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花階)와 굴뚝
외국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유럽의 정형식 정원이나 일본의 고산수정원에 마음을 빼앗긴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전통정원이 많다. 그중 시각적으로 마음을 빼앗을 정원 요소로 화계를 추천하고 싶다.
아름다운 우리 정원
한국의 전통정원에서
으뜸이 화계와 굴뚝이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경복궁 아미산 정원을 보면 이에 동의할 것이다.
잘 가꾸어진 화계(花階)는 자연의 아름다움, 디자인적으로 절제와 균형미, 화려함을 포함한 개성미, 철학적인 사상이 담긴 인문학적인 의미가 모두 포함된 정원이다.
화계의 개념은 간단하다. 경사면에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단을 쌓고 단 위에 꽃을 심은 것이 화계다. 우리의 선조들은 위험하고 불편한 비탈면을 단을 쌓고 꽃을 심음으로써 우리 환경에 맞게 가꾸고 발전시켰다. 화계는 비탈면이 많은 자연적인 조건과 한옥이라는 가옥구조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공간이다. 주어진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조경이라면 토사 붕괴를 막기 위해 단을 쌓고 그 위에 꽃을 심음으로써 미적 요소를 더한 화계는 기능과 미를 모두 갖춘 우리의 정원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어디나 비탈면은 있다. 보통 서민들이 비탈면의 토사붕괴를 염려하여 안정화에 주력했다면 궁궐이나 양반가에서는 비탈면 안정화 이후 꽃을 심고 괴석이나 석연지와 같은 점경물을 놓아 화려한 화계를 즐겼다.
화계의 선이 주로 직선이기 때문에 화계는 현대의 건축에도 어울린다. 기하학적인 현대의 대형 빌딩, 아파트, 대단위 주거단지... 어디든 잘 어울린다. 현대에도 이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예술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은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품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경복궁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 후원에 아름다운 화계가 있다. 경복궁 아미산 화계는 단 위에 화려한 굴뚝 4기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다음은 국가유산청에서 올린 경복궁 아미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이다.
경복궁 아미산 화계는 우리나라 화계 중 으뜸이다.
국가유산청은 경복궁 아미산 굴뚝 4기를 보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경복궁 아미산 화계가 아름다운 것은 이 4기의 굴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계를 제외하고 굴뚝만 있었다면 그 아름다움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또한 굴뚝이 없고 화계만 있었어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화계로 인해 더욱 화려해졌고 경복궁 아미산 화계는 굴뚝으로 인해 그 가치가 올라갔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소이며 아미산은 왕비의 후원이다. 사실 아미산 화계는 인공산이다. 조선 초기 경복궁을 지을 당시 경회루 주위에 못을 파고 나온 흙을 바람을 막기 위해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에 쌓았다고 한다. 이 언덕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그 후 270년간 폐허로 있다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복원으로 1866년 재건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경복궁이 다시 훼손되면서 방치되었던 것을 다시 정비하여 1985년 국가유산으로 지정되고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화계는 한옥의 후원이다.
우리의 지형에 있어 배산임수가 최고의 집터다. 집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고 건물을 앉히면 자연히 뒤쪽에 경사가 생긴다. 지형상 이 경사면에 흙이 쓸려 내려오지 않도록 경사면 안정화 작업을 하게 된다. 토질에 따라 식물만 심기도 하지만 토사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면 더 안전하다. 축대를 높이 쌓는 것보다 경사도에 따라 축대를 몇 번 꺾어 단을 만들고 단 위에 꽃을 심음으로써 훨씬 아름다운 공간이 된다.
일반 가정에서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단위에 장독대로 사용하거나 작업공간으로 사용한다. 안채일 경우 건물의 뒤편은 부엌과 가깝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한 부엌일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주로 여자들이 공간이었다. 하지만 양반가에서는 이 공간을 후원으로 사용하였다. 여자들의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 궁궐이나 양반 같은 상류계층에서는 후원의 계단에 꽃도 심고 괴석을 놓기도 하면서 아름답게 꾸며 여자들이 즐기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럼 왜 경복궁 아미산에는 화계에 굴뚝을 놓았을까?
우리나라 한옥의 난방은 온돌형식이다. 온돌은 고대 수혈주거에서 유래되었다. 수혈주거는 땅을 파고 생활하는 주거형식으로 한옥은 이를 발전시켜 온돌을 고안해 냈다. 온돌은 연기를 수혈 밖으로 내보낼 구멍이 필요했다. 한옥에서 온돌 구조가 보편화되면서 굴뚝이 건축의 일부로 자리했다. 한옥에서 굴뚝은 여러 형태로 발전하였다. 굴뚝을 건물의 앞쪽에 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건물 뒤편 한적한 공간으로 빼는 것이 일반적이다.
굴뚝은 굴뚝대로 건물의 뒤쪽 경사면은 그대로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화계와 굴뚝을 한 공간에 두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경복궁 아미산 굴뚝이다.
아미산 굴뚝은 6 각형으로 되었으며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외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하면서도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복궁 아미산 화계와 굴뚝은 왕가의 건강과 안녕을 염원하다.
아미산은 교태전 뒤 왕비의 후원으로서의 기능 이외에 왕가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아미산이라는 명칭이 천연두와 관련이 있다. 천연두가 창궐하던 18세기 중엽 중국에서 아미산신인의 종두에 의해 치료법이 기술된 여러 의서들이 간행되었고 그 일부가 우리나라에 번역 간행되었다. 이때부터 아미산 신인의 영험을 빙자하여 천연두를 퇴치하려는 뜻의 아미산이라는 칭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굴뚝의 당초무늬와 그 아래 장수의 상징인 학을 새기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박쥐를 새긴 것은 복과 장수를 의미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정원은 그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정원은 신선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염원을 표현하기도 한다. 경복궁 아미산 화계와 굴뚝 또한 인간의 행복과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정원은 시가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의미가 더해지면서 더욱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