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물관리

한옥의 물관리 시스템

by 풀솜

보통 우리 전통정원의 특징으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자연이라는 말속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물의 순환에 관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의 원리를 기초로 한 물의 순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옥의 물관리 시스템을 살펴보는 것은 선조들의 생활공간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다.


한옥의 물관리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정서적이며 시각적이며 생태적이다.


도시의 물은 상수와 하수 우수로 나눌 수 있다. 상수는 사람들이 먹고 쓸 수 있는 깨끗한 물이고 하수는 쓰고 버리는 물이다. 보통 생활하수라 말하며 집안에서 생활하면서 나오는 오염도가 높은 물이다. 우수는 빗물이다. 각각의 물은 길이 다르다. 상수는 상수도 관을 통해 집으로 들어온다. 일명 수돗물이다. 생활하수는 하수관을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은 우수관로를 통해 강이나 바다로 직접 흘러 들어간다.


생활하수는 보통 오수라고 하는데 이 물은 오염도가 높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아 정수 과정을 거쳐 하천으로 내보낸다. 오수를 정수하는 시설이 오수처리장이다. 마을에 오수처리장이 생기면 혐오시설로 생각하지만 처리 시설을 마치고 나온 물은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도시의 물 순환 시스템은 완벽하게 돌아가야 한다. 이번 강릉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문제가 되고 너무 적게 와도 문제가 생긴다. 비가 한꺼번에 많이 오면 홍수의 위험이 있고 가뭄이 들면 식수나 생활용수가 부족하다.


사람들은 직접 불편을 겪기 전까지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관로가 땅 속에 있어 어떤 물이 어느 쪽으로 어떻게 흘러 가는지 알 수 없다. 시의 관리 부서나 전문가들은 알겠지만 일반 시민들은 가끔 볼 수 있는 우수 오수 쓰여 있는 맨홀 뚜껑으로 짐작할 뿐이다. 가끔 수도관 파열로 도로에 많은 물이 흐르는 경우 공사 과정에서 관로를 볼 수 있지만 직접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굳이 알려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물은 중요하다. 중요하기 때문에 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인간의 삶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에서 물의 순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는지, 비가 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물을 절약하는 방법은 있는지, 전쟁과 같은 위급시에는 물을 어떻게 공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식량과 함께 물은 언제라도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


만약 물의 흐름이 일상에서 우리 눈에 쉽게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선조들의 물관리 시스템은 물의 흐름이 눈에 보인다. 처마 지붕에서 떨어진 물이 물길을 타고 내려간다. 흐르는 물을 보면 물에 대해 관심이 생길 것이다.


한옥의 물길은 물의 순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뿐더러 시각적 측면에서 디자인이 훌륭하다. 물을 가까이한다면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선조들의 물관리 시스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옥의 물길은 정서적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지붕의 기와를 타고 내려온 빗물은 처마 끝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대청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빗물을 한 없이 바라본다('물멍').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의해 땅이 파인다. 물의 힘은 대단해서 고운 흙은 쓸려 내려가고 굵은 모래만 남는다. 사람들은 흙이 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처마의 선을 따라 땅에 자갈을 깔아 준다. 건물의 규모가 커지면 여기에 물길을 만들어준다. 물길은 건물 주위 담장 옆으로 이어진다. 물은 물길을 따라 돌아 돌아 담장 밖으로 나간다.


한옥의 물관리는 물이 지체 없이 단시간에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이유는 한옥의 재료가 나무기 때문이다. 물이 건물 가까이 오래 머문다면 기둥이 썩을 수 있다. 지붕에 떨어진 빗물은 가능한 지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한다. 한옥 지붕 처마를 길게 빼는 이유다. 비가 오면 우선 물이 건물 가까이 올 수 없도록 하고 땅의 단차를 이용해 건물 밖으로 지체 없이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물길은 담장을 따라 연결되어 있다. 담장 가까이 한쪽에는 물을 모으는 집수정이 있다. 집수정에는 마당에서 흘러온 물과 처마를 타고 내려온 빗물이 모이고 이 물은 담장 밖으로 빠지게 된다.





