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 1
연탄불 위 뚝배기에는 항상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밖에서 돌아오면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해서 더 배가 고팠다. 엄마는 언제 올지 모르는 식구들을 위해 항상 음식을 준비해 놓으셨다. 특별한 재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된장찌개는 편하고도 흔한 아이템이다.
엄마의 요리는 쉽다. 뚝배기에 감자나 호박에 숭덩숭덩 썬 두부 몇 조각에 된장을 풀어 끓인 것이다. 지금과 같이 고기도 흔하지 않았고 맛을 내는 조미료도 없었다. 하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된장찌개가 처음에는 국물이 묽고 맑지만 점점 진득하니 농도가 진해진다. 연탄불 위에 덮개로 불조절을 하며 뭉근하게 끓이면 그 맛은 더욱 깊어진다.
어릴 때 먹었던 엄마의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배를 채우기 전에 마음을 먼저 채운다. 비싸고 화려한 음식이 널려 있지만 마음까지 채워주는 음식은 그리 흔치 않다. 엄마 음식이 그리운 이유다. 외국에 나가거나 타지에 오래 살다 보면 엄마 음식이 더욱 생각난다. 우리네 엄다들은 장으로 맛을 냈다.
텔레비전 유명인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놀랐다. 젊은이들은 장맛을 모른다. 집에서 담근 그 칼칼하고 달달한 장맛을 설탕이 대신하고 있었다. 대부분 집에서 장을 담그지 않는다. 가공식품이 발달하고 서양요리나 퓨전요리가 대세인 요즘 우리나라 전통장이 뭐 그리 필요하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내려온 건강한 음식인 전통장을 먹고 싶어 하고 더 나아가 여건이 되면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의식주 가운데 가장 오래 남는 것이 맛이다. 음식은 어릴 때 먹었던 것을 커서도 찾게 된다. 어릴 때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을 먹으면 커서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전통 장으로 만든 음식을 먹었던 우리 세대보다 지금 세대에게서 성인병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전통장은 숙성 시간을 거쳐야 한다. 장을 담아 숙성하는 동안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장독대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여러 가지 편리하지만 장독대를 놓을 공간이 없다. 자연히 숙성 시간을 거치지 않고 공장에서 가공된 장으로 먹거리를 대신한다.
햇볕을 보아야 숙성하는 우리의 장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장맛도 사라지고 있다. 가끔 음식점이나 종갓집 장맛을 소개하는 프로도 있지만 매일 먹을 수 없다. 이미 집에서 담근 장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매일 먹는 음식은 구하기 쉽고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장은 다른 식재료에 비해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다. 음력 정월 장을 담그면 몇 년을 먹을 수 있다. 잘 숙성된 오래된 장은 깊은 맛이 더하다. 냉장고에 있는 호박 감자 두부 등을 냄비에 넣고 장독대에 가서 장을 떠다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끝이다. 음식의 맛과 간은 장이 해결해 준다.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집에서 담근 장을 이용한 음식이다.
집이라는 생활공간에서 장독대가 사라진 것은 더 이상 장을 담그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장을 먹어보지 않고 자란 젊은 세대는 장맛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건강하면서도 경제적이고 만들기 쉬운 식재료
우리의 마음까지 위로해 주었던 음식이 우리의 장이다.
K - 음식에 우리의 장문화가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정원 한편에서 자리하는 예쁜 장독대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