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경 <<혼자의 가정식>>을 읽는 밤
나에게 집 밥은,
엄마의 손맛도 아니었고, 포근하고 다정한 느낌도 아니었다.
그냥 먹는 밥. 집에서 먹는 밥 정도였달까.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내가 하는 음식을 누군가에게 먹이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낀 건
자취를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시작된 연애 때문이었다.
그 역시 자취를 하는 사람이었던지라,
그리고 밥은 그냥 허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햇반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을 즐겨 먹는 사람이었다.
늘 밖에서 사 먹는 것도 질리고,
집에서 늘 햇반만 먹는 것도 싫어서 한두 번쯤 서로의 자취방을 오가며 이런저런 요리를 하다가
아, 나는 이렇게 요리를 해서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도 또 깨달은 한 가지는,
내게 집 밥은 엄마의 손맛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늘 손 크게 음식을 하던 엄마의 그 손맛을 나는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구나.
엄마가 해준 음식의 맛이 내가 맞추는 간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그게 맛있었다.
어쩌면 그 이후 내게 집 밥은 엄마의 손맛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또 포근하고 다정한 느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두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신랑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내가 하는 수고 중 가장 즐겁고 기쁜 수고가 되었다.
언젠가 예윤이가 말했다.
"엄마는 나중에 커서 요리사가 되면 어때?"
하하, 나중에 커서? 얼마나 더 커서?
그만큼 아이에게 엄마의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괜히 행복해지기도 했다.
난 혼자 어디서든 밥을 잘 먹는다.
식당에 들어가 혼자 먹는 밥도 좋아한다.
아쉬운 거라면, 지금은 두 아이들을 두고 그럴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퇴근을 하고 늦더라도 저녁만큼은 집에서 해서 먹으려고 노력하고,
식단을 짜고, 장을 보는 일들이
내게는 참 소중하고 즐거운 일상 중 하나다.
물론,
내가 해서 먹는, 해서 먹이는 음식들이 '건강식'에 가깝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크지만.
행복은 소소하게 느끼는 거라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를 안다. 조금 음산하게 비가 내리는 날, 필요한 물건만 남긴 공간의 가장 포근한 부엌에 서 있다. 나는 스산한 날씨에 어울리는 따뜻한 국물 요리를 만들 참이다. 국그릇에 한 번 먹을 정도의 물 양을 채운 다음 아주 작은 냄비에 붓고 시골 장터에서 사 온 건새우를 한 움큼 넣는다. 그다음에 물이 끓으면 썰어 놓은 양파, 표고버섯을 넣어 끓인다. 조금 더 끓었다 싶으면 소금 간을 살짝 하고, 마지막에 들깻가루 4큰술을 넣어 잘 섞어준 다음 불을 끈다. 빠르게 완성한 들깨 표고버섯 국은 느끼한 뒷맛이 없어 마지막 국물까지 모조리 마시고 싶을 만큼 좋다.
- <1인분의 요리 일상> 중에서, p26
내가 하는 요리의 대부분은 2.5인분. 성인 부부와 여덟 살, 두 살 아이가 있는 식사량으로 적당한 건 딱 2.5인분이었다.
1인분의 요리는 아니지만, 어쩐지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랄까. 아마 나 역시, (물론 우리 집 부엌은 필요한, 필요하지 않은 온갖 것들이 있지만) 아이들이 있는 집 안의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할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이 아닐까.
내가 추운 날, 마음이 스산한 날 자주 끓이는 건 미소된장국이다.
미소 된장을 개어 끓이다 두부를 썰어 넣고, 팽이버섯을 조금 다듬어 넣고, 마지막에 파를 살짝 올리는 간단한 요리지만 아이도 좋아하고, 간도 심심해서 그냥 후루룩 마실 때 어쩐지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라는 것만 빼면 '나'의 마음과 너무 비슷함이 많이 느껴져서 좋았다.
저자의 전 작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를 읽으면서 글이 어쩐지 참 단정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전 작보다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단정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느꼈달까.
저자 역시 처음부터 건강한 식사를, 정성스러운 식사를 챙기던 사람은 아니었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듯 뒤죽박죽인 식사가 일상이었다. 그러다 아프고 난 뒤 식사에, 먹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의 건강 상태가 나쁜 건 유전도 지병아 아닌 잘못된 식습관을 유지한 자신의 탓이라고 느낀 뒤에 말이다.
저자는 이제,
패스트푸드는 절대 먹지 않는다. 가공된 식품의 섭취도 되도록 삼가고 있다.
먹을 만큼의 양을 하고,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한다.
그 사이 건강을 되찾았고, 집에서 먹는 밥의 소중함을 알았다.
혼자 먹는 음식도 충분히 정성스럽게 챙겨 먹을 가치가 있다는 걸, 먹는 일이 누구에게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일일 수 있겠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꼈다.
부엌은 부지런함을 배우고, 또 계속 단련하는 곳. 능동적으로 활기차게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래서 아마 죽는 날까지 나는 나의 작은 부엌에서 쉼 없이 움직일 거다. 어떤 날은 일에 너무 지쳐 신경 써서 건강하게 만들었다는 반조리 식품을 데워서 먹는 한이 있더라도 밥은 즉석밥 말고 집에서 갓 지은 뜨근한 밥을, 넉넉하게 곁들인 채소도 인지 않는다. 바쁘다고 끼니를 소홀히 하지 않고 조금의 온기와 정성을 더해 차린 나를 위한 밥상은 자신을 소중하게 보살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배려다. 하루 동안 고생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따뜻함. 그러니 자신에게 말로만 수고했다 하지 않고 그런 응원을 느낄 수 있는 행동 하나를 더하는 하루가 되길.
