었을 거다.


결혼 후,

당연히 매일 손에 물을 묻혔다.

신랑도 그랬다.

우린 치열하게 싸우지는 않았지만 오랜 연애에서 터득한 서로의 성향과 취향에 맞춰 적당히 알아서 움직였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식사를 담당했고, 정리를 잘하는 신랑은 청소를 담당했다.

그건 결혼 초나 9년이 지난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평등한가?

우리 부부가 정의 내린 평등이라는 게 있었던가?


나는 스스로 우리는 60대 40 정도로 가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육아를 포함해서. 물론 60이 나다.

그런데 내가 그 60에 불만이 없는 이유는, 내가 원할 때, 필요할 때 40을 담당하는 신랑이 기꺼이 40 이상을 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건 당신이 할 일이지.'라고 뒷목 잡을 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평등'이라는 말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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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고생 안 시키고, 돈 걱정 따위 안 하게 하지 못할 거야."

"응, 알아."

"나도 약속할게. 아내로서 완벽한 내조 따윈 절대 없을 거야."

"당연하지."

- <평등은 개뿔> 중에서



결혼 전, 이런 약속을 하고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결혼 후 현실에 부딪쳐 치열하게 싸운다(싸웠단다).

결혼은 역시 결혼이니까. 현실. 완벽한 현실.

둘만의 세상이 아니라 둘을 둘러싼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니까.

시어른들, 장인 장모가 등장하는 순간 왜 대부분의 가족 드라마는 막장으로 치닫는 것일까.(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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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싸울 수 있다는 건 건강한 거라고 어느 순간 믿게 됐다.

물론, 애정을 바탕에 둔 싸움일 경우에 말이다.

어느 한쪽만 참는 게 아니니까. 서로 할 말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싸우다 화해하면서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어 가는 거니까.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우리는 연애시절에도 결혼 이후에도 치열하게 싸워 본 적이 없다.

그건, 뭐랄까.

굉장히 다정해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는 느낌이랄까.

결혼 후에도 온전히 서로를 서로에게 발가벗겨 보여주지 않는, 서로가 감춰야 할, 감추고 싶은 최후의 하나는 남겨 두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내게 '평등'이라는 말이 어쩐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기꺼이 서로의 시간과 노동을 이해하고 나누지만, 조금 더! 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냥 적당히 알아서 타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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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책 속의 남편), 페미니스트가 될게.라고 다짐한 뒤 달라졌다.

그런데, 여자는,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 갈수록, 집안일을 알아서 하고 서로 적당히 분배해서 맞춰 갈수록 사회에서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를테면, 여자는 남자 기를 죽이는 기센 아내가 되고, 남자는 아내 일을 잘 도와주는 착한 남편이 된다.


이게 현실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육아도, 집안일도 남자가 '돕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라고 외치지만 왜 이리도 사회는 그걸 인지하는 게, 받아들이는 게 느린 걸까.


남자의 육아휴직이 늘고 있다는데, 경제 활동을 하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는데,

왜 여전히 여자는 집안일을 잘해야 하는 사람,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 남자는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물론, 우린 안다. 왜 그런지. 제발 좀 바뀌어라! 외칠뿐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뿔"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이 잘 맞는(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결과물이더라도) 두 사람이 합의한 어떤 지향점에 대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여성에게만 유독 가혹하게 평가 내려지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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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어려서 인형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터닝메카드, 헬로 카봇, 미니 특공대 같은 만화를 즐겨 보고, 자동차를 끌어안고 다니며 놀았다.

머리도 숏커트를 주장했다.

그런 아이가 달라진 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겨간 지 딱 두 달 만이었다.

"엄마, 머리를 길러야겠어"

"엄마, 나도 치마가 입고 싶어"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달라졌다.


물론 지금도 공주가 나오는 만화는 싫어하고, 치마보다는 운동복을 즐겨 입는 아이지만 은연중에 아이 입에서 "나는 여자니까" "걔는 남자니까" 같은 말이 스스럼없이 나올 때 깜짝 놀란다.


우리 사회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은 남자, 여자의 고정된 역할에 대한 개념이 이미 아이에게 일정 부분 스며든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풀어줄 수 있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전투적인 자세로 읽을 필요도, 경계심을 갖고 읽을 필요도 없는 가볍고 유쾌한 책이지만

읽다 보면 은근히 빠져들게 된다.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자주 "그래, 그래 맞아. "하고 맞장구를 치고 싶어 질 것이다.

남자들은 어떨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의 저자 최승범은 이렇게 적었다.


『평등은 개뿔』을 읽는 내내 지난 10년 동안 나와 함께 공부했던 남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당수의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지만, 이들은 항간의 주장처럼 괴물이거나 차별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공정함과 평등을 지향하고 고정된 성 역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다. 다만 여성의 삶을 모르고, 페미니즘의 주장을 오해하고, 갈등을 유도해 이익을 보는 자가 있고, 공정함과 평등에 맥락이 소거되어 있어서 그렇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남성들이 겪을 일 없고 그래서 관심 가지지 않았던, 여성을 향한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차별과 편견, 폭력을 깨달아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거두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많아진다는 건 물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냥 페미니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남자들이) 많아지는 사회면 더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좋아하는 저자 중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p37-39」


규정하지 않고,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같은 책 p51>" 말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그렇다면 조금은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평등하기로 소문난 30년 차 부부다.

그런 부부에게도 "평등은 개뿔"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아주 종종. 너무 자주.

그들이 그리는 세상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부부들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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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개뿔>> / 저자 신혜원, 이은홍 / 출판 사계절 / 발매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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