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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안간힘

- 유병록 <<안간힘>>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치욕'이라는 단어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 나는 '치욕스럽다'라는 표현을 나 스스로에 하게 될까.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되는 어떤 감정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일이 어렵고, 두렵고, 힘들었으나 기어코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붙잡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한 편의 글을 읽고 멈춤, 또 한 편의 글을 읽고 멈춤, 단번에 읽어내기엔 어쩐지 미안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읽어버리기엔 너무 아파서.


그날은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장소는 장례식장 앞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방긋 웃던 아들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저녁이었다. 아들은 온기를 잃고 장례식장 안에 누워 있었고, 나는 누나가 사 온 죽을 먹고 있었다. 그것은 치욕이었다. 아들을 잃고 무언가를 입에 넣는다는 게 그렇게 치욕스러울 수 없었다. 그러나 뭐라도 먹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오늘내일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 뭐라도 먹고 힘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꾸역꾸역 죽을 입속에 넣었다. - <치욕의 힘으로> 중에서, p16


죽을 먹고 나서는 끓어오르는 슬픔과 끓어 넘치는 치욕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때 담배 생각이 났다. 곁에 있던 매형에게 담배를 한 대 달라고 했다. 끊은 지 몇 년 된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중략) 그 거대한 슬픔이 담배 따위로 다소간이라도 줄어든다는 게, 그 거대한 슬픔을 견디지 못해서 결국 담배의 힘을 빌린다는 게 치욕스러웠다. 그러나 연이어 담배를 피웠다. 참을 수가 없었다. p17


밤이 이슥해지고 나니, 주변에서 한숨이라도 자야 한다고 조언했다. 잠이라니. 아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잠을 자라니. 그러나 내일 아들을 화장하고 산에 뿌리려면 아빠가 한숨이라도 자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장례식장 한구석에 눕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천장을 바라보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다가,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잔다는 게 당최 말이 되는가 생각했다. 치욕스러웠다.


새벽녘, 나는 구석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역시나 주변에서는 뭐라도 입에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도저히 무엇을 먹을 자신이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컵라면을 먹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라면을 먹지 않는다면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상황에서 배가 고파질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도 했다. p17


그렇다. 나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하루 반나절 동안 무려 세 끼를 챙겨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치욕스럽다. 아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주변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한 끼도 먹지 않고 식음을 전폐했다면 어땠을까. 치욕스러움이야 덜했겠다. 그러나 그 거대한 슬픔을 내보일 힘을 끝내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치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p20


준현.

아들의 이름이다.

높고 어질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 이제 그 이름을 가졌던 아들이 이 세상에 없음을, 아들이 떠난 세상을 살아가는 아빠의 마음을, 세상에 없지만 그 이름이 그대로 잊히게 둘 수 없다고, 그 이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겠다고. 아들 대신 높고 어질게 아들의 이름으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말을,


한 자 한 자 마음에 담는다.


그 마음을 나누어 갖는다. 그것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저자의 책을 읽기 전, 그러고 보니 딱 작년 이맘때쯤 미지 작가의 『네 컵은 네가 씻어』라는 책을 읽었다.

20개월 된 아들을 내인성급사로 떠나보낸 뒤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엄마로, 여자로, 사람으로 살아낸 시간에 대해 적은 글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은 뒤 아들을 떠나보낸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누군가의 절대적 슬픔 앞에 이해한다는 말은 얼마나 오만인가.


그 뒤 시간이 흘러 그 아이의 아빠, 시인 유병록이 쓴 『안간힘』이라는 책을 다시 만났다.

지금 내 옆에 딱 20개월을 채운 둘째 아이가 자고 있다.

기어이 나는, 이 책 속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참는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의 슬픔을 이해한다 말할 수 없지만, 어쩐지 그 슬픔이 내 마음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시인이 말하는 '치욕'의 시간들, 순간들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언젠가는 아들과 함께 살았던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슬픔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슬픔은 얼른 벗어나야 할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더 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기분은, 특히나 슬픔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서야 물러선다. 필요한 만큼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든 여전히 슬픔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바에야 오히려 슬픔의 흔적이 가득한 곳에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살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구태여 슬픔의 공간에서 일찍 벗어나려고 애쓰지는 않기로 했다.
- <슬픔과 함께> 중에서, p58


나는 아들을 잃었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제 행복한 날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행복 대신 보람이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약속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죽음과 함께 살아왔다. 어쩌면 죽음의 힘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안간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간힘마저 없었다면......
- <더 나은 사람> 중에서, 201



책 속의 이야기 중 아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시인이 살아오면서 느낀 관계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대부분 공감되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읽지 않으려고 했던 독자로서의 내 마음과,

소중한 사람을 잃은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었던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이, 내겐 참 소중한 것이어서

그 느낌 때문에 나 역시 조금 더 나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져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시인의 말을 꾹꾹 눌러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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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 / 저자 유병록 / 출판 미디어 창비 / 발매 2019.11.08.



덧붙임


1. 잠깐 언급한 미지 작가의 『네 컵은 네가 씻어』는 다시 찾아 읽었다.

혹시 궁금할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

https://poohcey.blog.me/221414958065


2. 시인의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를 읽으면서

"유병록 시인의 시들은, 몸속의 세포들을 간지럼 태우는 느낌이었다.

오롯이 몸에 새겨진 어떤 각인들을, 숨어 있는 그 흔적들을 하나씩 건드리는 느낌. "이라는 리뷰를 적었었다.

다시 찾아 읽는 시인의 시도 함께 남겨둔다.

https://poohcey.blog.me/22138438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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