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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도 Apr 26. 2023

[수집 일기] 2023년 4월 24일

Alvar Aalto Office Chair 1941 발견!

이따금 수집가가 이뤄낼 수 있는 가장 큰 업적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 업적이라고 하긴 조금 거창할 수도 있으니, 만족이라고 해보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어떤 전시를 위해 개인 소장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작가를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미술품 혹은 가구 한 점을 자신의 수집품 중에 제공할 수 있다면 그런 기쁨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수집품을 차곡차곡 모아 조촐한 전시라도 여는 것이다. 자신의 수집품만으로 크진 않아도 어떤 이야기를 한 공간에 구성할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수집해 온 역사가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로는 책을 내는 것이다. 수집품들의 사진을 찍은 사진집이라면 너무 조촐해질 수도 있으니, 그런 경우라면 가능성이 있는 책은 수집품에 대한 정보를 곁들인 수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페르티 매니스토(Pertti Männistö)는 가장 잘 알려진 알토 디자인 수집가 중 한 명이자 내가 생각하는 수집가의 목표를 모두 이뤄낸 사람이다. 그는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자신의 알토 디자인 수집품으로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 ‘AALTO DESIGN COLLECTION’을 펴냈고, 출간한 지난 2022년 하반기에는 Taidehalli라는 헬싱키의 비영리 전시 공간에서 자신의 수집품으로 구성한 전시도 진행했다. 물론, 이는 그의 첫 전시는 아니다. 그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약 26회의 크고 작은 전시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오늘 갑자기 그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수집품 목록에 있었던 한 의자가 일본의 빈티지 샵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너무 놀란 나는 최대한 빨리 메시지를 보내서 홀드 시키고, 샬롯 페리앙의 베르가 스툴 위에 전시해 놓았던 페르티 매니스토의 책을 꺼내 들었다. ‘분명히 봤는데’를 몇 번은 중얼거리며 의자 파트를 열심히 뒤적거렸고, 그 결과 별다른 번호는 따로 없는 ‘Alvar Aalto Office Chair 1941’을 찾을 수 있었다. 69번 의자와 비슷해 보이지만 등받이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모델이어서 희소성이 있고, 이 오피스용 의자는 투르쿠(Turku)의 도자기 공장에서 사용했었다는 출처 정보가 있어 더욱이 소장 가치가 있는 제품이었다.


다만, 흥분이 차올라도 볼 건 봐야 하기에. 가격 정보와 물류비를 문의하면서 추가 사진을 요청했는데,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30년대 초반에 생산된 스툴이나 의자도 잘 관리된 경우가 많은데, 이 오피스용 의자는 낡디낡아 그 빛을 다 잃어가고 있었다. 의자로서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L-leg의 나사 조임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고, 이 의자의 매력 포인트인 등받이의 높이 조절을 위한 슬릿(slit) 부분도 마치 누군가 손으로 거칠게 파 놓은 것처럼 그 정교함이 세월 속에 많이 닳아 있었다.


여러 차례 고민했지만, 가장 먼저 줄은 섰지만 내가 가져올 수는 없었다. 곧 도쿄의 모더니즘 쇼도 가봐야 하고 무엇보다 상태에 합당하지 않은 가격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조금 찾아보니 상세 사진으로 보내준 사진의 디테일이 Bukowskis에서 알토 125주년 기념 옥션을 진행할 때 올라왔던 제품과 동일했는데, 그때도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고, 특히 항간에는 Bukowskis에서 옥션을 진행하는 제품들의 상태가 사진보다도 썩 좋지 않다는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있었다.


저명한 수집가의 책에 담긴 뮤지엄 피스를 나도 한 번 안아보나 싶었지만, 이렇게 그냥 흘려보내게 되었다. 아쉽다면 못산 게 아쉽다기보다는 그 소중한 제품을 그 상태로 보관해 왔다는 게 아쉬웠다. 어쩌면 페르티 매니스토의 책이 나오고 나서 이때다 싶어서 시장에 누군가 내놓은 건 아닐지. 어찌 됐든, 한 번 시장에 물건이 나왔다면 언젠가 또 나올 것. 지금처럼 숨 쉬듯이 디깅하고 찾아볼 것이다.

(좌) Alvar Aalto Chair 69 1933-1935 / (우) Alvar Aalto Office Chair 1941 by Pertti Männist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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