- <1인분의 요리 일상> 중에서, p27
이 책을 읽으면서 '부엌'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더 좋아졌다.
주방, 키친 이런 단어 말고 '부엌'하고 발음하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앞으로 주방이나 키친 이란 말 말고 꼭 '부엌'이라고 발음해야지 생각했다.
예전에는 몰랐던 충만한 기분.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아늑하고 미리 준비되어 있을 때 느끼는 안정감이 좋다. 포근한 온도의 침구, 샤워 후 쓰는 깨끗한 수건, 외출 중에는 마스크와 손을 닦을 손수건을 에코백 안에 챙겼기에 느끼는 보호받는 기분. 그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은 일은 내일 먹을 아침 식사가 냉장고에 있을 때다. 미리 준비해 둔 덕분에 허둥지둥 서두르지 않는 아침을 보내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여유롭고 차분한 기분으로 늘 살아가고 싶다. 약속 시각에 늦고 싶지도, 마감 기한에 쫓기면서 일하기보다 늘 앞서 해두고 싶다. 조바심을 내다보면 스트레스를 곧잘 받았고, 무슨 일이든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비할 수 있는 심적 여유는 시간에서 나왔다. 그래서 미리 해두는 나의 습관에 기댄다. 언제나 조금씩만 미리 하기. 가까운 미래의 내가 미루지 않도록 약간의 시작, 발판만 다져둔다.
- <이상적인 부엌 일과표> 중에서, p84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가장 취약점은,
오늘의 일을 자주 내일로 미루는 것. 닥쳐야 잘하는 것. 아직은 여유가 많다고 느긋하다 닥치면 으악! 하며 분주해지고, 조급 해지는 것.
그건 일에서도 종종 드러나는 나의 성격이다.
미리미리 챙기는 일이 나는 참 어렵다.
잠들기 전에 미리 아침을 준비해야지, 하는 생각을 참 오래, 자주 했는데
두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면 '내일' 따위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오늘은 끝! 하고 손들어 버리고 싶어 진다.
뭔가, 더 간소하게 안 될까.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먹는 것도, 쓰는 재료도, 쓰는 그릇도 좀 더 간소하게, 가볍게 말이다.
내가 매번 실패하면서도 매번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고 꿈꾸는 이유는 아마 바로 거기에 있다.
일상도, 시간도, 삶도 좀 더,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간소하게 만들어 가고 싶다는 바람.
책 속엔 요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전 작에 이어 저자가 실천하고 있는 절약과 간소한 생활습관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서 읽으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 또 불끈!
의지를 다졌다지.
그래, 미니멀하게!!
책 『리추얼』에서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성격이 마흔에 이르러야 완성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 성격이란 마흔이 되어 형성된 기본적인 삶의 규칙들과 좌우명을 평생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마흔이 얼마 남지 않은 나 또한 과거에 나를 불행하게 했던 습관으로부터 하나씩 멀어지고, 내 몸과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평생 가져갈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들 때 내적 성장을 느낀다.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중요하다. 살아 있기에 자라나는 건 식물도, 사람도 마찬가지. 성장은 건강하다는 증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살면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바꾸고 싶어 조금의 수고를 들일 때마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리고 성공이든 실패든 얻는 게 생긴다. 미리 준비해서 먹는 식생활은 메뉴 선택 스트레스를 사라지게 했고, 식비를 절약해줬다. 아주 사소한 변화인데, 생활이 여러모로 윤택해진다. 이 모든 변화는 다가오는 미래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내게 준 선물이다.
- <밀프렙, 밑반찬 그리고 덮밥> 중에서, p178
아, 올해 꼭 마흔이 된 나는 이미 성격이 완성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이 미루는 성격이, 우유부단한,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성격이 유지될 거란 건가, 생각하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내 바꾸고 싶은 나의 성격 중 일부분은 천천히 고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늦지 않았을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 내일부터는 장을 보고 오면 마구잡이로 냉장고에 욱여넣고 내일, 내일 정리해야지 하는 것부터 고쳐보리라 다짐한다. 아, 될까.
그리고 기억해두고 싶었던 이 책의 에필로그 중 한 부분.
저자가 피곤한 날, 밥 차리기 귀찮아서 대충 먹고 말지 고민할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정해 두었다는 몇 가지 기본.
1. 사 먹을까 고민될 때 그냥 쌀을 씻자.
- 집밥 일관성이 생기면 외식 욕구가 점점 희미해진다.
2. 외식은 친구를 만날 때, 혼자서는 집밥(내 경우, 외식은 친구 혹은 손님들을 대접할 때, 식구들과는 집밥)
- 식당에서 혼밥이 싫어서가 아니라(사 먹는 밥이 싫어서가 아니라) 집밥이 좋아서다.
3. 포장, 배달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만드는 편이 빠르다.
- 뒷정리는 포장 음식을 먹고 나서도 해야 하는 법(이 문장은 꼭 외워둬야지)
4. 간단한 요리법을 한 달에 2~3가지는 배운다.
- 일 년이면 최소 24가지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5. 부엌을 명상과 자기 수행의 공간으로 삼는다.
- 채소를 다듬는 단순노동이 머리를 맑게 해 준다.
<<혼자의 가정식>> / 저자 신미경 / 출판 뜻밖 / 발매 2019.09.19.
덧붙임
1.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평범하게만 보이는 일상을 지키는 일임을 알게 된다'라는 문장도 기억하고 싶다.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결국 나의 일생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에.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는 저자의 말 역시 마음에 고이 담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