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당
보통 집을 지으려면 평평하게 땅을 고르고 건물을 짓는다. 서구의 건축양식을 받아들인 보통의 건물들은 건물이 중심이 되는 내부공간과 건물 이외의 외부공간으로 나뉜다. 한옥마당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한옥의 마당은 완전하게 외부공간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분명 내부공간은 아니다.
한옥의 마당은 건물에 의해 일단 구획되고 수목이나 지형의 단차에 의해 그 성격을 달리하기도 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위요 공간과 건물과 담장 사이의 위요 공간으로 분화된다. 마지막으로 담에 의해 외부 세계와 구분된다. 마당에 서 있으면 건물 담장에 의해 위요되기 때문에 아늑하고 편안하다. 개방공간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한옥에서 후원과 같은 개방공간도 나타나지만 이 역시 후면의 경사지나 수림에 의해 위요되기 때문에 완전 개방공간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옥에는 이러한 마당이 여러 개 존재한다. 각 마당은 공간의 용도에 따라 건물과 어울려 각각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한옥 마당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살림의 규모가 영세해서 건물 한 동만 있을 경우 건물과 담장 사이가 마당이 존재한다. 이 마당은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와 집 사이의 공간을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 공간은 평소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추수하는 가을철에는 마당에서 추수한 작물을 타작하기도 하고 타작한 곡물을 말리기도 하는 작업공간이 될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이 될 수 있고, 한편에 채소를 키우는 텃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이 여러 채가 지어지면 마당의 성격은 달라진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옥의 건물 배치를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한옥은 건물 한 채에 마당 하나를 갖고 있다. 평면의 발전이 극대화된 것이 이른바 99칸 집이다. 99칸 집은 사당채, 사랑채, 안채, 행랑채, 별당채, 고방채라는 6채로 구성되는데, 각 채에는 각각 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딸려 있어 이른바 여섯 마당집이 된다. 각 마당에는 평균 양쪽에 2개의 문이 있으니 열두대문집이 되는 것이다. 건물과 마당은 하나의 짝을 이루면서 단위공간을 형성한다. 예를 들면, 안채는 안마당, 사랑채는 사랑마당, 행랑채는 행랑 마당 등이다.
대문 밖 ↔ 바깥마당 행랑채 ↔ 행랑 마당 사랑채 ↔ 사랑마당
안채 ↔ 안마당 별당 ↔ 별당 마당 뒷동산 ↔ 뒷마당
마당은 주택의 입구부터 뒷마당에 이르기까지 각 건물과 연계되면서 일련의 순서에 따라 자리하게 된다. 99간 집의 바깥마당, 행랑 마당, 안마당, 사랑마당, 별당 마당, 뒷마당은 정원을 조영하는 일차적 틀이 된다.
한옥의 마당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 마당은 기능이 복합적이다.
마당은 본질적으로 장식과 꾸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텅 비어 있는 네모난 공간만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어린이들은 자치기 제기차기 땅뺏기 공놀이 술래잡기 등 갖가지 놀이를 하였으며 어른들은 함께 윷놀이 지신밟기 등 놀이를 하였고 추수 때 타작마당, 가을에는 고추나 무말랭이의 건조장 결혼식이 있으면 안마당은 식장으로 뒷마당은 음식을 만드는 작업장, 한 여름밤에는 야외 침실, 추운 겨울날 양지바른 담이나 처마 밑에 나와 앉아 따스한 햇빛을 즐겼다.
마당은 정해진 것이 없다. 바깥마당에는 소가 매어져 있기도 하고 사랑마당에는 나무 괴석 디딤돌 석산 등의 정원 요소도 있고 우물 장독대와 같은 생활기능과 관련된다. 강아지가 뛰놀고 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참새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들던 곳이 마당이다.
2. 마당은 답답하게 폐쇄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개방공간은 아니다.
한옥의 마당은 건물의 내부와 연장선상에 있다. 항시 열려 있는 개구부를 통해 발을 내리거나 문틈으로 혹은 담너머로 담 중간에 구멍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방과 방 사이 마당과 마당 사이 물리적으로 차단되지 않고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 조선시대 신분사회였다. 이와 같이 반투명한 공간들이 발달한 이유가 개방된 공간에서 특정 신분을 가진 사람은 그에 걸맞은 처신과 행동이 있고 출입구가 통제되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개방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터부와 심벌리즘이 복합되어 있고 통찰로만 감지되는 무수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라고 이규태는 말했다.
적당히 개방적이고 또한 적당히 폐쇄적인 마당은 시원한 외부 공기를 즐길 수 있는 개방감과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위요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공간이다.
3. 사적인 외부공간이다.
화려한 넓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화려한 조경에도 불구하고 요즘 아파트가 답답한 이유는 사적인 외부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베란다나 테라스는 그나마 시원한 외부공간을 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언제부턴가 베란다 확장이 유행하면서 도시의 주 주거형태로 자리한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자연의 공기를 마시기 쉽지 않다.
마당은 대표적인 사적인 외부공간이다. 꾸미지 않고 나갈 수 있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도 자연의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이 시대 아파트는 우리나라 도시의 중심적인 주거공간으로서 지역 간 시공업체 간 경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편리한 내부구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 자연이나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운 아름다운 정원....
하지만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으로서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사적으로 외부 공간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도시민의 거주문제를 해결해 주는 획기적인 주거형태다. 아파트가 고급화하고 안전하고 합리적인 주거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고 있다. 주거 문제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동네나 가격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접하면서 인간도 자연의 일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주거환경이 바람직하다. 폐쇄적이지 않고 안전한 한옥의 마당을 이 시대는 새롭게 해석해서 주거공간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