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그깟 이상한 감정들 털어버리고 말지 뭐

- 남인숙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가끔 언니가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네가 정말 이렇게 바뀔 줄 몰랐어. 어릴 때 너는 정말 활발하고 나가 놀기 좋아하고 그랬는데 말이야."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사춘기가 너무 늦게 와서 그래"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냥 둘러대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어떤 애였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세 살 터울의 언니의 기억이 조금 더 정확할 테지만 말이다.


나의 사춘기는 스무 살이 넘어서 찾아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어두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 토론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세계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동안 내가 알던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안으로, 더 깊게 들어가 보고 싶어 졌다.


안으로 숨는 시간이 많아졌고,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차곡차곡 안으로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게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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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려 있는 체크리스트를 해보니 12개의 문항 중 12개에 Yes라고 대답했다.


나는, 전형적인 내향인 이었다.


그동안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야.'

오랜 시간 직장생활 중 마음을 온전히 터놓고 지내는 동료가 없다는 것.

누군가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게 부담스럽고, 퇴근 후 술 한잔하자는 말이 부담스럽고, 회식이 싫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게 싫다는 걸 깨닫고 난 뒤 내린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나름 직장생활을 오래 별 탈 없이,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하고 있다. 이건 좀 대견한 일인가.


이 책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나는 전형적인 내향인이지만 언제든 사회성 버튼을 누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내향적인 사람이었다는 것.

이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내성적인 이들은 상대의 반응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말하고 싶은 욕구를 발산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만족스러운 반응이 예상되는 익숙한 상대에게만 제대로 입을 연다. 이런 이들이 편한 상대를 만나 말문이 트이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깜짝 놀라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는데 당연한 일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사실 선택적인 수다쟁이다.
- <내가 과묵하다고요?> 중에서, p24


나 역시 그랬다. 감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만 나를 드러내는 사람.

굳이 말을 꺼내 이런저런 말이 보태지고 부풀려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

말을 하느니 듣는 쪽을 택하는 사람.


저자는 '사회성 버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독히 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몇몇 상황에서 의식 속에 누르는 버튼.

그 버튼을 누르면 외향성은 본성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예의와 배려가 된다고(p30).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종종 피치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서서 회의를 진행해야 할 때도 있고, 업무상 낯선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할 일도 생긴다.

특히 사무실의 분위기를 위해 그리 재미있지 않은, 가끔은 불쾌하거나 무례한 상사의 농담에도 웃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노련한 몇몇 선배 직원들은 같이 농담을 하거나, 돌려서 말을 막아버리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내공이 부족한지라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수룩한 말투로 그 상황을 견뎌내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돌아서서 자주 후회하게 되는데,

'아, 나는 왜 그냥 그 순간을 아무것도 아닌 듯 넘기지 못했을까' 같은 생각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넘기는 상황도 종종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마는 성격을 탓하기도 하고.

그러니 관계 맺기에 대한 두려움이 늘 내게는 익숙하게 따라다녔다.


가끔 관계가 숙제처럼 다가올 때면 그동안 스스로 배운 것들을 되뇌곤 한다.
나, 가족, 그다음이 친구라는 우선순위를 잊지 말 것.
나를 열어놓지만 상대에게는 초대받는 만큼만 다가갈 것.
상대를 내 삶 안으로 억지로 초대하지 말 것.
친밀한 한두 관계에만 의존하지 말 것.
상대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말 것.
삶은 원래 외로운 것임을 잊지 말 것.
- <사람, 좁고 깊게 사귀고 싶습니다> 중에서, p82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억지로 관계를 맺어야 하고, 한 번 맺어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모임에 참여해야 하고

싫어도 가끔은 참아야 하고, 이런 것들이 내향적인 사람들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불필요한 관계 맺기를 하지 않는 일에 조금 더 자유스러운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내향적인 성격이 나쁘다거나, 외향적인 성격이 좋다거나 하는 이분법적인 결론이나 답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고, 그 때문에 괜한 스트레스나 억압 혹은 불안을 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

특히 내향적인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관계의 불안함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답답함 같은 것들 역시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다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뒤 다음 액션을 취하면 좋겠다는 것.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이 내내 따라다녔다.


우리가 말하는 '틀림'과 '다름'이라는 것.

무엇이 틀리고 무엇이 맞고, 무엇이 다른 것인지 재단하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을 인지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겠구나 하는 것.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인정하게 된 것은 상처가 낫는 데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툭 털어버리면 된다.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아무리 자신을 설득해도 마음의 상처는 곧바로 괜찮아지지 않는다. 바늘에 깊게 찔린 손가락이 괜찮다고 생각만 하는 것으로는 바로 낫는 게 아니듯 말이다. 차라리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마음이 덜 부대낀다.
조급한 마음을 버렸다면 그다음에는 상처의 물리적 요인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상처를 준 사람과의 거리를 확보하거나 대화로 해결될 부분이 있으면 대화를 한다. 부러진 바늘이 상처 안에 들어가 곪고 있으면 아무리 약을 발라도 소용없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는 뾰족한 것들을 이전 형태 그대로 남겨두고 회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내 마음만 돌봐도 되는 상태에서 나를 기다려주다 보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을 시작하면 된다.
툭 털어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도 될 것 같다.
- <그깟 '일'들 나도 툭,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중에서, p184



요 며칠 나를 따라다니는 불길한 녀석, '우울'과 비슷한 그 형태도 형체도 없는 녀석 때문에 안 그래도 안으로 숨는 내가, 더더 안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이러다 큰일 나겠군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내 마음만 돌봐도 되는 상태에서 나를 기다려주다 보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순간이 온다'라는 말을 어쩐지 믿고 싶어 졌다.


'툭' 그깟 이상한 감정들 털어버리고 말지 뭐, 싶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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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 저자 남인숙 / 출판 21세기북스 / 발매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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