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s 스툴60 (Stool60) 구입기
'코로나-19'라는 질병명이 있는지도 몰랐던 2019년 12월, 나는 갑작스러운 한겨울 북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연말이라 업무적으로 느슨해져 있는 시점이기도 했고, 따라서 갑자기 휴가를 가더라도 용납되던 때였으며, '차년도에 거대한 업무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다, 고로 지금 가야 한다.'라는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를 시전했다. 더불어 한창 집요해져 있었던 아르텍(Artek)의 나라를 가보려는 목적과 빈티지 아르텍이 흘러넘친다는 아르텍 세컨 사이클(Artek 2nd Cycle)에 가보려는 목적이 한겨울에 핀란드행을 결정하게 했다.
위와 같은 목적 때문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스톡홀름에서의 일정을 거쳐 헬싱키로 이동하기까지 큰 기대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대략 아래와 같은 허황한(?) 생각들을 했다.
1)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빈티지 아르텍, 알토 선생님 제품들을 볼 수 있겠지
2)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빈티지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겠지
3) 스툴 하나 정도는 무리 없이 사 올 수 있겠지
1번은 참이었다. 파이미오 요양원(Paimio Sanatorium)을 비롯해서 스튜디오 알토(Studio Aalto), 알토 하우스(Aalto House)에 다녀오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스톡홀름부터 헬싱키까지 알토 선생님의 가구가 세팅된 베뉴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빈티지를 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2, 3번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2번과 같이 생각한 이유는 아무래도 헬싱키가 '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출발하여 한국과 같은 곳으로 먼바다를 건너와야 하는 경우, 물류비 혹은 여타 이유로 인해 가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알토 선생님의 빈티지 제품들은 워낙 값어치가 있어서 물류비를 제외하더라도 저렴할 수는 없었다. 딱히 한국까지 건너오는 데 발생한 다양한 비용들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태닝 된 나무의 색이 돋보이는 빈티지 아르텍/알토 선생님 제품들은, 그 자체로 가치와 가격이 높았다.
그래서 아르텍 세컨 사이클(이하 세컨 사이클)을 처음 방문하고 구경했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서울까지 핸드 캐리할 것을 고려하면 부피가 큰 제품을 구매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상징성을 고려하여 스툴60(Stool60)을 구입하자고 마음의 결정을 했는데, 마음에 드는 제품은 가격이 예상을 웃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새 제품을 사면 되지 않나? 라는 나름의 합리적 사고가 이어지게 되는데, 나도 처음에는 갸웃했기 때문에 발걸음을 아르텍 매장으로 옮겼다. 다양한 색 중에 Honey Stain 버전이 내가 세컨 사이클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과 가장 유사했지만, 아무리 봐도 빈티지와 새 제품 사이에 느껴지는 간극이 있었다. 바로 옆에 두고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더 확실하고 빠르게 빈티지 제품을 골랐을 텐데, 그럴 수 없다 보니 아르텍과 세컨 사이클을 두세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이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몸이 고생한 덕분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던 것이라고 돌이켜본다.
그렇게 며칠간 몇 차례에 걸쳐 같은 스툴을 보러 세컨 사이클에 갔더니 직원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또 며칠 내내 고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구매를 결정했을 때는 좀 더 좋은 가격에 주고 싶은 마음을 내게 표현해줬다. 행운이었다. 헬싱키에 머무는 짧은 기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이 세컨 사이클에 방문하며 눈에 꽂힌 제품을 들었다 놨다, 앉아봤다 일어섰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한 보람이 있었다.
30년대, 그러니까 스툴60이 디자인 된 1933년도에서 멀지 않은 그 시절에 제작된 스툴을 이렇게 구매했다. 무려 나보다 50년 이상 더 사신 어르신, 하지만 관리가 매우 잘되어 있는. 오래된 나무 가구, 특히 이 자작나무 소재의 제품에서 느낄 수 있는 파티나(Patina)는 그 어떤 새 제품과도 비교 불가했다. 아르텍 디자인이라는 스탬프가 없어도 선명하게 살아있는 L-leg의 디자인과 상판의 핑거 조인트 결합이 그 모든 걸 보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