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花階)
정원을 이해하는 것은 지형 즉 땅의 형태를 이해하는데서 시작한다. 지형을 이해하면 꾸며진 정원양식을 이해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발달한 유럽의 정원에서 산이 많은 이탈리아는 단을 만들어 노단 건축식 정원이 발달하였고 평평한 대지의 프랑스는 평면기하학식 정원이 탄생하였다. 우리나라 또한 이탈리아와 같이 산이 많다. 자연히 단을 만들어 정원을 꾸미는 경우가 많다. 정원문화의 정체성은 이렇게 지형을 바탕으로 생활문화가 더해지면서 나름의 나라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한다.
화계는 배산임수의 지형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정원 요소다. 우리만의 양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문화적 특징이 가미되어야 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경사면의 토사 붕괴의 위험에서 주거공간을 보존하기 위한 기능적인 목적으로 단을 쌓았다. 이 단을 아름답게 꾸미고 인문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 화계다. 그 의미는 한옥이라는 시대적인 주거문화에서 비롯된다. 과거 여자들은 외부활동이 어려웠다. 여자들의 활동공간이 안채의 부엌 뒤편이나 별당이었기 때문에 후원이 발달하였다. 한옥의 뒤편은 산의 토사 붕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석축이 있다. 석축을 몇 단으로 나누어 쌓고 단 위를 장식한 것이 화계다. 화계는 후원의 중요한 정원 요소였다.
화계는 현대에도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정원 아이템이다. 그 이유는 첫째 지형이 화계를 꾸미기에 적당하고, 둘째 화계는 선이 직선이기 때문에 현대 건축에 잘 어울린다. 요즘 지어지는 대형 빌딩이나 아파트 대단위 주거단지 또는 건물 자체가 기하학적인 선이기 때문에 현대 건물 주위를 화계로 꾸민다면 시각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셋째 화계를 꾸미기에 적당한 지형이 아니라도 화계를 조성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요즘처럼 토목이 발전한 시대에 성토나 절토는 예전과 같이 힘든 일이 아니다.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며 디자인된 계획을 시공하는 것이 전보다 상당히 쉬워졌다. 화계의 디자인을 전통 그대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전통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이해하고 이 시대에 맞게 고치고 발전하는 것이다.
다음은 현대의 의미로 새롭게 해석한 화계의 모습이다.
화계의 위치를 후원에 국한하지 않고 건물 전면에 두었다.
언덕이 없는 평지에도 성토해서 화계를 조성할 수 있다.
축대의 재료나 문양으로 변화를 줄 수도 있다.
현대에도 계속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 전통이다.
하지만 경사면의 모든 축대를 화계라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 우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화계라 할 수 있을까?
화계의 개념과 시공방법 인문학적인 의미 조성된 사례 등을 살펴보자
전통으로 자리 잡을 만큼 이론으로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전통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례를 참작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화계라면 최소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까?
1. 한 단의 높이가 1m 이내여야 한다.
경사지에서 단의 개수, 단의 높이, 단의 폭은 상관관계가 있다. 경사도에 따라 단의 높이와 단의 폭이 결정된다. 단의 높이가 높으면 단의 폭이 넓어지고 단의 높이가 낮으면 단의 폭이 줄어든다. 단의 개수도 변수가 된다. 만약 한 단으로 끝까지 쌓는다면 그것은 축대다. 몇 번을 꺾을 것인가를 결정하면 경사도에 따라 각 단의 높이와 단의 폭이 결정된다. 이때 화계라면 단의 높이가 1m 이내가 적합하다. 워낙 급경사라 지형 상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단의 높이가 1m보다 높으면 축대나 옹벽같이 보인다. 경사가 심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의 높이가 1m 이내로 3 ~ 4단을 쌓으면 안정되게 보인다.
2. 화계의 단 위에는 키 작은 식물을 심는다.
일반적으로 화계는 이름에서도 보듯이 꽃계단이다. 화계에는 초화류나 소관목이 적당하다. 식물은 잘못 관리되면 지저분해 보일 수 있다. 소교목 유실수나 앵두나무 같은 관목은 봄에 꽃을 보고 가을이면 예쁜 열매를 볼 수 있다. 자생종을 심으면 전통 화계의 느낌이 난다. 큰 나무는 뿌리가 깊기 때문에 단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심지 화계에는 심지 않는 것이 좋다.
요즘은 위 사진에서 보듯이 정형화된 침엽수를 심어서 현대적 디자인적인 느낌을 낼 수도 있다. 식물은 관리 여부에 따라 지저분해질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양을 심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3. 단 위에 조각품 등 다른 점경물과 어우러지면 더욱 아름답다.
과거 전통정원에서는 화계에 괴석이나 석조물을 식물과 적절히 배치하였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화계와 굴뚝의 아름다운 콜라보다. 이와 같이 점경물은 식물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받침대에 올려진 괴석, 석연지, 세심석 등 점경물을 놓아 꽃이 진 겨울에도 그 아름다움을 유지했다. 현대 정원에서는 조각품이나 예술품을 놓아 공간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4. 단의 재료 또한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위 사진에서는 장대석으로 석축을 쌓은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정원에서 장대석을 사용하는 것은 궁궐이나 양반집과 같은 상위계층의 정원에서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화계란 일반 사람들도 즐겼던 우리의 정원문화다. 산골에서는 산돌을 쌓았고 강가 가까운 곳에서는 강돌을 쌓았다. 요즘은 보강토 블록으로 저렴한 가격에 쌓고 있다. 같은 돌이라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다르다. 돌 쌓기와 연계된 화계의 연구도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정원의 발전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