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정원 - 꽃밭(화단, 화오)
가끔 SNS에 새로 올라오는 지인의 사진들을 보게 된다. 여행 가서 찍은 풍광이 많고 손주 볼 나이여서 아기들 사진도 많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기나 동물과 같이 순수함을 지녔거나 인간이 개입되지 않은 자연을 좋아한다. 개인적인 경험인지 모르지만 5~60대 아줌마들은 꽃과 관련된 사진이 많다.
생일선물로 꽃다발을 받고 그 꽃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올리고, 키우던 화분에 꽃이 피면 이 또한 오래 보고 싶어 올리고,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꽃 한 송이도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사진 찍어 올리고, ** 꽃축제에 갔다가 꽃 한가운데서 꽃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올리고.....
젊은 시절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 입으신 꽃무늬 옷이 촌스럽게 보였다.
우리 엄마는 끝까지 세련되기를 바라며 "엄마는 늙어도 꽃무늬 옷 입지 마"라고 말했다.
9 순이 되신 어머니의 옷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으니 모두 꽃무늬 옷이었다. 옷에 꽃무늬가 있으면 화사하고 생동감 있어 보인다. 연세 드신 우리 엄마가 좀 더 환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화려한 옷을 골랐는데 모두 꽃무늬가 있는 옷이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 아줌마(?)들은 꽃을 좋아한다.
오늘은 전통한옥에서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꽃이 있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서양정원의 경우 정원에 꽃을 가득 심겨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나 서비스 공간을 제외하고 꽃으로 가득 찬 정원이 많다. 꽃밭 자체를 정원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정원에서 꽃은 주요한 소재다. 장미를 많이 심으면 장미정원, 백일홍이 가득한 백일홍정원, 수국을 가득 심어놓고 탐스런 수국을 감상할 수 있으면 수국정원....
한옥의 외부공간의 대부분은 마당이다. 한옥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정원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마당은 빈 공간이다. 마당 가운데 포인트로 꽃을 심는 경우도 있지만 마당이 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가운데를 비워 두어야 한다.
한옥에서 꽃을 심는 자리는 중심에서 밀려나 있다. 담 아래, 문의 양옆, 골목 가장자리, 우물가와 같이 마당이나 텃밭에 자리를 내어주고 남는 한적한 곳에 꽃을 심었다.
꽃밭을 한자어로 화단(花壇) 혹은 화오(花塢)라 불렀다.
화단 또는 화오는 높이가 얼마 되지 않게 만든 단이다. 식물은 자라려면 적당한 토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흙을 적당히 돋우고 식물을 심었다. 이 적당한 이라는 말속에는 흙 속에 공기층과 유기질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당의 흙과 화단의 흙은 다르다. 마당의 흙은 배수를 위해 마사토를 다져 딱딱하게 관리한다. 꽃밭의 흙은 식물이 자라기에 충분한 유기질이 풍부한 흙이어야 한다. 우리의 한옥에서 꽃밭은 담 아래 약간의 둔덕을 두고 봉숭아 맨드라미 분꽃나무와 같이 한해살이 씨를 뿌려 한 여름 피는 꽃을 즐겼고 우물가에는 숙근초를 심어 꽃을 즐겼다.
한옥에서 꽃밭이 공간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은데 사실 관리에 있어 최적이다.
우선 위치 선정이 최적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피해 심기 때문에 밟을 염려가 없다. 꽃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은데 오가다 걸리적거리면 불편하다. 담 아래 핀 꽃은 오다가다 항상 보지만 불편을 주지는 않는다. 문 옆에 핀 국화는 가을이면 들고날 때마다 보지만 오가면서 불편하지 않다.
정원을 직접 가꾸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원 가꾸기는 그리 만만한 취미가 아니다. 우선 식물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언제 심는지 언제 꽃이 피는지 언제 씨를 받아둬야 하는지 식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정원의 규모가 클 경우 할 일이 많다. 아침저녁 물을 주어야 하고 묵은 잎을 떼 주어야 하고 기온에 따라 식물마다 관리 방법도 다르다. 어떤 식물은 가을에 씨를 받아두었다 봄이 되면 뿌리고 어떤 식물은 알뿌리를 캐서 얼지 않게 보관해 두었다 봄에 심어야 한다.
우리 고유 수종은 기후나 지형에 적응이 된 그 지역에 적응된 자생종이다. 심는 방법도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심었다기보다는 작년에 떨어진 씨가 다음 해 나오고 겨울을 견딘 뿌리가 다음 해 봄 싹이 난다. 한옥에서 꽃밭은 정원을 가꾼다는 개념보다는 오래된 건물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정원관리에 물 주기는 중요하다. 아침마다 신경 써서 물을 주어야 하는 꽃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물가에 심은 꽃은 우물에서 채소를 씻다 수시로 물을 뿌려주고 오다가다 묵은 잎을 떼어준다. 문 옆의 노란 국화는 꽃이 지고 나면 줄기를 잘라주고 나면 뿌리가 살아 있어 봄이면 새싹이 올라온다.
담장 아래 봉숭아꽃은 소녀들의 손톱을 물들였고 있는 듯 없는 듯 피어있는 채송화꽃이 얼마나 한 여름을 아름답게 수놓았는지.... 우물가에 작약이 필 때 부인들의 마음을 얼마나 풍유로 왔는지.... 흙담장으로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은 담장 아래 꽃과 담장 위에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나라가 어려울 때는 담장 아래 무심히 피어있는 봉숭아꽃이 우리 민족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 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제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러운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일제강점기 담 아래 핀 봉숭아꽃을 보고 나라 잃은 우리의 처지와 슬픔을 이야기 한 노래다.
봉숭아꽃은 소녀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봉숭아꽃이 피면 소녀들은 손톱에 물을 들일 기대에 마음이 부풀게 된다. 그 기대가 실현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일제의 침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래는 일제 강점기 어려운 시절 우리 민족에게 위로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널리 불렸다. '화창스러운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로 끝을 맺는데 이는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가을꽃 축제가 한창이다. 요즘 꽃은 넓은 들판에 화려한 꽃이 끝없이 펼쳐진 꽃밭에서 꽃구경 사람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고 카톡에 올린다. 생일날 받은 꽃다발은 화려하고 예쁘다. 내 생일이라고 준비한 자식이나 지인의 마음을 생각하면 고맙고 행복하다.
요즘 사람들은 생활에서 꽃을 특별한 이벤트로 생각한다. 꽃이 아름답지만 꽃을 키울 공간이 없어서, 관리학 힘들어서 꽃이 멀어지고 다른 사람이 키운 꽃을 보는데 만족하고 있다. 내가 직접 물을 주고 키운 꽃은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크고 화려한 꽃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꽃이 주는 위로가 비싸고 귀한 외래 수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과 어울리고 관리가 쉬운 한옥에서의 꽃 가꾸기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다음 회에서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정원 화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