이중환의 택리지 중 복거총론에 살기 좋은 마을을 선택할 때 다음 여섯 가지(마을 어귀 물이 흘러가는 수구, 들의 형세, 산의 형태, 흙의 색깔, 물의 흐름, 조산과 조수)를 말했다. 그중 물의 흐름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중환은 물길은 산맥의 위치와 음양의 이치에 합당하고 멀리 굽어 흘러오는 물길이 좋다고 했다. 큰 냇물이나 큰 강이 역으로 흘러드는 곳, 앞보다 뒤가 낮은 지형은 범람의 위험이 있어 피해야 한다고 하며 물관리가 주거 안정에 필수적임을 논하고 있다. 수리는 마을과 주택의 안전과 풍수적 길흉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효율면에서만 생각하면 도시의 물관리만 한 것은 없다. 모든 관로를 땅 속에 묻어 땅의 효율을 극대화하였다. 좀 더 훌륭한 물 관리를 위해 도시와 한옥의 배수시스템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자. 물의 흐름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땅 속으로 물이 흐르는 심토층 배수와 땅 위로 흐르는 표면배수로 나눌 수 있다. 표면배수는 물길이 지표면 경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도시화 이전에는 거의 표면 배수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배수는 거의 심토층 배수시스템이다. 우리의 한옥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만약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다면 물은 땅 표면으로 흘러 흙이 파이고 땅은 질척이고 불편하고 외관상으로도 보기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옥은 이 배수시설을 기능적으로도 훌륭하고 보기도 좋게 만들었다. 한옥은 물이 땅 위를 그대로 흐르도록 두지 않았다. 물길을 만들어 관리했다. 물길은 물의 흐름을 도와주면서도 견고하고 아름답게 설계되어 있다. 물길의 재료는 돌로 견고하게 만들 었다. 물길 바닥에 판석을 깔고 강회다짐을 하여 방수하였다. 벽체는 중요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궁궐이나 사대부와 같은 고급 주택에서는 사괴석 견치석 장대석 등을 써서 견고하면서도 아름답게 조성하였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주변의 잡석을 사용하여 물길을 만들어 주었다.


한옥의 물길은 시각적이다.


한옥에서 물길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마당 외곽으로 돌면서 정원의 레이아웃을 결정한다. 건물 선을 따라 혹은 담장 선을 따라 난 물길은 외곽의 일부 선을 결정한다. 이 선으로 인해 건물이 정돈되어 보이고 마당이 정갈하고 깨끗하게 보인다. 보통 우리의 정원이 자연풍경식이라고 하지만 건물 주변은 거의 기하학적인 선을 사용하였다. 자연의 선을 닮아 외부공간이 곡선을 많이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옥 외부공간의 선은 직선이다.


건물의 선이 직선이고 화계의 선이 직선이고 담장이나 물길의 선이 직선이다. 비교적 자연의 지형을 해치지 않고 지은 사찰도 배치가 자유로울 뿐이지 인공의 요소가 가미된 정원의 선은 직선이다. 서원이나 궁궐 또한 기하학적인 직선이다. 서원 건축물의 배치를 보면 축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배치형태를 지키고 궁궐 또한 삼문과 정전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 같은 무게로 배치한다. 회랑을 포함한 건물의 선 또한 정갈한 직선이다. 이에 정방형(방지원도)의 연못을 더하면 한옥 외부공간의 선은 직선이다.


한옥의 배치가 정갈하고 단정해 보이는 것은 건축의 선과 물길의 선 연못의 선이 직선이기 때문이다.



한옥의 물관리는 생태적이다.


선조들의 물관리는 생태적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유럽에서 분수가 중요한 정원요소라면 우리의 전통정원에서는 폭포다. 물을 다루는 방법에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는 물에 대한 인식에서 온다. 선조들은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궁궐이나 서원 왕릉은 물론 규모가 큰 한옥에서 낮은 곳에 생태 연못이 있다. 마을 단위로도 생태 연못이 있다. 위에서 내려온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도중에 생활하수가 더해져 오염될 수 있다. 이 물은 낮은 곳에 있는 연못에 모이게 된다. 이 연못의 역할은 물의 자정작용을 돕는 것이다. 연못 주변에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식물을 심는다. 이 식물은 오염된 물의 정화를 돕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현대에도 사용된다. 마을에 규모 큰 가정집에 있는 연못은 생태적으로 중요한 습지다. 그 속에는 정화식물은 물론 양서파충류 등 동물 생태계의 중간 역할을 하는 동물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자연의 생태계에 꼭 필요한 습지공간이다.


산에서부터 내려온 물은 아래로 흘러가면서 군데군데 웅덩이를 만든다. 웅덩이가 산에 있을 때는 둠벙이라 하고 규모가 큰 개인 집인 경우에도 문 옆이나 낮은 곳의 담 아래 물을 모아두기 위한 웅덩이가 있다. 그 웅덩이가 연못이다. 왕릉의 경우 왕릉의 입구 근처에 늪과 같은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오리나무와 같이 물을 좋아하는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이는 경관적으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상당히 기능적인 공간이다. 위에서 내려온 물이 모이는 습지다. 현대의 의미로 이곳은 생태연못이다.


기후변화로 홍수와 가뭄이 잦아지고 있다. 물 문제는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생태적이고 정서적이며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선조들의 물관리 시스템에서 분명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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