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유미 <<피구왕 서영>>을 읽는 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인천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전학을 했다.
공단 노동자였던 아빠가 다니던 인천의 한 공장이 안산으로 옮겨왔고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함께 이사를 했다.
그땐 전학이라는 게 어쩐지 특별한 아이들이 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마냥 설레었다.
그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들과 헤어짐이 아쉽지 않을 만큼
전학을 와서 처음 반 아이들 앞에 서서 인사를 하던 5학년의 나는 한껏 들떠 있었을 거다.
이십여 년 전의 안산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지금은 신도시가 생기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땐 여긴 시골인가 싶었다.
(공단의 노동자를 사람들이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는 건 훨씬 더 자란 뒤에야 알게 되었고, 그때 우리가 그리 풍족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도, 순위를 매긴다면 아주 밑에 자리하고 있었을 거라는 것도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때 나는 아이들의 환경이 어땠는지, 그 친구가 잘 살았는지 아닌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다른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무뎠을 수도 있고, 그때의 아이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친구'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역시, 나만 몰랐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12살의 나는 마냥 좋았다.
게다가 새로 사귄 친구들이 너무 좋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사귄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그중 두 친구는 내 결혼식 축가를 불러 주었다.)
이 소설 『피구왕 서영』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예전의 '나'를 나의 친구들을 그 시절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몇몇의 기억들, 아이들, 그때의 분위기가 소설 속의 아이들과 자꾸 비교되기도 하고,
달라졌구나, 뭔가 다르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계급 같은 것들.
부유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그걸 구분 짓거나 자연스럽게 비슷한 아이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은근히(어쩌면 대놓고) 왕따를 시키는 모습.
소설이지만, 어쩐지 적나라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발야구를 즐겨했다. 피구처럼 바로 상대를 공으로 맞춰 아웃시키는 건 아니지만 발야구 역시 공을 발로 힘껏 차고 죽지 않아서 1루로, 다시 2루로 전진할 수 있는 경기라는 점에서 피구와 비슷했구나 싶다.
그때 그 경기를 주도한 누군가 있었던가, 이기고 지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던가 더듬더듬 기억을 떠올려 봤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희미해졌지만, 적어도 누군가(어쩐지 잘 나가는 아이)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이끌거나, 마지못해 장단을 맞추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랬다면 나 역시 그 시절이, 그때의 기억이 이렇게 좋게 남아있을 리가 없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것에 민감하다. 어릴 때부터 보통의 모습과 다른 아이가 눈에 띄면 일단 경계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집단에서 희생양으로 삼을 이유가 되고, 교실의 질서가 유지되는 데는 항상 희생양이 한 명쯤 필요했다. 윤정도 그런 희생양 중 하나인 듯했다. p65
다른 것을 그냥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사회가 진짜 힘든 것일까.
아이들에게, 아직 아이인 아이들에게조차 다른 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가르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담보될 수 있을까.
혹여나 역시 무의식 중에 나의 아이에게 다름을 불편한 것, 틀린 것, 아닌 것으로 구분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어쩌면 지금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서 어쩐지 좀 무서워졌다.
그래서 서영이 그냥 재미있게 피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속상해하는 그 모습이 짠하고 안타까웠다.
그냥 피구는 피구.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누가 만들어 줘야 할까.
"서영아, 왜 그래? 아까 현지 때문에 그래?""아니야. 오늘은 피구 재미있게 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서."윤정이 서영의 심란한 얼굴을 바로 읽고 물었고 서영은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어차피 윤정에게 말을 건 그 순간부터 이런 일은 각오한 터였다 오늘에서야 그 순간이 와서 차라리 시원하기까지 했다. 다만 오늘도 즐거운 피구를 하지 못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런 식으로라면 곧 피구가 싫어질 것만 같아 그게 큰일이었다. 피구만 생각하면 분명 재미있었다. 피구는 죄가 없다. 즐거운 피구 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문제다. p117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피구왕 서영』을 포함해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소설의 각기 다른 사람,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 친구, 타인 결국 살아가면서 관계 맺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만나고, 만들어 가는 관계가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의도와 다르게 달라질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게 했다.
단연 「피구왕 서영」이 가장 좋았지만 그 외에도 「물 건너기 프로젝트」와 「알레르기」도 좋았다.
특히 사람에 대한 알레르기 항원으로 고생하는 대한민국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 「알레르기」는 재미도 있었지만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진짜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사람 알레르기 항원 때문에 고생하던 많은 대한민국 회원들은 여전히 매일 알레르기 반응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유인물에 인쇄된 몇 가지 물렁물렁한 대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신종 유형의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하소연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리의 범지구적인 연대가 성공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없다. 그래도 많은 회원이 협회를 탈퇴하지 않고 남아 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회원들 모두 미약하게나마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알레르기> 중에서, p226
<<피구왕 서영>> / 저자 황유미 / 출판 빌리버튼 / 발매 2019.01.23.
덧붙임
1. 이 소설은 처음에 독립출판물로 만들어졌다가 입소문을 타고 다시 출판이 되었다고 했다.
어쩐지 무척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은 좋은 소설을 읽고, 알리고, 가려낼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인 것이다.
2. 저자는 이 소설들이 한 편의 반성문이라고 적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괜찮은 척하며 어떻게든 안전하게만 넘어가려 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집단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든 개인, 동지들에게 이 반성문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어쩐지 더 멋있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반성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일. 멋지지 않은가.
3. 가볍게 술술 잘 읽힌다. 그런데 가볍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휴대폰 대신 이 책 한 권 옆에 끼고 나서보라고 슬쩍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