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이 자랑스럽다

문화의 자신감

by 풀솜

미국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왔다고 전화가 왔다.

서울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어디 가고 싶은데?"

케데헌에서 나오는 성곽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케데헌 열풍이 대단하다. 걸그룹 아이돌 헌트릭스가 악령을 퇴치하는 데몬 헌터로 활동하며, 라이벌 악령 보이그룹과 대결하는 K -팝 퇴마 액션 뮤지컬이다. 주요 주제로는 정체성의 혼란, 성장, 그리고 한국 문화와 K - 팝의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세계관 등이 있다.


케데헌의 비주얼을 점령한 것은 한국문화다. 배경이 서울이다.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이고 한옥 지붕 위에서 격투가 벌어지고 주인공은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감정을 나눈다. 한국 민화에서 나오는 호랑이와 까지가 마치 애완동물과 같이 주인공들과 교감한다. 이런 극히 한국적인 발상에 세계인들이 열광한다고 한다. 골든 소다팝과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물관에서는 한국 관련 굿즈가 잘 팔리고 한국중앙박물관과 경복궁에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친구와 나는 케데헌의 배경이 된 낙산공원을 걷기로 했다.


낙산공원에 가기 위해 혜화역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와 번화한 길에서 벗어나니 높지 않은 건물들이 있는 조용한 동네다. 상명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등 대학건물의 간판이 보였다. 왜 이곳에 대학 건물들이 있지? 의아해하며 언덕을 올랐다. 옛 정취가 남아있는 서울의 강북은 재밌다. 새로 지어진 신도시보다 정감이 있다. 지역의 역사가 느껴졌다. 모양과 색이 다양한 4~5층 건물들, 그리 급하지 않은 언덕길, 사이사이 골목과 축대에 그려진 그림....


얼마 지나지 않아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오르니 성곽과 성 너머에 파노라믹 한 경관이 펼쳐졌다. 거의 한 달 동안 그치지 않았던 비가 오늘은 맑게 개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는 전형적인 가을날씨였다. 우리는 성곽을 따라 걸었다.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케데헌 촬영장소라는 푯말도 보였다. 흩날리는 갈대 사이로 동대문을 바라보며 걸어내려갔다.


성 가까이 까지 형성된 오래된 마을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사람 하나도 제대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비좁은 골목을 보면 예전에는 상당히 열악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작은 텃밭, 구멍가게, 건물 발코니에 마련된 카페의 의자들.... 관광객 입장에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낭만적인 장소다. 사람 사는 곳이란 어디나 보는 경관과 보이는 경관에는 차이가 있다.


낙산공원 가는 계단과 케데헌 촬영장소라는 푯말이 서 있다
성옆의 이화마을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나라가 들썩였다. 일본에 대한 국민 정서가 극에 달했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40년 가까이 되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행했던 감정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과서 왜곡은 다시 일제 강점기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국권을 잃은 지난날의 민족적 수난을 되새기고 민족정기의 구심체로서 역할을 할 독립기념관을 세우기로 했다. 기념관 건립을 위해 성금을 모금하고 전시할 자료를 모으는 등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한편에선 독립기념관 설립을 위한 설계가 진행되었다. 기본 계획과 기본 설계를 마치고 조경 부분 실시설계를 우리 회사가 맡게 되었다. 수시로 천안 흑성산 아래 현장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하고 직접 도면을 그리고 색칠하고 윗분들이 요구하는 브리핑 자료를 만드는 일이 우리 신입사원의 일이었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하던 시절 저녁 늦도록 사무실 불을 밝히며 일했다.


온 국민의 염원을 우리는 도면으로 표현해야 했다. 국민들이 성금을 모으고 응원하는 동안 실무자들은 콘셉트를 정하고 디자인을 했다. 디자인에서 일본의 잔재가 남아 있으면 안 됐다. 36년간 우리를 괴롭혔던 일본이라는 나라를 극복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독립기념관 설립의 목적이니까....


"절대로 일본은 안돼."


설계의 목적은 민족정기를 모으기 위한 구심체로서 역할을 할 독립기념관이라는 역사적인 건물을 짓는 것이었으나 실제로 우리가 한 일은 일본의 잔재를 없애는 것이었다. 문화는 스며들고 흡수된다. 오랜 시간 그들에 의해 지배받으면서 많은 부분 나도 모르게 그들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정책적으로 우리를 일본화 하였다. 교과서 왜곡으로 촉발된 독립기념관 건립은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깜짝 놀라 나를 찾으려 하는 발버둥이었다. 40년 전 독립을 하였지만 의식에서는 아직 뭔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디자인을 체크하고 나무의 원산지까지 따지며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를 찾을 수 있었나?

자신있게 '한국적'이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었나?

어떤 경우는 '한국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생각이 고정되면 생각이 자유로울 수 없다. 고정된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다. 고정관념 신념은 생각을 묶어 놓는다. 그저 나를 표현할 수 있어야 생각이 자유로워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했던 우리 시절은 아직 일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누구를 이긴다는 것, 그로부터 벗아난다는 것은 아예 그에 대한 생각이 없어졌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감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의 생각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케데헌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화의 자신감이다. 누구를 이긴다는 것은 자신감을 갖고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드디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케데헌을 보면서 일본에 대한 강박으로 불편했던 우리 세대를 생각해 보았다. 케데헌이 자랑스럽다. 다음 세대는 우리가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