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 2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의식주 가운데 식을 담당하는 곳은 부엌 텃밭 그리고 장독대가 있다. 텃밭은 음식의 재료를 키우는 곳이고 부엌이 직접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면 장독대는 음식을 저장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음식은 대부분 발효음식이다. 발효음식은 발효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장을 보관하고 긴 시간의 숙성 시간을 견디는 곳이 장독대다.
우리 음식은 장이 맛과 영양을 결정한다. 장은 간장 된장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파생된 장은 지방마다 가문마다 셀 수없이 많다.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독대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음식을 담을 용기 즉 옹기가 놓이는 곳이다.
장은 간장 된장 고추장이 기본이다. 간장 된장은 메주를 소금물에 띄워 일정 시간이 지나야 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서 건더기인 메주를 건져 으깨서 항아리에 담아 보관한 것이 된장이고 메주를 건져내고 남은 물이 간장이다. 간장과 된장은 같은 장류라 볼 수 있다.
고추장은 조금 다르다. 엿기름 즉 보리의 싹을 띄어 곱게 갈아 물을 넣어 거르면 엿기름 물이 된다. 이 물을 끓여 보리나 밀가루 찹쌀가루 등을 삭힌다. 이렇게 녹말 삭힌 물에 메주가루와 고운 고춧가루를 넣고 섞은 것이 고추장이다. 이때 보리를 넣으면 보리고추장, 찹쌀을 넣으면 찹쌀고추장이다. 요즘은 밀가루는 물론 토마토나 마늘 등 몸에 좋은 재료를 넣어 맛과 영양이 탁월한 고추장을 담는 것이 유행이다.
장을 담는 방법은 지방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장류가 발효음식이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발효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장을 담그는 과정은 어느 집이나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발효의 과정을 거친 맛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 발효과정에서 햇볕의 양을 결정하는 기후와 날씨는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주는 것은 주부의 정성이다. 발효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그 장만이 알 수 있다. 기온이나 날씨 햇빛 등 자연의 힘으로 장맛은 달라진다. 주부들은 집안 식구들의 입맛과 건강을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언제나 장독대를 소중히 여기고 정갈하면서 깨끗하게 관리하고자 노력했다.
옛날에는 장독을 보고 그 집안을 평가하기도 하였다. 장독대가 정갈하고 번듯하며 가지런하고 윤이나면 흥하는 집안이라 여겼다. 멀쩡하던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도 변고가 생길 것이라 염려했다. 장독대를 보고 그 집 주부의 살림규모와 사람됨을 평가하기도 했다.
장독대는 위치를 정하는 것부터 중요하다. 동선을 고려해서 부엌 가까이 있으면 좋다. 대부분 한가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양지바른 뒤뜰 정갈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뒷동산 자락 산과 이어지는 뒤뜰에 자리하기도 하고 나지막한 담장 아래 두기도 한다. 뒤뜰이 마땅치 않은 곳에서는 우물이나 수돗가 가까이 깨끗하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정한다. 장독대는 잡석이나 제법 큰 돌로 한단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장독을 놓는다. 장독 뒤쪽은 산이나 담장이기 때문에 큰 독을 서너 혹은 네댓 개 뒤쪽에 놓고 그 앞줄에 중 두리 그 앞에 작은 항아리를 가지런히 놓는다.
장독의 모양은 지방마다 다르다. 경기 서울지방은 독이 넉넉하면서 미끈하게 생겼고 호남 영남의 장독은 어깨가 벌어지고 배가 불룩하여 풍만하며 크고 작은 소래기로 뚜껑을 덮는다. 이 소래기는 굽이 없는 접시와 비슷하다. 넓은 질그릇 모양이어서 그릇으로 쓰기도 한다. 이러한 장독이 무리 지어 있으면 장관이다. 가정집에서는 많이 사라졌지만 사찰이나 음식점에서 볼 수 있다.
장맛을 위해 장독대의 관리는 필수적이었다. 장독대에는 담장을 두루기도 한다. 장독은 부패균이 스며들지 않도록 항상 깨끗이 해야 한다. 이른 새벽 맑은 공기를 쐬게 하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볕을 쬐게 하며 매일 깨끗한 물로 장독을 씻고 맑은 공기와 적당한 햇볕을 쬐는 일은 장의 숙성에 도움이 되었다. 저장 중에 있을 수 있는 변질을 방지하는 데도 꼭 필요했다. 아무리 신경 써도 인력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장독대에는 많은 금기사항이 있다. 독에 명주실을 얼기설기 얽어 놓기도 하고 버선을 거꾸로 붙여 악귀의 침입을 막는 등 주술의 힘을 빌리기도 하였다.
장독대는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시월상달이면 장이 맛있게 해달라고 고사를 지냈다. 어머니들은 멀리 떠난 남편이나 아들 손자의 무운장구를 비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장독 위에 정화수를 놓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여인네들이 슬픈 일이나 마음이 허전할 때 말없이 장독을 만지고 닦으면서 마음을 달래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였다.
아이들에게는 장독대는 놀이 장소였다.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은 장독대 주변에서 술래잡기를 했다. 아이들은 장독 뒤에서 숨기도 하고 장독대를 돌며 도망치기도 하였다. 가끔은 장항아리 뚜껑을 깨는 바람에 어른들까지 큰 소리가 나기도 했다. 넓은 장독대의 한 옆은 여자아이들이 노는 공간이다. 주변 돌을 주어다 공기놀이도 하고 풀을 뜯어다 소꿉놀이도 하였다. 장독대 위는 햇볕이 좋아 먹거리를 말리기 좋았다. 고추나 나물을 채반에 널어 말리는 것은 장독대의 흔한 모습이다. 썰어 말리는 삶은 고구마는 아이들이 놀며 먹을 수 있는 좋은 간식거리였다.
한옥에서 양옥으로 가옥구조가 바뀌어 장독대는 옥상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대문 옆에 놓이기도 했다. 넓었던 장독대는 아주 좁은 공간으로 줄어들었다. 장은 소중한 먹거리이기 때문에 장을 담그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파트가 보급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공간도 공간이려니와 공동주택의 특성상 장의 독특한 냄새까지 용납할 수는 없었다. 아파트에서 베란다까지 사라진 지금은 집에서 장을 담그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가공식품 장을 먹으면서도 장독대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장독대의 풍경이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장맛이 그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