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라는 섬,
그리고 유물과 유적지

춘천 중도 유적지

by 풀솜

화천군을 거쳐 남류하던 북한강은 소양강과 춘천에서 만난다. 물은 가평 청평을 거쳐 양평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만난다. 두물머리라고도 불리는 양수리 넓은 물길은 경관도 아름답지만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이다. 물은 팔당댐을 거쳐 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관통한다. 이 강이 한강이다.


북한강물은 우리나라 중부지방을 동에서 서로 흐른다. 동고서저의 지형상 동쪽 산지의 토사가 빠른 물살을 타고 내려오다 평지에서 물살이 느려지면 물에 있던 이물질이 가라앉는다. 북한강과 소양강에서 흘러 내려온 토사가 쌓여 비옥한 충적지대를 형성하였다. 이곳에 발달한 도시가 춘천이다.


춘천의 북한강 가는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자연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주변에는 아름답고 높은 산과 맑고 깨끗한 많은 물, 평평하고 비옥한 넓은 땅이 구비된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이곳에는 사람이 살았다. 예족의 평화로운 땅이었던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힘을 겨루는 각축장이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물길은 훌륭한 교통수단이었다. 북한강 내 큰 거점도시인 춘천은 원래 가항 종점에 있어서 조선초기에는 소양강창을 두고 북한강 유역의 세곡물을 수집 운반하는 물자 집산지였다. 춘천에서 수집된 많은 물자들이 한강을 거쳐 수도권으로 이동하는데 북한강 물길은 주요했다.


북한강은 유량이 풍부해서 댐 건설에 유리하다. 일제 말 청평댐의 건설로 배의 운항이 막혀있다. 1960년대 의암댐이 건설되었다. 이밖에도 북한강 줄기에는 화천 춘천 청평댐이 있다. 의암댐의 건설은 춘천을 물의 도시로 만들었다. 물의 양이 많아지면서 비옥한 충적토였던 북한강가 얕은 곳은 물에 잠겼고 높은 곳은 섬으로 남았다. 춘천에는 위쪽부터 고구마섬 상중도 하중도 붕어섬 등 여러 개의 섬이 생기게 되었다. 보통 춘천의 중도라 하면 상중도와 하중도를 합하여 일컫는다.




중도에서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 유물까지 선사시대 유물과 유적이 다수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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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시설은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청동기 시대 초기 유적 가운데 하나이며, 중기와 후기에 해당하는 비파형 동검, 고인돌, 환호 등은 중국 동북 지역 및 서북한 지역의 고조선 문화와 관련되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중도식 토기 또는 중도식민무늬토기와 여자형 또는 철자형 평면을 한 집터, 돌무지무덤 등으로 알려져 있던 원삼국 ~ 한성백제 시기의 중도 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참조)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남방식고인돌 돌무지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며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고인돌 외에도 많은 민무늬토기 산포지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섬의 서쪽가에서 발견되었다.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유적과는 달리 섬의 동안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집터와 돌무지무덤(積石塚)이 발굴 조사되었다. 집터는 2기가 조사되었다. 초기 철기시대 집터는 그 안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고찰에서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돌무지무덤은 중도의 동남 모서리 부분에 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쌍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도에서는 청동기 후기의 돌무지식 고인돌에서 원삼국시대의 대형 돌무지무덤으로 이어지는 분묘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이런 대형 분묘의 존재는 중도를 포함한 춘천지역이 일찍부터 북한강 일대의 중심지역이 되어 이 지방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여, 이를 기반으로 초기 국가로 형성되는 밑받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 유적이나 유물 유구는 실증적 자료다.


우리나라는 현재 남북이 분단상태에 있어 고구려 발해 역사는 거의 연구할 자료가 없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도난 빼앗긴 역사자료는 얼마나 많은가? 중도유적지는 한반도의 역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춘천의 중도에서 많은 유물 유적이 발견되었다.




1981년 일본에서 한 아마추어 고고학자에 의해 4만 년 전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으나 그것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렇다 할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구석기시대를 인정받지 못한 일본 사람들은 일본 열도에도 구석기가 존재했다는 것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이후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 고고학계는 학문적 신뢰가 추락하는 일을 겪었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 구석기 이전 시기가 있을 리 없다는 일본학자의 주장이 있었으나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을 비롯해서 공주 석장리 경기도 연천 전곡리 등 다수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가 존재했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전곡리 구석기는 그렉 보웬이라는 미군에 의해 발견되었고 세계적인 고고학자들이 찾아와 검증하고 연구한 뒤 증명하여 조작의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이 사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역사는 유물이나 유적에 의해 결정된다. 한 국가의 역사는 공간적인 확대가 중요한 만큼 시간적인 확대 또한 중요하다. 구석기 유물이나 유적의 발굴로 한반도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춘천 중도에서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시설은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유물과 유적의 발굴은 한 국가의 시대를 확대하는 힘이 있다. 영토의 확장이 공간적인 확장이라면 유물 유적의 발굴은 시간적인 확장이다. 중도 유적으로 인해 우리 춘천시민은 사유는 선사시대까지 올라갔다. 선사시대를 공부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생각을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코 앞에 닥친 일로 허겁지겁 사는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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